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조용하게 살려고 왔는데, 아무 말도 없이 레이더를”
“조용하게 살려고 왔는데, 아무 말도 없이 레이더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8.11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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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안중에 없는 기상레이더] <1> 두 자매의 호소

기상청, 주민과 협의없이 명도암에 기상레이더 추진
관광객들 많이 오가는 명림로 길가에 만들어질 예정
문근자·명자 자매 “하필이면 주거지에 들어오나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조선시대 한학자인 김진용 선생이 이곳에 정착을 했고, 그의 호가 곧 마을 이름이 됐다. 명도암은 동지역이면서도 혼잡하지 않은 특징을 지녔다. 조용하고 아늑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최근에는 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하나 둘 뿌리를 내리며 명도암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난데없이 국가시설이 추진돼 명도암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공항 도플러 기상레이더’이다. 기상청이 추진하는 이 기상레이더는 제주공항을 오가는 비행기의 안전 착륙을 도와주기 위해 기상 정보를 관제탑에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제주시 봉개 본동에서 4·3평화공원과 절물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은 ‘명림로’로 불린다. 기상청이 추진하는 기상레이더는 명림로에 세워진다. 명림로 시작점인 명도암교차로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1km쯤 되는 지점에 기상청이 세우려는 부지(봉개동 699-1번지)가 있다.

기상청이 추진할 기상레이더 부지. 명림로 바로 길가에 있다. 부지 밑으로 주거지가 있고, 건너편에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미디어제주
기상청이 추진할 기상레이더 부지. 명림로 바로 길가에 있다. 부지 밑으로 주거지가 있고, 건너편에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미디어제주

국가시설이라면 주민들과 어느 정도 얘기가 됐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역 주민들은 그게 답답할 뿐이다. 명도암이 좋아서 몇 년전 정착을 한 문근자·명자 자매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털어놓았다. 살려고 명도암에 들어왔는데,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동생인 명자씨가 먼저 운을 뗐다.

“기상레이더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안 건 10일도 안됐어요. 한길 가에 있잖아요. 여기는 4.3평화공원도 있고 절물휴양림으로 가는 길이어서 관광객들도 많이 오가는데, 미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기상레이더가 들어서면 철조망을 둘러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게 된다. 실제 기상레이더 부지는 바로 길가였다.

“음악을 하는 아들이 교실 하나 정도의 하우스콘서트를 할 장소를 원했어요. 동문통 일대에 집이 있어서 1층을 리모델링 하려고 했으나, 주차 문제도 있고 해서 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언니가 생각났죠. 언니는 명도암에서 늘 밭을 가꾸는데, 언니가 가진 땅을 일부 사들여 여기에 작은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게 된 겁니다.”

동생 문명자씨는 자신도 기거를 하고, 음악을 하는 아들도 즐길 그런 집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2018년 5월에 입주를 했다. 그러고 보니 만 2년을 넘겼다. 그런데 기상레이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동생에게 밭을 내준 언니 문근자씨는 명자씨보다는 집을 늦게 지었고, 지난해 추석 때 명도암에 안착을 했다. 자매가 정착한 곳은 기상레이더가 들어서는 바로 북쪽이다. 기상레이더 부지 북쪽으로 연달아 붙어 있는 집이 근자·명자씨 두 자매의 집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저녁까지 얼굴을 맞대고 사는 자매에게 기상레이더는 듣도 보도 못한 무섭고도 기괴한 무기가 돼버렸다.

동생 명자씨는 자신의 아들이 여기에 계속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기상레이더가 온다고 하자 집을 정리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들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키는데 여기를 찾은 학부모들이 (전자파가 나올 기상레이더를) 이해를 해줄까라는 걱정이 들 수밖엔 없잖아요.”

자매의 일상은 며칠 사이에 흔들리고 있다. 자매의 집 건너편에 사는 이들도 걱정이다. 자매의 말을 빌리면 건너편 이웃은 집을 지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고, 명도암에 살려고 계획을 잡아둔 이들도 망설인다고 했다.

언니 근자씨는 동생보다 일찍 명도암과 인연을 맺었지만 집을 짓는 건 한발 늦었다. 그러나 그는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쉴틈없이 텃밭을 가꾼다. 그게 일상이다. 그런 그에게 기상레이더는 반가울 리 없다.

“여기에 집을 짓고 나니 너무 반갑고, 들떠 있었죠. 그런데 여기에 기상레디어가 들어온다고 해요. 그런 시설은 한번 들어오면 옮길 수 있나요? 그러지 못하잖아요. 하루종일 밭에 사는데 기상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마주해야 하잖아요.”

자매의 속은 타들어 간다. 한학자 김진용 선생이 그랬듯이 조용하고 살기 좋은 명도암에 터를 잡고 사는데, 기상레이더가 자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기관인 기상청은 하필이면 주거지에 기상레이더를 세우려 할까. 명도암 주민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데, 국가기관은 국유지라고 마음대로 시설을 앉혀도 되는 걸까. 다음에 이 문제를 좀 더 깊게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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