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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이 되는 인천,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관문’이 되는 인천,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2.06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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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지역을 말하다] <7> 인천와 건축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은 건축이라는 틀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건축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대를 만들어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結晶)이다고 외친 건 건축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시대의 결정을 탐구하려고 그동안 숱한 건축 기획을 하며, 건축가들을 만나곤 했다. 기억 나는 건축가들과의 만남을 들라면 <나는 제주건축가다>를 꼽겠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의 젊은 건축인들이 이야기하는 제주를 담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담았으나, 다른 지역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침 기회가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예총 제주도연합회(회장 김선영)와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회장 문석준)가 공동 주관하는 ‘2021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1211일부터 16까지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도가 아닌, 6대 광역시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고, 각 지역의 건축가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 주]

 

다양한 기억 존재하지만 한데 어울리지 못해

송도 등 신도시는 무미건조함으로 비판 받아

“새로운 기억보다 장소의 가치 인식시켜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도시 인천은 ‘관문(關門)’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된다. 관문은 서로 다른 것을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새로운 걸 알리는 ‘시작점’이다. 그 시작점은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소통’이라는 전혀 다른 단어가 되기도 한다.

인천은 백제와 연관되는 역사를 지녔다. 인천은 백제라는 소통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 지위는 아쉽게도 서울에 뺏겼다. 역사는 그 장면을 남기고 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가 없었다. 위례성으로 돌아와서 보니, 도읍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편안하고 태평하므로 마침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다가 죽었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에 복종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 시조 온조왕 조(條)

백제의 탄생에 비류가 있다. 비류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첫째 아들이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사실 여부를 제쳐두고, 동명왕의 또 다른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유리왕에 밀려서 비류와 그의 동생인 온조는 남쪽으로 내려온다. 비류가 처음 터를 잡은 지역은 인천에 해당하는 미추홀이었고, 동생 온조는 지금의 서울에 속한 위례였다. 비류는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인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지만 어쨌든 백제의 근간을 이룬다고 역사는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 때 인천항의 모습. 미디어제주
일제강점기 때 인천항의 모습. ⓒ미디어제주

백제 탄생에 대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시작점’에 있다. 모든 것은 ‘시작’이라는 행위를 포함한다. 건축이라는 주제는 어딘가에서 ‘시작’이 있었고, 우리는 그 기억을 추적하는 존재이다.

 

인천은 광역시로 거듭나면서 다양한 색을 지니게 됐다. 조선시대 이전의 인천이 있고, 일제강점기의 인천이 있고, 한국전쟁의 인천이 있고, 새로운 도시를 꿈꾸는 인천이 있다. 어떤 인천이 본래의 인천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런 혼란은 따지고 보면 ‘관문’이라는 단어에서 찾게 된다. 관문이기에 폐쇄라는 걸 통해서 역사를 이뤄온 측면이 있고, 관문이기에 다양한 걸 받아들인 모습도 있다.

강화도가 인천에 포함되기 이전의 인천과 그 이후의 인천은 완전 다르다. 갯벌을 개발하고 나서의 인천과 그 이전의 인천도 다르다. 인천은 갈수록 달라진다. 그 달라짐은 늘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포함한다.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들이밀자면 건축가 루이스 칸(1901~1974)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루이스 칸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있었던 것은 늘 있었다. 있는 것도 늘 있었다. 있을 것도 늘 있었다.” 루이스 칸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테지만, 과거나 현재·미래를 관통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걸 달리 말하면 과거에 누군가가 뭔가를 만들고, 현재도 뭔가를 만들고, 미래에도 뭔가를 만든다는 뜻이 된다. 만든다는 건 어찌됐던 창조라는 ‘새로움’을 말한다.

도시로서 인천도 루이스 칸의 말과 닮은 점이 있다. 인천은 과거에 있었던 것, 현재에 진행되는 일들, 미래의 행위들이 녹아 있다. 루이스 칸의 말을 다시 빌려 인천을 이야기하자면 인천은 “만들어진 도시, 만들어지는 도시, 만들어질 도시”로 설명 가능하다.

<삼국사기>에 등장했던 인천이 새롭게 주목을 받은 때는 개항 이후였다. 일본과의 불평등조약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에 인천은 새로움을 얻는다. 이후 인천이 개항을 하면서 외국인 거주지인 조계지가 형성되고, 인천은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를 유입하는 창구가 된다. 막혀 있던 관문이 소통하는 관문으로 변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다른 색을 지닌 인천이 도시로서, 건축으로서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답을 하기는 어렵다. 각각의 특성이 서로 통하지 않고, 개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원도심은 원도심대로, 과거의 역사를 지닌 강화도는 강화도대로, 새로운 도심인 송도와 청라지구는 그 나름대로 존재만 한다. 한데 섞이기는 힘들다.

비판은 늘 곁에 있다. 하나의 도시이면서도 섞이지 못하는 구조를 지닌 인천은 간혹 비판 대상이 되곤 한다. 송도의 경우를 볼까. 도시 연구의 권위자인 리처드 세넷은 그의 책 <짓기와 거주하기>를 통해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단조롭고 모니터링이 과도하며 중앙집중화된 송도에는 다양성이나 폴리스가 찬양하던 민주주의의 특징이 전혀 없다. 이 공간은 도시계획가에게는 악몽이며, 컴퓨터 회사에게는 환상이다.”

인천의 옛 조계지에서 바라본 현재 인천항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미디어제주
인천의 옛 조계지에서 바라본 현재 인천항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미디어제주

리처드 세넷의 이 말 속엔 인간미가 없는 무미건조함의 도시 이미지를 송도가 지녔음을 말한다. 그건 어쩌면 불행이다. 아무리 AI 시대가 다가온다고 하지만, 인간미가 빠진 기술은 사람 위주가 아닐 수 있음을 리처드 세넷이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도가 이런 비판을 받지만, 사실 인천은 인간미 넘치는 지역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기술을 집약시켜 쏟아붓는 일도 필요할테지만, 인천의 원도심처럼 인간미가 넘실대는 도심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기억을 지녔고, 사람들은 늘 기억을 따라서 움직이곤 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인천’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원도심 인천을 보려고 사람들이 오가고 있음을 주목하면 된다. ‘만들어지는 인천’은 사람이 새로운 도심에 살기만 할뿐, 인간미는 빠져 있다. ‘만들어질 도시’로서 인천은 어때야 할까.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보다는 인천이라는 장소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인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려 했던 ‘151층 인천타워’가 무산된 이유를 상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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