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예술의전당'을 꿈꾸지 말고, '제주의 공연장'을 만들자
'예술의전당'을 꿈꾸지 말고, '제주의 공연장'을 만들자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11.23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KoCACA교류협력네트워킹 토론

제주 문화예술 활성화 위해선? "천편일률적 다목적 공연장 탈피해야"
"모두가 예술의전당 지향할 필요 없어"... "제주 특색 살린 공연을 하자"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11월 23일, 2021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KoCACA교류협력네트워킹 토론 현장 모습.

“지역마다 있는 공연장을 보면, 특색이 없어요. 프로그램도 기획사에서 구입해 진행하니 동네마다 다 똑같죠. 이런 후진적인 모습을 탈피해야 합니다.”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KoCACA 교류협력네트워킹’ 토론자로 참석한 과천문화재단 박성택 대표의 발언 중 일부 내용이다.

11월 23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토론회 자리에선 전국 문예회관 운영을 위한 관계자들의 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토론자 중 상당수는 국내 문예회관의 운영 시스템과 문화예술 관련 제도 등에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공공을 위한 문화예술기관’이 되기 위해선 전문성 강화, 정책적인 뒷받침, 임직원 사고의 변환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성택 대표는 국내 문예회관의 시설구조나 운영방식을 “최후진국 수준”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박성택 과천문화재단 대표.

우선 박 대표는 국내 문예회관의 수가 2000년대 들어서며 급증한 사실을 알렸다. 2018년 기준 국내 문예회관의 개수는 총 255개. 대극장과 소극장 등 내부 공연장 시설을 집계하면 421여개가 존재한다.

박 대표는 이 같은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꼬집었다. “수적으로는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데, 문예회관의 시설구조, 운영방식 등 내용 면에서 보면 경제선진국, 한류 문화강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최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의 혹평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국 곳곳의 문예회관(혹은 공공 문화예술기관) 소속 지방 공무원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라고.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예술의전당을 본받지 말고, 표본으로 삼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그는 지역마다 다른 환경의 특성을 이해한 뒤, 그에 따른 문화정책을 꾸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과 인구 20만의 지방 도시는 기본적인 환경부터가 다릅니다. 예술의전당은 26년 동안 직원들의 인건비를 한번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시설관리비 일부만 받을 뿐, 직원들의 급여나 예술사업비 등은 예술의전당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죠.”

박 대표에 따르면, 예술의전당의 주 수입원은 ‘대관료’다. 임직원 인건비와 사업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상당량의 대관료가 매년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는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이기에 가능한 일일 테다.

“지역 실정에 맞는 공연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국이 천편일률적인 공연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연장 대부분이 ‘다목적’으로 지어져 있고요. 특히 우리나라는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는 전용홀이 몇 개 없어, 국민들은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를 관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후진적입니까.”

박 대표는 국내 문예회관 중 상당수가 ‘다목적홀’의 개념으로 지어진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여러 공연을 올리기에 용이할 순 있지만, 반대로 장르별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지자체의 ‘장’들이 문예회관 등 기관장을 임명하는 현실도 문제라고 했다. “선거캠프 출신, 퇴직 공무원” 등이 공연’장’으로 임명되며 전문성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제주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제왕적 도지사’의 힘으로 제주도 산하 기관장들이 임명되었고, 이 같은 ‘보은인사’ 문제는 도내 문화예술기관장 임명 시 여전히 발현되고 있다. 

한편, 이날 <미디어제주>는 토론 자리에서 제주의 문화예술 현안에 대해 질의해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문예회관, 서귀포 예술의전당 등 제주 문화예술 기관과 단체가 매년 많은 지원을 해왔지만, 막상 제주도민의 일상에는 문화예술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었다. 많은 도민이 진정 ‘문화예술이 가진 힘’을 알고, 이를 일상에서 느껴 행복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예술인연대 고문이자 연극배우인 박준석 고문은 “제주 예술가가 주체가 되어 공연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석 예술인연대 고문.

박 고문은 현재 문예회관 등에서 이뤄지는 공연은 “일방적으로 행정이 예술가를 컨택해서 만들어지는 형태”인 점을 알렸다. 이것이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 중심”인 문화예술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행정은 예술가에게 공연비를 지급하고, 예술가는 ‘을’의 입장에서 간택되기를 바라는 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예술인연대 권용만 대표는 “레파토리 극장”의 필요성을 말했다.

레파토리 극장이란,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한 6일 동안 매일, 끊임없이 공연이 계속되는 극장을 뜻한다. 공연도 하루 1회가 아닌, 영화관 상영표처럼 온종일 공연이 지속되는 형태다.

즉, 관객이 공연을 보고싶을 때 언제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독일의 경우 142개 공공극장이 ‘레파토리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덧붙였다. 독일에선 전문가(전공자, 프로 예술인)와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의 공연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합창단 공연에서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고, 코러스로 일반인들이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는 형태다.

이 같은 공연 방식은 지역민이 문화예술에 더 관심을 쏟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 된다.

이에 권 대표는 “제주에 레파토리 극장이 자리잡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극장에 가면 항상 공연을 하는 문화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렸다.

과천문화재단 박성택 대표는 “제주 지역의 특성을 살린 공연을 꾸준히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역사가 깊은 문화예술 행사를 활용하는 등 방법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제주도는 지역마다 합창단이 있고, 경연도 자주 이뤄지고 있다”면서 “합창에 집중해서 (공연계를) 육성하면 좋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특히 그는 “전국 대다수 문예회관들이 ‘모든 장르 공연’을 무대에 올리려 하다 보니, (문화예술 생태계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면서 “지역의 특징을 살린 문화예술 사업을 하면, 성공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한편, 예술인연대 박준석 고문은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이란,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곧 예술이고, 문화입니다. 감동 없이 기술만 화려한 작품이라면 예술이라 하기 어렵겠죠. 제주 사람들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제주 사람들의 감성이 담긴 작품을 보다 자주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 고문은 행정, 그리고 제주도민들이 예술인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 것(대형 작품)은 좋고, 제주 것(소소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은 실패한다”는 생각은 “지독한 편견”이라며, 지역 예술가들이 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예술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이 곧 예술이고, 문화다”라는 박 고문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 되는 문화예술이 제주에 꽃 피기를 바라본다.

(왼쪽부터)예술인연대 권용만 대표, 성남문화재단 최현희 경영국장, 포스텍 양은영 교수, 예술인연대 박준석 고문, 과천문화재단 박성택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