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도시재생은 침술처럼 시간을 두고 조금씩 해야 한다”
“도시재생은 침술처럼 시간을 두고 조금씩 해야 한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4.0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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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21> 건축가 문영하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도시건축연구소 문랩의 문영하 소장이다. 제주도에서 서쪽인 대정읍 출신이지만 과감하게(?) 제주시 중앙로를 넘어선 동쪽인 건입동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흔히 동쪽 출신이면 제주시내 동쪽에, 서쪽 출신이면 제주시내 서쪽에 터를 잡는데 문영하 소장은 그걸 깼다. 그가 좋아하는 장소는 산지천이다. 소개한 책은 건축가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산지천-‘환생’의 의미를 일깨우는 곳

건천이 많은 제주도. 그걸 대신하는 건 용천수였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용천수가 펼쳐졌고, 사람들은 채소도 씻고, 빨래도 했다. 물론 발을 담그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건천이기에 용천수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그렇다고 제주도에 마르지 않는 하천이 없진 않았다. 제주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하천 가운데 산지천이 그런 경우였다. 지금은 지하수를 하도 빼버려서 산지천엔 억지로 물을 채우는 형국이지만, 예전엔 늘 물이 흘러내리던 하천이었다.

<탐라지>에 따르면 “제주성 동남쪽 바깥에 가락천이 있었다. 지금은 성안에 있다”고 되어 있다. <탐라지>에 등장하는 가락천은 산지천의 이름이기도 하며, 산지천과 가락천을 따로 부르기도 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바닷가에 가까운 곳이 산지천이며, 그 위쪽이 가락천이다. 그런데 제주성 밖에 있던 하천은 왜 성안에 들어왔을까. 그건 명종 10년이던 1555년에 발발한 을묘왜변 때문이다. 왜구는 지금의 화북동 거로까지 침입을 했다고 하니, 당시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산지천. 미디어제주
산지천. ⓒ미디어제주

제주성 확장은 ‘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때 제주목을 지휘하던 곽흘 제주목사는 제주성을 산지천 동쪽으로 넓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실 물’의 필요성을 조정에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성이 포위되는 변란이 있게 되면 병사들의 목마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은 갈증을 해소하지만, 목숨도 구해준다. 지금은 너무 퍼서 문제가 된다. 여기 사람들은 칼호텔이 생기고 나서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지천은 온몸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왔으나 1966년부터 복개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까지 진행된 복개로 인해 산지천의 모습은 사라졌고, 상가가 조성되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그런데 복개된 상가는 점차 이지러졌다. 달이 모습을 달리하듯, 상가를 떠받치던 건물은 차츰 기울어갔다. 방법은 허는 것 뿐이었다. 철거를 반대하면서 제주시청에 똥물을 투척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이 귀하던 시대는 물을 얻기 위해 산지천을 필요로 했으나, 상수도 개발로 산지천의 필요성이 떨어지자 강제적으로 모습이 사라지는 걸 산지천은 목도하기도 했다. 산지천은 제 모습을 다시 갖는데 40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산지천은 이명박의 청계천까지 영향을 줬다고 하지 않는가. 산지천은 제주도의 생태환경 복원 사례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흔하지 않는 사례로 기억된다.

산지천은 다시 돌아온, 즉 ‘환생’을 경험했다. 예전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흐르는 물은 수많은 기억을 담보로 한다. 산지천은 왜구의 침입을 봤을테고, 거기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도 만났고, 빨래를 하던 제주어멍도 지켜봤다. 현재는 탐라문화광장으로 불리는 중심축에 산지천이 있다. 산지천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산지천은 그 주변을 오가는 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까.

 

[대담] 건축가 문영하를 만나다

 

도시건축연구소 문랩의 문영하 소장.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신인 그는 고향을 떠나 제주시에 정착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발을 디딘 곳은 제주시 건입동. 제주시에 온 이유는 이른바 유학이었다. 예전엔 제주시 동지역으로 유학을 오는 일은 흔했다. 그러다 시간은 흐르고, 이젠 일과리가 아닌, 건입동이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를 도시건축연구소 문랩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은 최근 리모델링을 마쳤다. 자신의 아버지와 외삼촌이 사들여 지은 빌딩을 허물지 않고 다듬었다. 건축이 지닌 순간의 기억과 사람의 삶을 그대로 간직하려 한다.

