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청소년 비만율 전국 1위 제주, 걷지 않는 아이들
청소년 비만율 전국 1위 제주, 걷지 않는 아이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6.25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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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비만율, 17개 시·도 중 제주가 가장 높아
걷기 대신 차량 통학, 비만율 증가 원인 중 하나

도로사업 대신, "아이들이 걸을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코로나19 때문에 '확찐 자' 되었다는 우스갯소리. 마냥 재미있는 농담으로 치부해도 괜찮은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도는 8년 째 청소년 비만율 1위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성인 비만율 또한 2020년 35.0%로 17개 시·도 중 1위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싱싱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고, 친환경 제주 농수산물로 급식도 제공하고 있다는데. 유난히 제주의 청소년 비만율이 높은 이유가 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통행로 환경'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보행자가 아닌, 차량 중심의 도로사업이 난무한 결과, 아이들이 걸을 길이 사라지고 있다.

 

제주 청소년 비만율, 전국에서 가장 높다  

과도한 당 섭취는 비만으로 이어지기 쉽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제주 청소년 비만율은 17.7%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전국 평균(12.1%)보다 5.6%p 높고, 전국 2위인 인천(14.8%)과 비교해도 2.9%p 상당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제주가 청소년 비만율 1위를 기록하는 곳이었을까?

아니다. 통계청 자료가 시작되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주는 대구와 함께 비만율 공동 3위 수준으로 6~7% 수준을 유지해왔다.

주목할 점은 당시 전국 청소년 비만율이 5% 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지역별 비만율 격차 수준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엇비슷한 정도였다.

그리고 통계에 따르면, 제주가 처음으로 전국 청소년 비만율 1위를 기록한 시점은 2013년이다. 

제주 청소년 비만율 증가 추이
(괄호 안은 전국 청소년 비만율)

2006년 6.3% (5.9%) / 2007년 7.4% (5.3%)
2008년 6.7% (5.3%) / 2009년 6.4% (5.1%)
2010년 6.9% (5.3%) / 2011년 6.8% (5.6%)
2012년 8.1% (6.2%), 전국 2위 / 2013년 9.4% (6.6%) 전국 1위
2014년 8.8% (6.9%) / 2015년 9.6% (7.5%)
2016년 12% (9.1%) / 2017년 14.6% (10%)
2018년 14.9% (10.8%) / 2019년 16.5% (11.1%)
2020년 17.7% (12.1%)

(자료 출처: 통계청)

꾸준히 상승한 제주의 청소년 비만율은 2012년 전국 2위를, 2013년 전국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이때 증가폭 또한 커지는 양상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제주 청소년 비만율이 급격하게 증가한 시점과 제주 난개발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후, 2009년 영어교육도시 착공, 2010년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준공 등을 거쳐 양적 성장에 정책을 집중해왔다. 환경보다는 당장 이익이 되는 도로개발 등을 우선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마을길들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비만의 위험, 정부는 사회문제로 인식한다

한국 성인 남녀 비만 유병률 추이.
(출처: e-나라지표, 2005~2018)

다시 청소년 비만 문제로 돌아와보자. 

정부는 비만을 사회문제로 인식한다. 그중 청소년 비만은 문제가 더 크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약회사 MSD(Merch Sharp & Dohme)에 따르면, 세계의 청소년 비만은 30년 전보다 2배  증가했으며, 비만 청소년 대부분은 비만 성인으로 성장하는 양상을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해 8종의 암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제시했는데, 대장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전립선암, 신장암, 유방암, 간암, 담낭암 등이 있다.

또 199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영양조사를 받은 10세~19세 소아 및 청소년의 비만도가 높아질수록 고혈압, 고지혈증 등 심혈관 질환 위험인자의 유병률도 함께 상승했다.

이밖에도 청소년 비만은 자신감 저하, 우울감 증가 등 문제를 낳는다. 청소년기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같은 까닭에 정부는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며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계획으로, 영양과 식생활, 신체활동을 아우르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었다.

 

청소년 비만 원인 중 하나, "걷지 않기 때문"

6월 22일 이석문 교육감이 조천읍 관내 학교장과 함께 교육 현안안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의는 비대면, 온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해 진행됐다.

제주 교육계 또한 이같은 청소년 비만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학교장과 함께하는 제주교육 생생토크' 비대면 행사에서도 '학생 비만율' 관련 의견이 활발하게 오갔다.

이 행사의 취지는 제주도교육청과 각 지역별 관내 학교장이 함께 제주 교육 현안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22일에는 조천읍 지역 학교장과 관계자들이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화상 회의를 진행했는데, 참석한 8개교 모두 전국 평균 청소년 비만율(2020년 12.1%)보다 높은 비만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흘초등학교(16.5%)를 제외한 북촌초, 신촌초, 조천초, 함덕초, 함덕중, 조천중, 함덕고 7곳은 학생 비만율 19%를 초과하고 있다.

이처럼 높은 학생 비만율을 보이고 있지만, 각 학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날 참석한 학교장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제주도교육청을 비롯해 각 학교는 나름의 노력을 지속해왔다".

