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가슴에 영원히 솟는 샘물, 김통정 2
제주인의 가슴에 영원히 솟는 샘물, 김통정 2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11.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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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6>

김통정의 항몽의식 재조명 문단, 주인공의 주체의식을 다룬 청소년 비교독서

항몽유적지 코스모스밭에 떨어진 낙엽 하나, 김통정의 넋. ⓒ송미아
항몽유적지 코스모스밭에 떨어진 낙엽 하나, 김통정의 넋. ⓒ송미아

떨어진 낙엽 하나, 백일홍 군단, 참빗살나무와 억새의 행렬, 코스모스밭의 곧은 의지는 서로 어우러지며 항파두리의 넋을 기린다. 코스모스 밭에 들어서니 꽃잎의 움직임 하나에도 김통정의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어느 우주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쩌면 흔들리다 떨어진 씨앗들의 부름을 다 피우지 못한 제주인의 바람일까. 끝없이 펼쳐진 코스모스는 하늘거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김통정의 주체적 신념처럼 때로는 붉은 강렬함으로, 때로는 하얀 순수함으로 오직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고자 한다. 가을이 깊어갈 때, 김통정 장군은 코스모스가 되어 나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이 가을 코스모스 풍경과 함께 내 앞에 펼쳐진 길에 물음표 하나 남겨 놓았다.

최근 제주 문단의 작가들은 김통정의 항몽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작품을 내어놓고 있다. 김통정 설화를 바탕으로 한 색다른 해석과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활동은 김통정의 가치를 현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몇 세기를 넘어서까지 제주인에게 이어지고 있는 김통정에 대한 원초적 감동은 무엇일까.

설화의 생산자이자 향유자인 민중들은 자신이 품고 있는 가치관과 바람을 설화에 투영한다. 집단의 경험은 은유를 통해 대표성을 띠게 되고 역사적 사실을 변용하면서 현세에 이루지 못한 그들의 이상을 실현한다. 제주인들 역시 섬이라는 환경적 특징과 중앙정부에 의한 소외감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동안 구축된 공동체의 의식을 김통정 설화에 반영하고 있다.

이에, 김통정 설화의 화소들을 따져보며 여기 담긴 제주인의 의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김통정 설화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주체적 신념과 투지에 맞닿아 있는 다양한 작품들과의 비교독서를 제안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재의미화할 수 있는 김통정 정신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 다양한 문학에 재조명되는 김통정의 항몽 의식

제주인들이 김통정 설화를 오랜 시간 전승해온 까닭은 무엇일까. 중세의 중앙정부는 김통정을 시대의 역적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여몽연합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김통정의 최후는 설화를 통해 반역 사건에서 설화적 비극으로 승화되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배척당한 김통정의 영웅성은 어떻게 제주 설화에서 수용되고 인정된 것일까. 제주인들로 하여금 김통정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역사적 영웅화함으로써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김통정과 제주인들이 처한 공통적인 운명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섬이 지닌 고립성은 섬 주민들만의 독특한 의식과 문화적 양식을 만들어낸다. 척박한 자연환경은 강력한 토속신앙을 통해 자신들을 지켜줄 신을 만들어냈다. 또 타지역 주민들의 유입이 폭력과 배신으로 기억되면서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을 낳게 된다. 이는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치열한 의식과 외부의 폭력과 압제에 대한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식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주체적 신념의 발로라는 것이다.

김통정은 나라를 지키려 혁명적 사건에 자신을 던졌으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그를 다른 저울로 평가했다. 중앙으로부터 역적 취급을 받은 그가 이 땅의 주변부를 상징하는 제주를 마지막 거점으로 정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제주인과 김통정은 주변인으로서, 또 주체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자주적 인간으로서의 생명력을 공유하고 있다. 그 점이 김통정 설화가 제주인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전승되고 잊히지 않는 울림이 되는 까닭이라 할 것이다.

