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언론은 ‘따옴표’가 아닌, ‘진실확인자’여야 한다”
“언론은 ‘따옴표’가 아닌, ‘진실확인자’여야 한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2.1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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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창] 인터넷언론 <제주의소리>에 실린 글을 보고

문화기획자 입을 통해 제주아트플랫폼 비판 깎아내려
“‘소설 같은 의혹’은 쓴 일도 없는데 사실 확인 미흡”

제주의 모 문화기획자는 또한 “주민도 대표성을 가진 예술 단체들도 찬성한 사안인데 일부에서 제기한 지엽적인 문제가 발화가 돼서 논란을 키웠다. 제주 사회의 담론 지층이 정말 얇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소설 같은 의혹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제기한 언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제주의 소리 2021년 2월 9일자(기사 제목 : 제주아트플랫폼 3년 만에 재가동…“발목잡기 이제 그만”) 마지막 문장>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설 연휴도 지났으니 이젠 진정한 새해를 맞았다. 새해는 늘 새로운 마음을 지니게 만든다. 올해도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려는데, 느닷없이 위 기사의 문장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됐다. 기사에서 보듯 즐거운 시작은 아니다. ‘소설 같은 의혹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제기한 언론’은 <미디어제주>를 부르는 이름일테니, 기쁠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제주아트플랫폼 관련 기사를 수도 없이 썼다. 2018년 5월 어느 날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5월의 특정한 어느 날 오전에 제주도내 문화부기자를 대상으로 제주아트플랫폼을 설명하고, 오후엔 주민설명회를 갖는다고 했다. 오후에 주민설명회를 한다는데, 굳이 오전에 기자간담회를 가지는 게 이상했다. 당시 ‘(가칭)한짓골 아트플랫폼’으로 불린 사업의 취재는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햇수로 4년째. 몇 개월 있으면 제주아트플랫폼을 다룬지 만 3년이 된다.

질기게도 글을 썼다. 혼자 쓴 건 아니고, 후배가 더 많이 썼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기억이 겹친다. ‘카사 델 아구아’를 구해보겠다고 혼자만 70회를 넘게 쓴 기억이 있는데, 제주아트플랫폼은 그보다 더 질기게 쓰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질기게 쓴다”가 아니라 제주도내 인터넷언론 <제주의소리>에 실린 모 문화기획자의 말이다. 모 문화기획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말은 입으로 뱉으면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말을 수없이 떠들곤 하는데, 그게 문자화가 되면 큰일이 생긴다. 문자는 ‘박제화되는 기록’이다. 그 기록은 고칠 수 없다. 아주 오랜 고전을 꺼내자면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저지르고 나서 사라진 기록은 한 노인의 입에서 재생산됐다. 복생이라고 불리는 아흔이 된 노인이 구술했고, 한나라 무제의 명령을 받은 조착이라는 인물이 붓으로 기록을 남겼다. 복생의 입에서 나온 기록이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우린 중국의 그런 기록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갑자기 중국의 역사 한 조각을 꺼내 들었는데, 사실이 아닌 걸 기록하면 어떻게 되나.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제주아트플랫폼으로 쓰려는 곳. 미디어제주
제주아트플랫폼으로 쓰려는 곳. ⓒ미디어제주

수십 번 제주아트플랫폼을 쓰면서 <제주의소리> 기사 내용처럼 ‘소설 같은 의혹’을 쓴 일은 없다. 제주아트플랫폼은 수없이 제주도민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문화기획자의 말마따나 그게 ‘지엽’적인 문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낸 세금을 함부로 쓴다는데, 그걸 제대로 검증하는 게 왜 ‘지엽’인가. 문화기획자는 ‘담론 지층’을 꺼내 들었다. 그게 ‘얕다’면서. 문화기획자의 말은 제주도민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우리가 언제 진지하게 문화를 얘기해봤던가. 제주아트플랫폼을 통해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체가 담론이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문화를 바라보는 지층은 더 단단해진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우리 도민들은 4년째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게 곧 담론이다.

문화기획자도 문제이지만 그걸 의심없이 따옴표로 처리하는 언론은 더 문제이다. 따옴표에 남의 말을 담았으니, 잘못이 없다? 아주 큰 잘못을 했다. <미디어제주>는 ‘소설 같은 의혹’을 쓰지 않았는데, 왜 <제주의소리>는 그걸 남의 이름을 빌어 담았을까. 문자화는 매우 강한 파급효과를 지닌다.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여기서 필요한 건 언론의 역할이다. 기자들은 누누이 사실확인(팩트체크)의 부담을 지닌다. 사실을 아닌 게 담았으면 “사실이 아니다”고 바로 잡는 게 원칙이다. 요즘 언론은 그걸 하지 못해 아쉽다. <히로시마>를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존 허시는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절대로 창작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대원칙이며, 이제 존 허시의 원칙에 더해지는 것들이 있다. ‘추가하지 말라’와 ‘속이지 말라’. 또 있다. ‘투명성’이다. 투명성을 제대로 지키려면 ‘익명의 취재원’을 벗어던져야 한다. 익명으로 쓸 수밖에 없을 때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만일 <제주의소리>에 ‘모 문화기획자’라는 익명의 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이름 세 글자가 들어갔으면 어떻게 될까. 물론 내용이 달라진다. 더 정제된다.

문화기획자의 말이 더 정제되고, 더 달라진 내용을 바라기에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기자라면 자고로 그런 최소한의 원칙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제주의소리> 기사 덕분에 저널리즘을 다시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고, 언론 생활 31년째를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어떤 언론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 이런 원초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아울러 기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쓰는, 단순한 사실 나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실에서 진실을 캐는 ‘진실확인자(authenticator)’여야 함을 곱씹게 만들어줬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새해가 다시 보인다. 새해는 사실만 보지 말고, 그 사실에 감춰진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돌아봐야겠다. 그런 면에서 2021년을 채찍질하게 해준 <제주의소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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