생생토크 행사에 참석한 정명아 함덕중 교장은 "건강증진 위해 점심시간 줄넘기, 건강 체력교실 운영, 아침 독서시간 전 10분 동안 걷기 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했고, 강미숙 신촌초 교장은 "아침 등교 시간을 이용해 20~30분 자율적으로 운동장을 계속 걷거나 뛰도록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교육청 또한 '혼디걸으멍 와바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 아침 등굣길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같은 교육계 노력에도 청소년 비만율이 더 높아지는 까닭. 어디에 있을까.

생생토크 자리에서 백홍실 북촌초 교장이 한 말이 있다. "원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많아서, 도보나 자전거보다 차량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에 따라 "비만율이 작년보다 올해 조금 증가했다"라는 내용의 발언이다.

백 교장의 말을 바꿔 말하면, "이동 시, 걷는 것보다 차량을 이용하는 학생이 많은 것이 비만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꼭 읍면지역이 아니더라도 제주시 동지역 등하교 시간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으로 늘 복잡하다. 여기에 학원 차량까지 더해지면 교통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번은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차량으로 아이 등하교를 시켜주는 지인과 대화할 일이 있었다.

기자는 물었다. "걸어서 5분 거리 학교인데, 아이 혼자 걸어서 가는 편이 편하지 않을까"라고.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 주변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차가 너무 쌩쌩 달려 위험하기 때문에 걷는 것보다 차를 타고 가는 편이 안전하다"라고. 그러면서 그는 "어차피 이제 차를 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젠 아이가 도보 등교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운전자보다 '보행자' 우선, 찻길보다 '등굣길'이 우선돼야

이제 정리해보자.

앞서 백 교장은 학생들이 걷지 않는 이유, 차량 등하교의 이유로 읍면지역 특성상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학교까지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대중교통이 비교적 편리하고, 학교와 집 사이 거리가 가까운 시내권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행자보다 차량이 우선인 도로 환경 ▲인도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도로 환경이 아이들의 보행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 등하굣길을 포함해 학생들이 늘 마음 놓고 걸어다닐 환경이 조성된다면 어떨까. 많이 걷고, 뛰노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 얻을 수 있을 테다.

제주 올레길.
제주 올레길.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여행을 온다. 고즈넉한 올레길이 걷기 좋다며, 꼬박 2~3주를 올레길 걷기에 투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막상 도민이 사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걸을 만한 길이 없다. 동 지역, 공항 주변의 시내 지역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곳곳에 큰 도로가 나고 건물이 들어선 까닭에, 이제는 작은 골목길마저 차로가 됐다. 제주시 시내권 주택가 골목은 어디를 가도 주차된 차량으로 빼곡하다. 도로를 넓히려다 비정상적으로 폭이 좁아진 자전거도로 모습도 쉽게 눈에 띤다. 여러모로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도시의 풍경이다.

코로나19 상황 이후에는 배달 시장이 커지며, 오토바이까지 가세했다. 마음 편히 산책할 분위기도 아닐 뿐더러, 여름엔 아스팔트와 건물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든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오히려 도로를 더 만들고, 차량을 더 늘리는 정책을 펼친다.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 우선, 차량 우선인 정책이다.

산책하고, 뛰놀기 좋은 숲 공간을 없애고, 도로로 만들려는 시도도 수 년째 지속되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이 그렇다. 

해당 도로가 신설되면, 서귀포학생문화원 정문 바로 앞으로 왕복 6차로가 생기며, 기존에 있는 잔디광장과 소나무숲 일부가 사라지게 된다.

서귀포시 교육벨트를 관통하게 돼 있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서귀포시 교육벨트를 관통하게 돼 있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서귀포시 강정 마을에도 난개발 사례가 있다. 해군기지 인근에 조성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다.

심지어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자 여러 천연기념물의 서식지다. 걷기 좋은 작은 오솔길이 굽이굽이 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옛 모습을 잃었다.

12월 9일, 시추공사를 위해 준비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현장 모습.<br>
2020년 12월 9일, 교량을 만들기 위해 시추 작업을 준비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현장 모습. 지금은 구멍 뚫기(천공)가 모두 완료되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해군기지 진입도로. 모두 '난개발'에 속한다. 이유는 있다. 대체 가능한 큰 도로가 이미 인근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사업부지 위아래로 일주동로와 중산간동로가 위치한다. 더군다나 도로가 뚫리면 오히려 교통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행정이 직접 발주한 용역을 통해 드러난 결과로, 사업의 정당성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아래 이미지 및 기사 참고)

*2020년 8월 8일자 <미디어제주> 기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생기면 "사업구간 교차로, 더 혼잡해져"

[표2]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가 생길 경우, 예상되는 주변 교차로의 지체도 및 서비스 수준 변화.<br>빨간색와 보라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악영향"이 예상되는 내용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가 생길 경우, 예상되는 주변 교차로의 지체도 및 서비스 수준 변화.
빨간색와 보라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악영향"이 예상되는 내용이다.

해군기지 진입도로도 마찬가지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신설되거나 확장된 도로를 대신 이용하면 될 일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차량 통행량도 많지 않은 곳이다. 

현재 제주도는 미래 설계에 한창이다.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과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변화되는 사회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포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개발'과 '자본'에 집중되어 도민 사회 공감을 사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모습이다.

청소년 비만율 1위 제주, 걷지 않는 아이들. 어른들의 이기심이 환경 파괴와 함께, 이제는 아이들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단계로 온 것은 아닌지. 사회가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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