영웅설화는 민중들에 의해 구전되고 전승되는 민중 예술의 하나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문학을 향유한 계층이 지배층에 편중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설화야말로 민중들의 의식을 가장 오롯이 담아낸 살아 있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웅설화야말로 피지배층으로서 고통과 시련의 삶에서 자신들을 건져내 줄 특별한 인물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제주는 이러한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김통정을 통해 성사시키고 있다. 외지인인 김통정을 현지화하고 김통정과 주민들을 항몽 정신으로 연대화하였다. 또한 김통정의 비극적 죽음을 섬에 새김으로써 그가 이 섬에서 영원히 숨 쉬게 하였다.

설화의 결말은 두 연대자들 사이를 더욱 공고히 해줄 상징물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김통정이 남기고 간 장수발자국은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핍이 클수록 대상에 대한 고찰 또한 깊어지는 바, 제주에서 물은 그 효용성을 뛰어넘어 우주의 근원으로까지 인식되어왔다. 장수물은 그토록 기다려온 영웅을 잃은 제주인을 적셔줄 생명의 샘이자 위로의 수맥이다. 미완의 혁명, 미완의 영웅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설화로 승화해 낸 제주인들의 지역성과 독창성. 이는 현대 문단의 김통정 정신으로 재해석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제주인들에게 여전히 말을 걸고 있는 김통정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현대 문단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작품 전반을 분석하기보다 김통정의 항몽 의식이 내포된 부분만을 발췌하여 독자의 눈으로 감상하고자 한다.
 

항몽유적지 백일홍 군단, 다양한 항몽 이야기. 송미아
항몽유적지 백일홍 군단, 다양한 항몽 이야기. ⓒ송미아

[설화 시]
이시향- 살신성인의 돌, 김영숙- 살맞은 돌, 이무자- 김통정의 눈물 장수물

화살받이가 되어 몸에 생긴 구멍도
몽골항쟁 잊지 않는다면
살신성인 돌로
내 가슴이
아직도 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이시향, 설화 시 <살신성인 돌>

이시향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제주 역사의 보폭을 넓혀주고 저항 정신을 심어준 삼별초 의지를 시에 담아냈다. ‘화살받이가 되어 몸에 생긴 구멍’에서는 제주민과의 대립과 갈등, 화해의 마음까지도 함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김통정은 살신성인을 통해 저항의 섬인 제주에서 영원히 살아 있게 된다.

아울러 이시향은 ‘몽골항쟁을 잊지 않는다면’이란 당부와 함께 ‘도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라는 화자의 절절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설화 속 김통정의 항몽 정신은 설화 시의 재조명 문단에서 투영되어 다시 살아난다. 이시향은 제주인의 가슴에 뛰고 있는 항몽 정신을 시적 울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달빛에 배인
화살이 지나간 상처

살갗을 파고드는 얼룩을 지우며
눈물 되어 돌아온


억새를 베어다가
태왁 망사리를 만들고
보름달이 뜨는 밤
큰 웅덩이에 연못 만들어


유유자적 배를 띄워
시를 읊노라

- 김영숙, 설화 시 <살 맞은 돌 2>

김통정 개인의 노력이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항몽에 대한 그의 저항 의지는 주체적 신념 그 자체였다. 달빛에 베인 화살에 지나간 상처’라는 표현을 보면 거듭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감추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영숙은 눈물이 되어 돌아온 삼별초의 항몽 의지만큼이나 제주인의 아픔이 이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살 맞은 돌은 제주인의 상처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김영숙은 그것을 치유해주는 매개체로 ‘태왁’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태왁은 제주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살림살이의 기반이었다. 나아가 김영숙은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우며 시를 읊는 등의 자연회귀적 관점을 통해 깊은 슬픔과 좌절을 시로 승화시켰다.

