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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공업도시 이미지 벗고 생태도시로 “변신중”
매캐한 공업도시 이미지 벗고 생태도시로 “변신중”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2.10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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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지역을 말하다] <11> 울산과 건축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은 건축이라는 틀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건축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대를 만들어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結晶)이다고 외친 건 건축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시대의 결정을 탐구하려고 그동안 숱한 건축 기획을 하며, 건축가들을 만나곤 했다. 기억 나는 건축가들과의 만남을 들라면 <나는 제주건축가다>를 꼽겠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의 젊은 건축인들이 이야기하는 제주를 담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담았으나, 다른 지역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침 기회가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예총 제주도연합회(회장 김선영)와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회장 문석준)가 공동 주관하는 ‘2021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1211일부터 16까지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도가 아닌, 6대 광역시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고, 각 지역의 건축가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 주]

 

자동차, 조선, 태화강 등 이질적 키워드 존재

‘보존’과 ‘개발’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이 양립

“동네가게 ‘녹슨’은 지역성의 새로운 가능성”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축, 지역을 말하다’는 주제의 건축기획도 서서히 저문다. 6개 광역시를 돌며 도시를 만나고, 지역 건축가를 만났다. 마지막 도시는 울산이다. 울산은 개인적으로 강렬한 기억을 지녔다. 좋은 기억은 아니고, 수학여행 때 기억이다.

중학교 2학년 때다. 1979년으로 당시만 하더라도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꿈의 여행’이었다. 경남 진해의 진해중학교를 다닐 때였고, 까까머리 중학생 2학년들이 목표로 삼은 수학여행지는 경주였다. 경주로 가는 길목에 잠시 들른 도시는 울산이었다. 왜 울산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버스 창문 닫아라”였다.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더라도 창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매캐한 냄새는 코를 자극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나?”

울산은 공업도시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때는 전국 소득 1위를 기록한 도시였다. 울산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킨 일꾼들이 있다. 중학생이 마주했던 매캐한 매연은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당대의 흔적이기도 했다.

이젠 그런 흔적은 찾기 힘들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나?”며 생각을 하던 도시는 이젠 없다. 오히려 울산은 생태도시로 변하고 있다.

울산은 공업도시이면서 ‘울산 큰애기’라는 캐릭터를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울산 큰애기’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민요풍의 신민요로 등장한 노래가 있고, 산업화시대 울려퍼진 ‘울산 큰애기’가 있다. 이 두 노랫말을 곰곰이 되새기다 보면 변하는 울산을 짐작 가능하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요 ‘울산 큰애기’는 정 많은 울산 아가씨를 말한다. 울산은 경치도 좋은데, 인심도 좋은 곳임을 이야기한다. 1969년 가수 김상희가 부른 ‘울산 큰애기’는 산업화 시대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부부의 심정을 표현했으나 슬프지 않고 씩씩하다.

생태하천으로 변하고 있는 태화강과 주변의 아파트. 미디어제주
생태하천으로 변하고 있는 태화강과 주변의 아파트. ⓒ미디어제주

변하는 울산을 이야기하며 울산의 건축을 떠올려 보자. 울산은 1962년 시로 승격했고,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가 된다. 개발을 집적시키며 발전이 이뤄진 도시이다. 울산은 1990년대에 오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1994년 ‘도농 복합형태의 시 설치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이듬해 행정구역 개편으로 울산에 울주군이 포함되고, 1997년부터 광역시로 변했다.

울산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도시의 속성을 지금까지는 잘 구축해왔다. 하지만 도시는 간혹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루소는 도시를 향해 “인류가 뱉은 가래침”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도시의 그릇된 성장 방향을 지적한다. 개발 위주로만 진행이 되고, 주변 환경을 챙기지 않을 경우 나타나는 도시의 문제점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울산도 공업도시로 성장을 하며, 루소의 경고처럼 자라왔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은 바로 루소의 말과 닿는다.

울산은 한때 루소의 지적처럼 달렸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도시는 성장을 하면서 환경을 뒤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울산은 깨닫고 있다. 울산의 태화강은 공업화의 때를 벗고, 생태하천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산에 맞는 건축은 무엇일까. 그에 앞서 울산 건축과 관련된 키워드로는 뭐가 있을까. 현대그룹, 자동차, 조선 등이 우선 떠오른다. 여전히 그 키워드는 공업과 관련된다. 키워드를 더 생각해보자. 태화강이 있고, 고래, 반구대, 언양불고기 등이 떠오른다. 이들 키워드는 한데 묶여서 소통을 하기보다는 따로 논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양 측면을 울산의 키워드는 떠오르게 한다.

지역성이라는 화두는 특수한 장소의 지리적 특성과 문화, 기후 등의 풍토로 이해를 해왔다. 이런 전통적인 지역성 화두는 울산이라는 도시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울산의 건축은 지리적 특성이나 문화, 기후와 관계없이 공업화로만 진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역성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여야 한다. “서울과 같은 건축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전제를 달아야만 새로운 지역성은 가능해진다. 어쩌면 지역 건축가의 활동이 도시 전반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울산 원도심에 있는 동네가게 '녹슨'. 정웅식의 작품인 녹슨은 주변을 변하게 만들며, 새로운 지역성을 창출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울산 원도심에 있는 동네가게 '녹슨'. 정웅식의 작품인 녹슨은 주변을 변하게 만들며, 새로운 지역성을 창출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울산 중구의 동네가게인 ‘녹슨’(설계 정웅식)은 기억을 새롭게 창출한, 울산 지역 건축가의 작품이다. 녹슨은 골조를 마무리한 외벽에 동판 1549장을 덧댄 작품이다. 동판을 어떻게 구현을 할지를 다양하게 실험하며, 작품을 내놓았다. 동판은 변하게 마련이다. 녹슨이 들어선 지역은 원도심으로, 쇠락하던 곳이다. 그 기억을 녹슨은 담았다. 녹슨은 아울러 늘 새로운 기억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동판이라는 재료 자체가 그렇다. 동판은 짙은 갈색을 처음엔 띠다가 종국엔 은은한 청녹색으로 탈바꿈한다. 그런 기억의 변화를 건축가 정웅식이 노렸는지도 모른다. 녹슨이 들어오면서 주변도 달라졌다. 땅의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역성이 곧 풍토였던 시대는 기술제한을 받던 과거의 일이다. 울산 지역의 ‘녹슨’ 사례는 얼마든지 건축의 지역성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울산 큰애기’ 이야기를 꺼냈는데, 지역성은 다양한 이들의 고민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큰애기라는 캐릭터가 울산에 있다. ‘울산 큰애기’라는 노래에서 출발, 울산 원도심의 캐릭터로 변했다. 울산 중구에 가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인형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버티고 있다. 도심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고, 기억도 얼마든지 창출될 수 있음을 이런 사례는 말한다. 곧 지역성은 시대를 반영한다.

도시와 농촌이 복합된 울산. 울주군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모습은 울산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디어제주
도시와 농촌이 복합된 울산. 울주군에서 멀리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은 울산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디어제주

그러나 울산이라는 도시는 더 성장을 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도심은 도심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각각의 특성을 살리며 존재해야 할지, 농촌을 도시처럼 아파트촌으로 만들지의 여부이다. 농촌마저 개발된다면 울산이라는 도심은 더 커지겠지만, 도시와 다른 모습이던 농촌은 원래의 색을 잃기 때문이다. 어쩌면 울산 지역 건축인들이 진지하게 논의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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