 

건축가 승효상이 쓴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추천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지난 2017년 프랑스 건축답사를 마치고 나서 이 책을 샀다. 당시 언론 인터뷰가 있었고, 마르세유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을 들여다봤다. 건축 책은 어려운 것도 많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건축가가 썼음에도 쉽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다시 책을 잡았다.

 

책은 성찰도 얘기하고, 침묵도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침묵 얘기가 마음에 든다. 도시는 옛 기억을 없애고 새로운 모습으로 늘 바뀌는데, 그게 아니라 예전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픔도 기억하는 침묵의 공간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을 찾는다는 막스 피카르트의 명구가 참 좋다.

승효상 선생은 피카르트를 좋아하더라. 묘지 여행과 관련해서 침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유럽은 도시내에 묘지가 있거나 아니면 근교에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집에 조상의 사당도 모셨고, 밭에 묘가 있었다. 승효상 선생은 죽은 자들이 아닌, 죽은 이들과 산 사람들이 교감을 하고 성찰을 한다는 의미에서 침묵을 쓴 듯하다.

 

우린 그런 공간이 도심에 없다.

마스터플랜이란 걸 하면서 깡그리 없앴다. 2017년 인터뷰 때도 도시침술을 말했지만, 도시재생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해야 한다. 그래야 주위 환경도 서서히 바뀐다.

승효상 선생은 사람이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 또한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야 의뢰를 받고 설계를 해주지만, 승효상 선생은 건축주는 그 건물의 사용자일 뿐 소유는 사회가 갖는다고 한다.

 

맘에 드는 말이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내 건데 왜 그러느냐는 반응이 있을텐데.

당연히 논란은 있다. 집은 건축주의 것이 맞지만 그 건축물의 앞을 지나는 사람, 들어오는 이들에게도 다 영향을 미치기에 공공적인 걸 생각하면서 설계하고, 건축주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도시도 나아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건축심의도 하고 총괄건축가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그 말과 연결된다.

 

승효상의 책을 보면 건축가 입장에서 굉장히 곤란한 부분도 있다. 그는 건축주의 이익과 공익의 이익이 상충될 때, 공익을 우선한다고 했다. 어떤 제안이라도 거절한다고 한다. 건축가로서는 어려울텐데.

건축가들은 심혈을 기울여서 공공가치를 고려한다. 그렇지만 승효상 선생의 말처럼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승효상 선생의 말처럼 그렇게 할 건축가가 있을까? 거장도 쉽지 않다. 거장들이 제주도에 세운 건축물, 중국에 세운 건축물을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렘 콜하스가 설계한 CCTV사옥은 왜 저런 건축이지? 의문이 든다.

중국은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각축장이다. 유럽은 문화재 등 규제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겠지만 중국은 거장을 초빙해서 각축을 벌이게 만든다.

 

어쨌든 책에 나타난 것은 원칙이고, 될 수 있으면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추구하라는 뜻일테다.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니라는 건 공공성의 가치를 말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건축가의 윤리를 가지고 행동해야 더 나은 도시가 된다는 의미이다.

 

만일 건축주가 공공성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설득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소유권이라는 한계가 있다. 건축주들은 상업지역이라면 꽉 차게 해달라 요구를 하지만, 설득을 하면 들어주는 사람도 있다.

도로를 좀 후퇴를 해서 공간을 확보한다는지, 서울 샘터사옥은 1층을 비워두었다.

 

아파트를 공공성 측면에서 보면 열려 있지 않다. 아파트 단지를 만들면서 하나의 섬처럼 된 곳이 많다.

자기만의 장벽을 쌓아서 외부와 소통도 없는 곳도 있다. 그러나 건입동에 있는 현대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차들도 오간다.

 

요즘 아파트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한다.

계급 의식이랄까, 이런 게 좀 있는 듯하다. 브랜드를 따진다.

 

제주 전통의 공동체가 바뀌고 있다. 그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예전 제주도의 공동체는 혈연과 지연, 집성촌 형태였다. 지금은 시대도 변하고. 외지인들도 많이 들어온다. 신제주인 경우 한동안 불법 건축물 신고가 많았다. 이웃에서 민원을 넣고, 불법 건축물을 양성화시키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갈등도 생기곤 한다.