돌아설 수 없는 벼랑 끝
오열로 끌어올린 통곡의 눈물
바위에 벗어 놓은 횃부리로 솟아
아픈 역사의 숨결로 흐르고 있네

 

- 이무자 <김통정의 눈물 장수물>

김통정은 장수물 설화 모티프에서 죽어가면서도 “내 백성일랑 물이라도 맘껏 먹고 살아라.”라며 물이 부족한 제주에 물을 남기고 갔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식수는 매우 중요하다. 항파두리 주변에서 ‘식수’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은 토성 주변에 고생했던 주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최소한이라도 보상하려는 의도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울러 물이 주는 상징성은 식수의 효용성을 뛰어넘어 우주의 근원으로까지 확장하여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장수물은 그토록 기다려온 영웅을 잃은 제주인을 적셔줄 생명의 샘이 아니었을까.

장수물설화를 시로 승화시킨 이무자는 ‘오열로 끌어올린 통곡의 눈물’이라는 표현에서 김통정의 절절한 아픔과 제주인의 바람을 통곡의 눈물에 비유하고 있다. 바위에 벗어 놓은 횃부리(장수들이 신었던 장화)는 그들의 항몽 의지가 짙게 밴 역사의 발자취를 상징한다. 이무자는 횃부리로 솟아난 아픔이었지만 결국 제주인의 마음에 동화되어 영원히 흐르고 있음을 시로 그려냈다.

[설화 극본]
김철수, 항몽의 그 울림

(중략)노인: 선생!
내가 하려는 얘기는 길거리 떠도는 얘기가 아니오. 적어도 수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을 우리 가슴속으로 타고 내려온 얘기요
(중략) 노인: 김통정 장군의 얘기요 들어봤소?
작가: 제주 항몽, 삼별초 그 김통정 장군! 정말 흥미로운 얘기요. 친구들을 빨리 오라 하시오. (중략)

 

- 김철수 설화 재조명 극본 <항몽의 그 울림>

김철수는 김통정 설화 모티프를 극본 형식으로 전개하면서 삼별초의 항몽 의지를 재구성했다. 극본에 등장하는 작가는 삼별초 항몽의 가치 지향성에 대한 작품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창작의 고통을 느끼다가 잠이 든다.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김통정 장군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사실적 효과를 내고 있다.

‘적어도 수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을 우리 가슴속으로 타고 내려온 얘기’는 관객들에게 김통정의 영웅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제주인의 마음 한켠에 영웅으로 그려넣었다는 것은 제주인의 고통과 시련의 삶에서 자신들을 건져내 줄 특별한 인물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김철수는 노인과 작가의 대화, 북의 장단, 춤, 김통정에 관한 스크린 영상, 내레이션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김통정의 영웅성을 드러내며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한다.

[설화 동화]
신임순, 나는 삼별초

(중략)
삼별초군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결국 제주 항파두리성은 무너졌다.
“앞으로! 앞으로!” 김통정 장군이 보내는 다급한 암호다. 퇴진이다.
우리는 살금살금 개구멍으로 성을 빠져나갔다. 넝쿨이 우거진 개천을 따라 오르니, 거기에는 삼별초 병사들이 벌써 수십 명 모여 있었다. 김통정 장군이 비장한 소리로 알렸다. “곧 적이 추적해 올 것이다! 어서 나를 따르라!”(중략)
그날 붉은오름으로 간 김통정 장군과 병사들의 죽음은, 끝까지 몽골에 항전하다 간 열사들이다.
나는 왜 그 대열에 끼지 못했는가.

 

- 출처: 신임순, 설화 동화, <나는 삼별초>

신임순은 목숨 걸고 싸우는 삼별초의 항몽 정신을 부각하면서도 결국엔 몰락하는 삼별초의 가슴 아픈 순간들을 설화 동화로 생생하게 그렸다. “곧 적이 추적해 올 것이다! 어서 나를 따르라!”의 울림은 곧 성이 무너지는 암담한 현실에서 외치는 김통정의 목소리이며 항몽 의지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하는 삶을 어떻게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이지만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붉은오름에서 흘린 피는 김통정과 병사들이 나라를 위해 끝까지 지켜낸 주체적 신념인 것이다.

