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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8
제주 근, 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8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7.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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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1년 7월호] 스페셜 시리즈_근대주거건축의 성격
김석윤(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17대 회장/건축사사무소 김건축)
김석윤.

한국건축사의 통상적인 시대구분에서 근대시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1960년대까지도 제주시의 도시경관은 일본풍이 짙었다. 일본식 기와 산가와라(棧瓦)로 지붕을 덮은 관사와 사택들과 이 영향을 받아 지어졌던 세력가들의 주택들이 시가지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해방공간에서 소위 적산가옥으로 불리던 후스마(襖) 문으로 구획된 방에서 목소리를 낮추거나 다다미(壘) 바닥에서 으스스한 겨울나기와 오시이레(押入) 속에 숨던 어릴 때의 기억은 그 이후 세대들도 공유하던 추억거리이다.

큰길 연변에는 아래층을 상점으로 쓰고 위층에서 살림하는 목조 복층의 병용주택이 새 모습의 도시주거로 등장하여 있었다. 이 풍경은 제주항에서부터 도심에 이르는 관문도로의 연변에, 그리고 일본인들이 선점한 어업거점이었던 한림, 모슬포, 서귀포, 성산포 등 소읍에도 이와 형편이 비슷하였다.

이렇듯 일식 주거문화는 관사, 사택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차 우리의 주거로 전파되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신문기사를 보면 일식주택이 1933년에 이르면 경성의 전체주택의 약 33.6%에 이르고 있다 했으니 이런 도시풍경이 비단 제주에 한정되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대구, 전주, 광주 등 내륙의 주요도시에서 통상 볼 수 있었던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온 적벽돌이나 석조주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유다름으로 해서 일본 건축사학계의 어른 후지시마(騰島亥次郞)씨가 일본 규슈의 어느 곳을 닮아 정겹다는 제주인상기를 남기게 했을 것이다.

일식 주거는 전통에서 미비하였던 화장실, 욕실, 부엌 공간에서 위생관념을 고조시키는데 미친 영향이 컸다. 특히 색다른 것은 화장실이다. 일식집 화장실은 수거식이지만 대변기와 소변기를 별도의 칸으로 나누고 대변소의 외부에 접한 벽체의 상, 하부에 작은 창을 내어 통풍을 원활하게 하는 등 청결을 위한 고려가 각별하였다. 깔끔한 도자기제의 소변기와 대변기를 구비한 화장실은 가마솥 욕조와 더불어서 우리 주거에는 볼 수 없던 생소한 공간이었다.

탈화 전용인 현관 또한 우리 주거에 새롭게 이식되어 갔다. 우리 전통주거에서는 관심에도 없던 현관은 위생공간과 더불어서 근대주거의 주요 코드였다. 하지만 현관은 채광과 통풍에 불리하고 실내로 들어온 화장실은 수용과정에 적지 않은 갈등을 보여준다. 삶(주거)은 변화하지 않았는데 건축이 앞선 변화가 가져온 갈등이다.

이와 같이 합리적인 공간배분과 효율적인 구조, 공법, 실용과 위생에 유리한 신재료의 변화들은 고유 주거풍습을 비하하기에 이르렀고 소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의 전이현상은 급격하지 않다. 반세기에 가까운 강압의 시기를 거쳤음에도 우리 주거의 저변에 침잠되어 있는 고유주거욕구 중에 유구히 이어온 온돌문화하고 대청의 변신인 거실이 중심성을 지키고 있는 것과 공간조직에서 위계관념을 이어가는 도도함을 보면 주거문화에는 쉽게 변이하지 않는 항성 인자의 존재를 신뢰하게 한다.

관덕로17길의 고씨 주택은 제주전통주거의 전형인 안·밖거리집 배치의 틀을 지키면서 일식 주거의 기술과 신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초기 근대의 사례로서 특히 일식 전통 주거의 우호(雨戶) 시설을 받아들여서 전통주거가 가진 비바람에 대한 약점을 보완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우호는 제주의 기후조건에 아주 매력적인 장치였다.

삼도2동1155-1 제주기와집은 배치방식이 근대한옥 유형 중에 중당형배치 방식을 보이고 간잡이가 전통을 벗어나 있지만 구체와 외양에서 토속기법들이 전수되어 있는 사례이다.

