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에 필요한 것은 ‘토지 윤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에 필요한 것은 ‘토지 윤리’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1.19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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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을 보며

서녹사 회원, 도시우회도로 문제점 줄기차게 제기
“땅을 상품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줘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윤리’라고 부르죠. 거기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답니다. ‘마땅히’라는 단어에서 강제성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격에 맞는 행동이 그 단어에 들어 있다고 봐야죠.

윤리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만 유효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자연을 대할 때 역시 윤리는 필요합니다. 사람사이의 관계만 격을 따지지 말고, 자연을 접할 때도 격을 갖출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 현대 환경윤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알도 레오폴드(1887~1948)인데, 그는 자신이 쓴 <모래 군(郡)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통해 ‘토지 윤리’를 말합니다.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세요.

토지 윤리는 이 공동체의 범위를 토양, , 식물과 동물, 곧 포괄하여 토지를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것이다. 토지 윤리는 인류의 역할을 토지 공동체의 정복자에서 그것의 평범한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변화시킨다. 토지 윤리는 인류의 동료 구성원에 대한 존중, 그리고 공동체 자체에 대한 존중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인간은 사실상 생명 공동체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를 생태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활동으로서만 설명되어온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실제로는 사람과 땅의 생명적 상호작용이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은 기자회견과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무차별적인 도로 확장이 아닌, 자연과 어우러지는 도심을 바라고 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은 기자회견과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무차별적인 도로 확장이 아닌, 자연과 어우러지는 도심을 바라고 있다.

왜 레오폴드는 우리를 향해 정복자라고 했을까요. 이유는 있죠. 우리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식물 개체를 절멸시켰잖아요. 우리는 몸집이 크고 아름다운 많은 종의 동물을 몰살시켰잖아요. 우리가 정복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명 공동체의 일원을 향한 무차별적인 학살에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뭐라고 불리나요? ‘인류세(人類世, the Anthropocene)’라는 말을 듣잖아요. 인류세가 뭔가요? 우리가 지구를 정복했다는 선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불리는 온난화를 만든 우리잖아요.

레오폴드는 ‘토지 윤리’를 말하며, 우리는 정복자가 아닌, 지구 전체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만 살겠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곁에 있는 자연과 함께 살라는 뜻입니다.

며칠 전에 귀한 상을 받은 단체 한곳이 있습니다. 스무 남짓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이름이 기니 ‘서녹사’로 줄여 말하겠습니다. 서녹사가 받은 상은 ‘제2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입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생태보존을 이야기하는 사단법인 ‘세상과함께’에서 주는 상입니다. 자연을 정복하려 들려는 이들에겐 이 상이 하찮게 치부되겠지만, 왜 이런 상을 받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훑어보십시오. 서녹사 회원들이 상을 받은 이유는 땅을 단순한 부동산의 가치로 보지 않고, 윤리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지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5차례의 대멸종을 겪었듯, 자연은 유한합니다. ‘인류세’라는 단어는 그런 유한한 자연의 수명을 더 줄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녹사 회원들은 좀 더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걸 해보자고 나섰습니다. 요즘엔 ‘숲세권’이라는 용어도 뜬다는데, 도심 가까이에 숲을 보유한 곳이 최적의 삶을 지닌 곳이라잖아요. 서녹사는 그렇게 해보자고 나선 시민들입니다.

지구라는 공동체를 존중하라는 레오폴드의 이야기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여 봅니다. 레오폴드는 토지에 윤리를 입혔습니다. 레오폴드에게 땅은, 도로를 포장해서 없애야 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할 윤리적 대상으로 보고 있답니다. 아울러 제주에서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의 격에 맞게 자연을 바라봤으면 하는 소망을 전해봅니다.

우리는 토지를 우리가 소유한 상품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용하고 있다. 토지를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토지를 사랑과 존중으로써 이용하게 될 것이다. 토지가 기계화된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살아남고, 우리가 과학의 지도 아래 문화에 제공할 수 있는 심미적 수확을 거두어들일 수 있으려면 달리 길이 없다.”  - <모래 군(郡)의 열두달>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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