김통정 설화는 비범한 출생과 신이한 능력 등 설화적 요소들을 차용하면서도 외지인인 김통정과 제주인들 사이의 갈등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역사가 기록의 결과물이라면 설화는 그보다 더 실제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만 전승자들의 시각에 의해 더욱 정교해지고 진실성을 담게 되는 것이다. 재조명 설화 동화 역시 이 점을 부각시켰다. 신임순은 ‘나는 왜 그 대열에 끼지 못했는가’라는 주인공의 극적 질문을 통해 독자들의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것은 제주인들에게 주체적 저항 의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통정이 제주의 토착 설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은 그 한 개인의 삶에서 제주인의 바람과 공통된 관심사가 발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지키고자 한 것이 어찌 반역의 죄인지, 섬사람으로서 섬과 섬의 문화를 지키려 한 것이 어떻게 불충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당대인들의 의식은 이렇게 설화를 통해 하나로 맞닿게 된다. 이렇게 김통정설화는 탄생되었다.

김통정 설화는 꾸준히 재조명되며 그의 정신과 제주인의 바람을 담아내고 있다. 이시향은 제주인의 가슴에 뛰고 있는 항몽 정신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김영숙은 제주인의 아픔과 바람을, 이무자는 김통정이 제주인에게 남긴 사랑의 마음을 시로 재조명했다. 그리고 김철수는 그의 극본에서 설화의 영웅성을 강조했으며 신임순은 김통정의 항몽 정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동화로 부각시켰다. 이처럼 다양한 의식들이 맞닿아 있는 설화를 재조명한 문단 역시 김통정의 진실성과 제주인의 바람을 합일해 나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주인공의 주체의식을 다룬 현대 매체와의 비교 독서

항몽유적지 참빗살나무와 억새의 행렬, 주체적 신념. 송미아
항몽유적지 참빗살나무와 억새의 행렬, 주체적 신념. ⓒ송미아

청소년 독자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어쩌면 자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의 세상이 올지도 모르며 계속 진화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유연성과 주체성이다.

최근 발표한 2022년 교육과정의 총론에서도 학생들의 유연한 사고와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강조한다. 청소년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과정과 청소년들의 주체적 태도를 중시하는 제도 도입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청소년기의 독서 활동이다. 독서를 통해 청소년들이 주체적 신념을 기르고 유연한 사고를 함으로써 학습자존감과 미래 사회에 적응할 힘을 키울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비교 독서 활동을 필수로 권장하고 싶다.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사고력을 확장하는 데 가장 기반이 되는 활동이다. 최근 항몽 의지를 재조명하는 문단에서 김통정의 주체 의식을 만나면서 필자는 고등부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 수업에서 관련된 비교 독서 활동을 진행했었다. 그 사례의 일부를 제시해 본다. 여기에서는 현대 단편 문학 <바비도>, 김통정 설화를 재조명한 성장소설 <특별한 하루>, 성장 영화 <야구소녀> 등의 작품을 비교 독서한 사례를 제시하겠다. 물론 일부 작품성에서의 한계점도 드러나지만, 여기에서는 작중인물의 주체성이 드러난 일부 지문만을 발췌하여 주제 중심으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단편문학]
김성한의 <바비도> - 종교적 신념에 따른 저항

(중략)“얼마든지 살길이 있는데 구태여 죽음을 택하는 그 심사를 모르겠구나.”
“산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죠. 당신같이 썩은 사람은 살아 있지도 않고 살 가망도 없습니다. 산 송장이죠, 구더기가 이물이물하는.” (중략)
“나는 나대로 인간을 폐업하렵니다. 이 인간사를 뛰어넘은 길을 가야겠습니다.”

