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7:47 (목)
“예전 제주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예전 제주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4.27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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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대씨,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개관 기념 사진전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라는 주제로 전시
자신의 父 고영일 사진가의 앵글에 담긴 어린이 모습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우리 아버지 시대를 살던 사진 속 사람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눈에 보이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유독 아버지의 손때 묻은 사진엔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예전엔 전달수단이 적어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에겐 아이들이 몰렸다. 일부러 “찍어달라”며 다가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의 기억창고에 담긴, ‘예전’엔 그랬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4월 24일부터 개관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라는 제목이다. 사진전의 제목은 질문형이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질문을 하고 있을까.

‘야이덜’은 ‘이 아이들’이라는 제주어이다. 사진 속 아이들을 말한다. ‘어떵들 살암싱고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있고, 거기에 담긴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를 물어보고 있다. 그렇게 질문을 하는 이는 고경대 사진가이다.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가 고영일(高瀛一) 선생이다. 다만 그에 대한 답을 듣는 건 상상에 맡겨야 한다. 그는 수많은 사진을 남기고 지난 2009년 세상과의 결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고영일 선생은 기자였고, 사진가였다.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저널리스트로서 기본이 닦인 그의 사진은 언어가 됐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상형언어라는 사진을 탐색했고, 그 사진은 포토저널리즘의 생명인 ‘존재증명’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인 사진가 고영일의 숨결이 담긴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개관 기념 사진전을 열고 있는 사진가 고경대씨. 미디어제주
아버지인 사진가 고영일의 숨결이 담긴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개관 기념 사진전을 열고 있는 사진가 고경대씨. ⓒ미디어제주

‘존재증명’이 담긴 고영일 선생의 사진은 얼마전부터 생명을 얻고 있다. 그의 아들인 고경대씨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사진가를 선언했고, 사진가 고영일 선생의 흔적을 쫓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그러면서 먼저 간 아버지의 존재증명을 자신이 해 보였다.

사진가 고경대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제대로 보여주는 갤러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게 바로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이다. ‘큰바다영’은 제주도를 ‘영주(瀛洲)’라고 부를 때 쓰는 한자 ‘큰바다 영(瀛)’이며, 사진가 고영일의 이름에도 있다. 갤러리는 이름에서 보듯 아버지 고영일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개관전에서 만나는 사진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이다.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 흔한 초가 풍경속 아이들, 한데 놀면서 사진가 고영일 선생의 카메라에 들어온 아이들의 모습이다.

“동네에 들어서면, 촬영자가 오히려 구경거리다. 몰려다니며 찍어달랜다. 다 모아놓고 막상 찍으려면 오히려 숨는 녀석이 있다. 장년이 되었을 때 이들 중에 몇이나 이 사진을 반길 형편이 되었을까?”

고영일 선생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메모를 해두었으나 많지는 않다. 앞선 글은 고영일 선생이 ‘사수동에서 만난 개구쟁이들’이라는 제목으로 1969년 찍은 한 컷에 쓰였다. 지금은 50대 후반의 어른일텐데, 그때 그 개구쟁이들은 정말 어떤 모습일까.

“아버지의 사진을 사람들은 풍경으로만 인식하곤 해요. 아버지 사진은 풍경만 있는 게 아니라, 제주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처음으로 아버지 사진에 담긴 아이들을 꺼냈고, 다음엔 여자삼춘과 남자삼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물론 사진집으로도 만들고요.”

고경대씨(오른쪽)가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을 찾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경대씨(오른쪽)가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을 찾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영일 선생은 없지만, 그가 사진을 향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아들인 고경대씨가 찾고 있다. 그 답은 이젠 갤러리를 찾는 이들이 해줘야 한다. 다행히 그 답을 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단다. 아울러 아들은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진 속 아이들이 궁금하다고 아버지에게 묻는다. 그에 대한 답은 아버지가 말해주진 못하지만, 역시 갤러리를 찾는 이들은 안다.

“사진전 제목은 아버지에게 묻는 것인데, 사진에 담긴 어릴 때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라는 분도 있고, 연락을 주겠다는 분이 두셋 됩니다. 원도심에 갤러리를 연만큼 젊은 친구들도 많이 와줬으면 합니다. 아울러 아버지가 제주카메라클럽 창립회원이었는데, 당시 활동했던 그분들의 필름이 있다면 사진을 벽장에서 꺼냈으면 좋겠어요.”

고영일 사진전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는 6월 25일까지 만날 수 있다. 갤러리 큰바다영(제주시 만덕로 11, ☎070-4246-5504)은 제주출신 건축가 오현일(스튜디오 GOTT)이 설계한 작품으로, 원도심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큰바다영은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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