삼도2동 1174-5의 주택은 배치와 구조가 일식이며 배치개념의 도시화된 현상을 보여준다. 중앙로 86의 사례는 현관이 있는 근대식 평면형식에 신재료의 사용이 확대되어 있고 장식적 요소가 강조된 새 개념의 건축미학이 감지된다. 외부에 일식 목구조 상세가 노출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일식주거가 우리 주거에 가져다준 변화는 목구조의 신기술, 신재료의 보급과 주거에 위생관념을 고조시켰다는 순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1950년대 탑동로15길 강씨댁에 이르면 지금까지 신기술의 경험을 활용하여 풍토적인 수정을 이루어내고 있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모임지붕의 처마선단에 설치한 지붕벽은 비바람에 대처한 실리성 장치로 창의와 육중한 지붕형태를 선호하는 동양 주거문화에서 전통적 미감을 함께 충족시키고 있다는 해석은 유의미하다.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보존되고 있는 송당리의 제주 이승만 별장은 상주용 주택이 아니라는 한계성을 지니지만 서구의 주거건축 신경향과 특히 다양한 돌쌓기 공법을 전래해 준 고급시설이다. 선진화한 설비를 갖추었음과 조형이 뛰어난 설계와 공법에서 이 시기에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을 주도하였던 미국건축의 힘이 감지되는 유물이다. 이후 이 지방의 관공서와 학교건축 작품에 나타난 석공법과 이 건축에 쓰인 쌓기 공법이 연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들어 김중업, 김태식, 김한섭의 작품에 이 집에서 쓰인 제주돌쌓기 공법이 이어진다.

1950년대의 후반에 다른 지역에 비하여 뒤늦게 제주도에 건설된 공영주택이 주거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일식주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조적식구조와 미국식의 간이 트러스구조가 공영주택에서 신공법의 효율을 얻어 내었지만 박공지붕의 비바람에 대한 약점과 경제성 우선의 보급형 주거라는 인식이 전래의 주거 욕구충족에 미흡한 면이 있었다. 서구식의 합리적 평면조직과 경제적인 공법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근대주거라고 할 수 없다. 도시기반시설의 뒷받침없이 근대화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주거관습은 매우 보수적이라는 속성을 경험하였다.

1960년대 이후 상·하수도를 비롯한 도시기반시설이 차차 갖추어지고 근대재료인 시멘트와 철과 판유리 등이 국산화로 공급이 확대된 이후에 비로소 우리 주거가 주체적으로 근대성을 확대시키는 단계를 맞게 된다. 근대시기는 한국 주거문화의 격변기이다. 제주의 경우 주거문화의 변화에서 본토와 시기적으로 차이보다 양상이 색다르다. 다른 도시들이 조선말기에 개항과 함께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구 입식 주거형식이 제주에서는 한국전쟁후 미국의 원조문화에 의하고 있다.

도시형 제주한옥의 역사는 부재하였다. 삼도2동1155-1 제주기와집의 경우처럼 배치형식이 중당형으로 바뀐 변화를 보여주지만 이 사례는 한정적이다. 한옥의 전통이 허약하였던 원인으로 일본의 남부지역인 규슈지역과 유사한 기후환경하고 근대주거의 유입기에 제주도가 사회, 경제적 교류가 본토보다 일본과 더 긴밀하였던 특이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탐색을 근거로 해서 근대 제주 주거건축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근대의 유입기에는 전통 주거이념을 바탕으로 일본식 기술을 활용하는 절충된 변화 현상을 보여준다. 즉 안·밖거리집의 배치개념은 옛것이고 주구조부는 신공법을 활용하고 있다.

2. 일식주거의 건축 장치 중에서 아마도(雨戶)와 아마하시(雨端)은 비바람이 격렬한 기후의 동질성에서 쉽게 수용되고 있다.

3. 이 시기에 구조방식이 조적구조로 바뀌고 있다. 쌓기재료는 초기에 현지재료인 제주돌을 사용하다가 시멘트 벽돌과 콘크리트블록으로 규격화되고 쌓기공법도 성숙되었다.

4. 제주돌 쌓기공법의 숙련과 다양성은 이 시기 주거건축의 특기할 현상이다.

5. 서구식주거의 직접유입은 한국전쟁 복구사업으로 지어진 공영주택과 미국 원조문화에 의해 이루어져 타 도시보다 늦고 주거문화에 미친 영향에 제한적이었다.

6. 중당형배치, 일식목구조, 일식 산가와라(棧瓦) 잇기의 모임지붕, 제주돌쌓기외벽, 별동화장실을 갖춘 주택이 제주근대 주거건축의 대표형식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민족건축론, 김홍식, 한길사, 1987
한국 주거의 사회사, 전남일 외, 돌베개, 2008
한국 주거의 공간사, 전남일 외, 돌베개, 2010
한국의 주택 그 유형의 변천사, 임창복, 돌베개, 2011
한옥과 한국 주택의 역사, 전봉희·권용찬, 동녘, 2012

제주 근·현대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연재를 제주 근대주거건축의 성격으로 일단락하고 휴지에 듭니다. 졸고 읽기를 인내해 주신 독자에 감사드립니다. 나머지 현대부분이 이어져서 지역건축사가 한결 요연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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