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학교의 숨죽은 공간에 맨발로 걷는 길 만들었어요”
“학교의 숨죽은 공간에 맨발로 걷는 길 만들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2.2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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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3> 외도초의 실험

외도초에 지난해 11월 3개의 모랫길 탄생
주차장 남은 공간과 건물 뒤편 공간 활용
반 아이크 ‘사이공간’처럼 공간 의미 확장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공간의 활용에 있다. 전편에서 그걸 확인해봤다. 그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만들었던 수많은 놀이터는, 일반적으로 행정이 추구하는 놀이터와는 다르다.

행정은 의도적으로 놀이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에 놀이터를 심지만 아이크의 놀이터는 그렇게 기획된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건물과 건물 사이, 버려지거나 방치되던 공간에 주목했고, 그걸 활용했다. 어찌 보면 반 아이크는 쓸모없을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놀이터를 세움으로써 삶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기폭제를 던졌다.

우리에겐 그런 공간이 없을까. 찾아보면 많다. 반 아이크가 구축했던 공간을 우리는 ‘사이공간’이라고 하는데, ‘사이공간’의 핵심은 공간의 재구성에 있다.

‘사이공간’은 건축행위가 아니어도 좋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사이공간’은 막혔던 혈관을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온몸에 피가 자유롭게 돌 듯이, 공간과 공간에 벽을 두지 않고 자연스런 흐름을 만들어준다.

방치되던 공간에서 모랫길로 변신한 외도초의 한 공간. 이 길은 '사랑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미디어제주
방치되던 공간에서 모랫길로 변신한 외도초의 한 공간. 이 길은 '사랑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미디어제주

지난해 11월에 취재를 했다가 지면을 통해 펼쳐내지 못한 공간이 있다. 제주시내 외도초등학교에 만들어진 3개의 작은 길이다. 꿈길, 사랑길, 나눔길이라는 이름이 각각 붙은 작은 길이다. 특히 그 길은 모래로 덮여 있고, 맨발로 걷게 꾸몄다. 3개의 길이 학교에 있으니, 외도초등학교는 엄청난 외부공간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그러진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이다.

외도초등학교는 제주시 동지역 서부에 있는 작은 학교였으나, 세월의 흐름은 작은 학교를 가만두지 않고 거대학교로 탈바꿈시켰다. 2000년 전후 진행된 제주시 연동·노형지구 개발 이후, 그 개발 바람은 서쪽으로 더 확장된다. 연동·노형지구 서부에 해당하는 외도동은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고, 급격한 인구변동의 바람을 맞았다. 작은 학교였던 외도초등학교는 50학급을 초과하는 거대, 과대학교로 변하고야 말았다.

현재 외도초등학교는 작은 면적에 맞는 학교 구성이 아니라, 자신의 몸체 이상을 담아야 하는 공간 불균형 상태에 있다. 작은 교사(校舍)는 계속 덧붙여졌고, 운동장을 제외한 공간은 땅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개발이 가져온 변화를 학교는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한다. 하지만 땅을 찾을 수 없다. 운동장은 인조잔디가 주인 노릇을 하고, 운동장 이외의 공간은 죄다 건축물 소유이다. 그때 주목을 받은 공간은 반 아이크가 그랬듯, 쓸모없이 남겨진 공간이었다. 주차장 바로 북쪽, 교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의 남쪽 공간. 이들 공간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여기를 눈여겨본 외도초 이금남 교장은 학교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공사 이름은 ‘생태숲’이었고,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 꿈길, 사랑길, 나눔길이라는 3개의 길이었다.

외도초 건물 뒤편 죽은 공간이 걷는 길로 되살아났다. 미디어제주
외도초 건물 뒤편 죽은 공간이 걷는 길로 되살아났다. ⓒ미디어제주

시멘트가 아닌 모래. 운동화가 아닌 맨발. 3개의 길은 맨발로 걸으라고 말을 건다. 이금남 교장은 “길이 문화가 되고, 아이들에겐 평생습관이 되기를 바란다”며 3개의 길이 지닌 의미를 전달했다.

반 아이크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영속적이지 않는, ‘순간’으로 봤다. 눈은 눈싸움을 즐기는 맛을 주지만, 언제 어디서나 눈싸움을 할 수 있진 않다. 아주 짧은 경험을 제공할 뿐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길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반 아이크의 사이공간에서 놀이터가 탄생했다면, 외도초는 건물 확장으로 숨을 쉴 곳이 없는 학교에 숨 쉬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면 된다.

죽은 공간을 살리는 건 ‘사이공간’의 매력이다. 버려지고 조명받지 않던 공간을 활력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사이공간’이다.

조금 있으면 4학년이 되는 이단유 어린이는 3개의 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래는 부드럽지만, 어떤 때는 따갑기도 하고, 더 나가서는 시원함도 느끼게 만든다. 역시 4학년이 될 백준영 어린이는 따가우면서 신나는 3개의 길을 표현하면서 주변에 흙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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