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제주어를 실생활에서 마음껏 쓰도록 하고 싶었다”
“제주어를 실생활에서 마음껏 쓰도록 하고 싶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7.08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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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수년간 공들여 제주어 활용 사전 펴내
김학준씨, ‘말’에 중점을 둔 <제줏말 작은사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어를 실생활에서 쓰게 할 수는 없을까. 언어가 생명을 지니려면, ‘사전’에 담긴 문자가 ‘생활’로 튀어나와야 한다. 이를 고민하던 한 개인이 생활에서 마음껏 활용하도록 만든 제주어 길잡이를 펴냈다. 오랫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던 김학준씨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제줏말 작은사전>이다. 그는 <제줏말 작은사전>에 ‘제줏말 사용 안내서’라는 이름을 달았다. 스스로는 ‘제줏말 큐레이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학준씨는 왜 ‘큐레이션’이라고 스스로를 칭할까. ‘큐레이션’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돋보이게 한다. 박물관이 지닌 콘텐츠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잘 드러나지 않거나, 제대로 조합이 되지 않으면 유물이 그야말로 ‘박물’이 되듯, 큐레이션은 그만큼 중요하다. 김학준씨가 ‘큐레이션’이라고 칭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흩어진 제주어를 잘 모아서 제대로 쓰게 해보자는데 있다.

<제줏말 작은사전>은 김학준씨가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일을 감행한 결과물이다. 5~6년 전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왔다. 다들 “왜 그러느냐”고 했으나, 제주어를 사용 가능한 언어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가 <제줏말 작은사전>을 펴낸 동기를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며느리였다. 그것도 소위 ‘육지 며느리’였다. 며느리에게 들리는 제주사람들의 언어는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젊은 아들도 ‘육지 며느리’와 다를 게 없었다.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는 제주 출신이라도 제주어로 소통하는 건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그에게 동기가 생긴 셈이다.

김학준씨는 흩어져 있던 제주어를 때때로 기록하고 ‘제줏말 카드’를 만들었다 한다. 지금까지 나온 제주어 관련 사전들도 모았다. 문제는 제주어를 다루는 사전은 많았지만 시중에서는 살 수도 없고, 비매품으로 만드는 게 대부분이었다. <제줏말 작은사전>은 실제 사서 보면서 익히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예문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요번 왕하르방 식게 먹으레 와졈시냐?” (요번 증조부 제사 때 올 수 있게 상황이 되고 있느냐?)

“느 펜 나 펜 엇이 두룽싸움이 뒈 부럿저게.” (네 편 내편 없이 패싸움이 되어 버렸어.)

“자인 두린 땐 몰멩져나신디 이젠 원 ᄄᆞᆫ 사름 뒈 불어신게.” (저이는 어린 땐 미련했는데 이젠 전혀 딴사람 되어 버렸네.)

위와 같은 예문은 단어마다 숨겨있다. 책을 넘기면서 예문을 읽는 재미도 담겼다. <제줏말 작은사전>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단어는 별도의 네모상자를 만들어서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어멍’이나 ‘퇴물’, ‘궤깃반’ 등의 네모상자를 읽는 재미도 있다. ‘어멍’에 대한 설명을 보자.

어멍

하르방, 할망, 아방과 같이 호칭으로는 쓰지 않는다. 이를테면, 친구 수현이네 집에 찾아갔을 때 친구 어머니를 보고, “수현이 어멍, 수현이 있어요?” 그러면 큰일 난다. “수현이 어무니, 수현이 있어요?” 이래야 한다. “엄마!”처럼 어멍을 사용해선 안 된다그런데 손 아래거나 스스럼없는 사이에서는 성림이 어멍, 어드레 감서?”라고 해도 된다. ‘어멍은 표준말 어미에 대응하는데, 예삿말로 쓰이면서도 낮춤말의 의미를 갖고 있다.

김학준씨는 책을 펴내려고 자신의 출판사 ‘도서출판 제라헌’을 1년 전에 다시 신고하고, 실무편집에 들어갔다. 그는 1980년대 서귀여상 교단 시절 학생들과 함께 향토지명유래 공부를 하며 제주사람들이 쓰는 말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제줏말 작은사전>의 책 제목에 ‘제주어’가 아니라, ‘제줏말’이 들어간 이유도 제주 사람들이 쓰던 생활 속의 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제줏말 작은사전>은 김학준씨의 다음 말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제줏말에 대한 조사 연구가 모자라서 제줏말이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제줏말 작은사전>은 2만원이다. 책자 문의는 ☎ 064-762-2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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