김성한의 한국단편 <바비도>는 영국의 헨리 4세 시대, 영역 복음서를 읽어 이단으로 지목받는 주인공 바비도가 종교 재판에서 회개를 권유받았으나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저항하다 끝내 분형에 처한다. 그는 낮은 신분인 재공직공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주체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는 “산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더 들여다보자면, 주체적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즉 실존적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즉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본질적인 삶의 방향성을 강조한 말이다. 아울러 권력에 굴종하며 안일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암묵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영국 사회의 종교적 배경을 차용하여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바비도처럼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간 시발점 또한 개인의 희생에서 시작되었다.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후 4·19 혁명이 성공하였고, 이한열의 죽음으로 확대된 6월 민주화 운동이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김성한은 바비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은 작아 보여도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개인의 신념이 후대에 남겨지는 보편적 가치와 상징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설화 재조명 성장소설]
박미윤, <특별한 하루> - 왕따를 도모하는 친구들에 대한 저항

경주는 소위 말하는 반에서 왕따입니다. 존재감이 없는 학생입니다. (중략)
“누구세요?”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허어, 요놈 봐라. 맹랑하구나, 그래, 나는 김통정 장군이다. 너는 누구냐?” (중략)
나는 경주에게 진을 얘기하기로 큰마음 먹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경주와 대화한다면 패거리에서 떨궈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나는 쏟아지는 욕 들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밑에 답글을 달았습니다. (중략) 어디에선가 김통정 장군의 껄껄 웃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 출처: 박미윤 설화 성장소설 <특별한 하루>

박미윤의 <특별한 하루>는 중학교에 막 입학한 주인공이 자기 주체성을 찾아가는 설화 단편 성장소설이다. 이 시기 학생들은 한창 부모에게 삐딱한 감정을 표출하고 친구들의 세계에 휩쓸리기 쉽다. 주인공 진혁이는 친구들과 경주를 따돌리는 작전 모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여하던 학생인데, 꿈에 나타난 김통정의 삶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주체적 행동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박미윤은 청소년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액자식 소설 구조를 선택하여 꿈속에서 만난 김통정의 삶을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김통정을 통해, 그동안 친구들과 왕따시켰던 경주를 동등한 인격체의 친구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왕따를 도모한 패거리들에게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의 역할 중 하나는 독자들이 주인공의 다양한 삶에 감정이입 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게 안내해 주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의 독자들에게 박미윤의 성장소설은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과 주체적인 행동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성장 영화]
최윤태 감독 <야구소녀> - 여자라는 편견에 저항

야구소녀 포스터. 네이버 제공
야구소녀 포스터. ⓒ네이버 제공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주수인)
(중략) “빨리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아!”(엄마)
(중략)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깐 여자건 남자건,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예요”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주수인)

최윤태 감독의 <야구소녀>는 주인공 주수인이 세상의 편견에 저항하며 야구선수의 꿈에 대한 신념을 꿋꿋이 지켜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주수인은 오직 야구밖에 모르고 야구장에서만 행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자는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수인은 천재 야구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받아 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주변인들 대부분이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 그러나 주수인은 “야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깐 여자건 남자건, 그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라는 편견과 차별에 저항한다. 주인공 주수인은 세상의 벽을 깨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자녀의 꿈을 가장 지지해줘야 하는 엄마도 어려운 살림살이에 “빨리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냐!”라며 야구를 포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한다. 주수인은 이런 환경적 어려움까지도 극복해나가며 자신의 의지를 펼친다.

최윤태 감독은 주수인의 주체적 신념의 의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그동안 보이지 않게 세상에 깔려있던 편견 의식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라는 명쾌한 그의 주체의식은 특히 주수인과 같이 자신의 진로와 꿈을 향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강한 울림을 줄 것이다.