 

문영하 소장 개인이 애착을 갖는 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대정읍 일과리 출신인데, 중학교 3학년 때 제주시에 왔다. 유학을 온 셈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건입동의 적산가옥을 사서 집을 새로 지었다. 나는 대성학원과 우당도서관을 오갔다. 대성학원을 가기 위해 매일 동문시장과 동문로터리, 중앙로를 거쳤다. 인생의 3분의 2를 이 동네에서 살았다.

 

건입동 주변의 가치는 뭘까. 그런데 건입동은 이른바 우리가 성안이라고 부르는 곳과도 이질적이다.

여기 처음 살 때는 말 그대로 외지인과 뱃사람이 많았다. 막일하는 사람도 많았고, 판잣집도 많았다.

살다 보니 동네도 변하더라. 동사무소도 생겼고, 어울려서 사니까 살아졌다. 이젠 정도 든다. 지금은 신제주보다는 훨씬 여기가 좋다. 신제주는 삭막하달까, 여기는 물이 흐르는 산지천이 있고 오현단과 사라봉도 있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건물을 철거하지 않은 것은) 기억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될까.

도시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그게 중첩되고 남겨지고 보여야 도시가 재미있고, 이야깃거리를 지닌 도시가 된다고 하잖는가. 이 건물은 골조와 외장만 남겨두고 바꿨다.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흥미로운 게 골목길이라고 한다. 서양의 골목길과 우리의 골목길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거기는 정비를 한 느낌이고, 우리는 미로형이다.

세계 유수의 메가시티 가운데 산도 강도 있고 경사진 곳에 지어진 도시는 서울밖에 없다고 한다. 도시를 지을 때부터 우리와 유럽은 장소가 다르다. 유럽은 로마시대 캠프를 중심으로 평지에 지어졌고, 방사형 길을 뺐다. 우리나라는 산세 등의 지형을 고민해서 집을 짓는다. 그래서 길이 구불구불하다.

가치관도 차이가 난다. 우리는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여서 순응했다. 승효상은 자연 그대로인 것에 대해 터무니라는 얘기를 했다. 지형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 터에 대한 무늬가 있는 게 우리나라다.

 

건입동 주변도 골목길이 많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은 서울을 가더라도 강북의 북촌 등 그런 곳을 찾는다. 강남이 아니라 강북의 골목길에서 관광을 한다. 제주도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하면서 도시재생을 진행하면 좋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관이 주도를 하면 안된다고 본다. 지역주민과 건축가들이 대화를 하고 공청회를 하면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 관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된다.

관이 개입하지 않는 도시재생을 강조하고 있는 문영하 소장. 미디어제주
관이 개입하지 않는 도시재생을 강조하고 있는 문영하 소장. ⓒ미디어제주

도시재생의 문제점은 관에서 선정을 하고, 돈이 투입된다. 돈이 투입되니까 돈을 무조건 계획된 그 해에 쓰려고만 한다. 그러지 말고 작은 곳이지만 침술 놓듯이 해야 한다. 점이 나중에 선이 되고, 그 선이 바뀌는 구조로 가야 한다.

개인들이 나서서 골목길에 아기자기한 카페를 만들고, 옛 공간을 잘 꾸며서 활용한다. 잘 되다 보니 관에서 끼어들고 관여도 하곤 한다. 관이 진행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건축이 보이게 된다. 관은 조력자여야 한다.

 

땅에 대해서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지.

산지천이다. 2000년 초반까지는 산지천을 복개한 상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 허물고 드러내서 복원한 게 마음에 든다. 제주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장소이다.

 

요즘은 렌터카 차량이 원도심에 많이 보인다.

이젠 바뀌고 있다. 마스터플랜과 같은 도시개발은 로맨스가 없다. 이야깃거리도 없다. 재미도 없다. 지금 우리의 도시를 바라보면 서울에 있든, 부산에 있든 똑같은 도시 아닌가.

 

관광객들이 원도심을 많이 찾는 이유라도 있을까.

지역성? 장소의 지역성이라고 해야 하나. 제주만의 독창성이랄까. 옛날 기억을 조금씩 남겨둬야 이야깃거리가 있는 도시가 된다. 도시재생은 그런 측면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강남을 보려고 서울에 가본 적은 없다. 서울을 가면 골목길 찾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보다. 사람들은 옛날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곳을 찾아간다. 지역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역성이란 무엇일까.