<바비도>에서는 개인의 신념은 힘이 약할지라도 그것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별한 하루>에서는 김통정의 주체 의식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성찰하고 친구를 동등한 인격체의 친구로 바라보게 되는 주인공의 태도 변화를 끌어냈다. <야구소녀>에서 최윤태는 여자라는 편견으로 모두가 만류하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청소년기의 주체성을 상징하고 있다. 독서는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보고, 그 결과를 재구성해내는 단계까지의 복합적인 탐구 활동이다. 여기서 다양한 텍스트란 종이책만이 아니라 그림, 영화, 음악, 문화 등의 여러 영역을 아우른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비교 독서를 통해 단순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유연한 사고와 주체 의식을 키울 수 있다.

지금까지 세 작품의 공통점과 각기 다른 신념 표출 방법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주체 의식을 살펴보았다. 고등부 학생들과 일련의 비교 독서 활동을 통해 작품의 주제가 갖는 의미를 내면화할 수 있었다. 이어서 자신의 꿈과 주체 의식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개인과 집단의 주체 의식에 대해 확장 토의하는 활동을 했다. 아울러 주인공들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지키고, 용기를 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에세이를 쓰는 것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 코스모스의 길처럼 곳곳한 자신의 길을 향하여

김통정 설화를 재조명한 작품들 속에서는 하나같이 그의 ‘항몽의지를’ 부각했다. 그의 항몽의지는 제주인의 결핍과 바람의 소리를 감싸주었으며 제주인들의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정신적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전쟁과 시련이라는 슬픔의 바다를 건너면서도 그의 불굴과 저항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항몽유적지 코스모스의 길, 김통정의 곧은 의지. 송미아
항몽유적지 코스모스의 길, 김통정의 곧은 의지. ⓒ송미아

가을날 만발한 코스모스가 뒤덮인 항몽유적지는 화사했다. 처음에는 길이 없어 암담했던 코스모스밭에 길이 생겼다. 이제 코스모스밭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다. 그것은 김통정을 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그 길은 거스를 수 없었던 제주인과 김통정의 합일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 속의 다양한 충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체 의식을 내뿜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자신과의 투쟁을 내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폈던 김통정 재조명 문단과 비교 독서 활동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인 주체 의식에 대한 성찰을 주문한다. 이는 형형색색의 의지를 표명하는 코스모스밭의 꽃잎들처럼 유연한 사고와 함께 성숙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정신적 여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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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잼 2021-12-11 21:52:25
세상은 모두에게 행복하게 잘 지내자고 하면서, 아직도 언론에서는 친미, 친중, 친일, 친북 등 파벌주의를 고집하며 집단을 나누고 서로가 적개심이 들도록 한다. 어떤 나라에 대해 좋게 보는 것이 나쁜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친원파가 그랬듯이 그것이 나라를 좀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좁게 보면 파벌주의는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직장, 어쩌면 친구 사이에서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 생활'이라는 용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이 실제로 주체적인 삶을 살기란 매우 힘들다. 외지인인 김통정이 이토록 회자 되는 것은 공공선을 위한 노력도 있겠지만 오히려 주체적인 제주도민들의 포용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왜 그 대열에 끼지 못했는가"

2021-11-10 19:01:13
제주설화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거 좋은거 같아
요~항파두리에가면 코스모스앞에서 사진이나 찍다왔지요~~고려시대의 성 이라는 건 의식도 못하고...
김훈의 칼의노래 을 읽으면
디지털보단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에 푹빠지듯
계속 느림의 미학을 요새 얘들에게 깨우쳐주는게 좋은것 같아요 ~~

강영미 2021-11-10 21:22:55
시와 설화,영화까지 넘나들며 김통정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을 간구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 어려있는 맑은 넋들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경아 2021-11-10 22:18:52
김통정의 역사적 재조명에 그치지 않고 각기 다른 세편의 매체를 통해 주제확장을 해주셔서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연그대로 2021-11-10 13:13:29
진짜 코스모스가 장관에네요.
코스모스와 함께 우리 의식을 돌아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