진짜 어려운 주제이다. 지역성은 아주 오래된 화두이다. 지역성이 뭐라고 딱히 정의를 내려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 색채가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시의 여러 조건을 감안해서 어울리는 좋은 건축을 하게 되면 그게 곧 지역성 있는 건축이 된다. 건물만 덩그러니 세워서 지역성을 얘기할 게 아니라 건물이 서 있는 도시, 그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야 지역성이 된다.

 

제주도는 도심지와 읍면의 차이가 있다. 두 곳의 건축행위는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할까.

본질은 같다. 도심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건이고, 외곽은 한가한 분위기이다. 외곽에서 건축활동을 하게 된다면 그 땅과 그 동네 분위기를 감안해서 작업을 한다. 도심지도 그렇다. 도심지와 외곽에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도심지는 주위에 높은 건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고려를 하겠지만.

예를 들어 도시는 옆에 들어선 건물의 층고를 보고, 재료가 뭔지 파악한다. 시골은 밭 한가운데 집이 들어설 수도 있고, 소나무밭에 들어설 수도 있기에 역시 주변을 본다.

 

제주도는 세계유산이며 남다른 땅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제주도만의 땅의 가치는 뭘까.

존중하고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땅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앞에서 말한 이 건물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우리가 해 먹듯이 땅을 함부로 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니다. 후손들의 땅이다. 우리 아들의 땅이다.

 

함부로 하는 사람이 많다.

막아야 한다. 산지천은 잘 복원됐지만 탑동은 매립이 돼버렸다.

 

탑동이 매립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엄청난 곳이 되었을 것이다. 개발하는 사람들은 개발 이후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제대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개발을 했으면 좋겠다. 매립 후에 어떻게 되는지, 높은 건축물을 세우는 경우도 바람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데.

진짜 제주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제주만의 지역성을 찾으려면 그런 것부터 해야 한다. 그 안에서 건축이 어울리게 자리를 잡는다면 지역 건축이 된다.

요즘은 잠시 화북에 살고 있다. 화북은 여유가 있다.(그는 화북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 잠시 살고 있다.)

사람이 동네를 만들고, 동네도 사람에 영향을 준다고 했는데, 화북은 여유를 준다. 제주시내와는 다르다. 화북은 다른 곳과 느낌이 다르다. 여유롭다. 그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데, 화북은 여유롭다.

 

건축에 발을 디딘 이유는.

1990년대에 배우 이병헌이 나온 드라마가 있었다. 건축가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였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아버지가 공장을 했는데 용접도 하고, 만드는 것도 같이했다. 만드는 것은 무난히 하겠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어떤 활동을 하는 사람일까. 제주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라면 어떤 생각을 지니면서 활동을 해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잘 해야겠지만 자본에 굴하지 말고, 소신껏 공공의 가치를 담아, 좋은 설계를 하자고 하는데 실질은 어렵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생각은 늘 가져야 한다.

 

도시엔 침묵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베를린도 그렇다.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는 공간이 있으며, 알게 모르게 그걸 공간에서 느끼도록 한다. 광주도 전남도청과 상무관 일대를 공원화해서 5.18을 기억하게 만든다. 제주도는 아쉬운 게 194731, 그때를 전문가들은 4.3 발발 시점으로 보는데 우리는 그런 기억의 공간이 없다. 그 공간을 밀고 조선시대 건축물을 올렸다. 정말 생각이 있다면 4.3을 기억하는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장소에 대한 의미를 담는 작업이라고 본다. 주정공장 터에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봉개동에도 있는데 무슨 또 기념관일까.

 

베를린 베벨 광장 바닥에 나치가 불태운 책을 기념하는 장소가 있다. 바닥엔 서가가 보인다. 그에 비해 주정공장 터에 들어설 기념관은 사람이 들어가서 관리를 해야 한다.

장소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꼭 건물을 지어야 기념이 되는 건 아니다. 기념탑으로만도 기념은 된다. 주정공장은 지금 자리가 아니라 원래는 현대아파트 밑에 있는 삼화주유소가 그 터이다. 주정을 만들려고 고구마를 내리던 관은 현대아파트에 있었고, 현재 보이는 우수관은 나중에 시에서 만들었다.

좋은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축가만 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지음

 

건축은 자연과학인가. 여기에 대한 물음에 대해 승효상은 ‘인문학’이라고 외친다.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풀이를 통해서 이뤄지겠지만 그 바탕은 인문학이 없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건축은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승효상은 “건축설계를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우선의 공부는 그 건축 속에서 살 이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책에서 말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집이 아닌, 남을 위해서 집을 짓는다. 남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의 삶을 들여다봐야 건축주가 요구하는 집이 만들어진다. 그러려면 문학도 접해야 하고, 영화도 접해야 한다. 보다 근원적인 고찰을 하려면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터득하는 것도 방법이다.

건축은 건축가들의 몫이 아니다. 인문학이 가미되는 일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의 몫이다. 건축이 인문학이라는 사례는 숱하게 널렸다.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누이를 위해 집을 설계했고, 예술 평론가인 존 러스킨이나 요즘 잘나가는 철학박사 알랭 드 보통도 건축책을 쓰지 않는가. 건축은 결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님을 이들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건축을 인문학으로 바라볼까.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가 더 맞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건축은 부동산에 속한 개념으로 치부된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대한민국화 된 아파트’를 건축으로 본다. 아니, 돈의 가치로 본다. 기업의 자본이 인문학 위에 서 있는 현실이 지금의 우리 사회이다. 어딜 가나 똑같은 천편일률의 모델이 널려 있다.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 똑같은 모양의 평면. 땅이라는 여건은 전혀 다르지만 생산되는 건축물은 다르지 않다. 건축을 하려면 역사도 알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해야 하건만 굳이 그러면서까지 드로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없는 건축이 된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건축법에 건축을 정의하길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고 쓰고 있으나 대한민국 건축법에 정의하는 건축은 “건축물을 신축·증축·개축·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기돼 있다. 한쪽은 인문학적 표현이며, 한쪽은 부동산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특히 커다란 도시를 원한다. 사람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든다. 도시는 서로 다름이 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획일화를 꿈꾼다. 그러다 보니 마스터플랜으로 기억을 망가뜨린다. 승효상의 생각을 책을 통해 들여다보자.

“우리가 살았던 터전을 깡그리 지우는 개발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는 재생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며, 외과수술을 하듯 전체를 바꾸는 마스터플랜보다는 부분적 환경 개선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어 전체적인 변화를 이끄는 도시침술이 더 유용하고, 일시적 완성보다는 더디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생성과 변화의 과정이 소중하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점진적이고 관찰적이어서 보다 사회적이고 인간적이다.”

인간적인 도시는 무엇일까. 사람에게 죽지 않는 영생이란 없다. 언젠가는 이별과 만난다. 어쩌면 인간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하고,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을 승화시킨다. 침묵의 기행을 자주하는 승효상은 도시의 지속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경건한 침묵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의 성당은 바닥엔 유명인들이 묻혀 있고,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 도시의 일상이다. 우리의 곁에 있는 일본에도 그런 시설이 도심에 즐비하다. 우리도 예전엔 그랬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다. 승효상은 침묵을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일상이라고 해도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맑게 빚는 고요함이 없으면 도시는 이내 피로하여 지속할 수 없다. 묘역은 우리의 일상과 공존할 수 없는 혐오시설이 되어 쫓겨났고 재물의 맛에 취한 교회와 사찰은 시장보다 더 상업적인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도시에서 마음을 고요케 하는 성소를 찾는 일이 이제는 도무지 쉽지 않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의 도시가 경박과 몰염치로 흐르고, 심지어는 예의 없는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예의 없는’을 ‘예의 있는’으로 바꿀 수는 없나? 그러러면 건축을 부동산이 아닌, 공공성의 가치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저자는 책에서 당나라 시인 유종원이 쓴 <재인전(梓人傳)>을 꺼내고 있다. <재인전>의 ‘재인(梓人)’은 목수를 말하는데, 지금의 건축가이다. <재인전>은 “자신의 직능을 방해받을 때는 유유히 떠나야 하며, 자신의 법도를 굽히지 말아야 진실로 뛰어난 재인이다.”고 했다. 과연 우리 곁에는 그런 건축가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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