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가족이 있어 글을 쓸 수 있답니다”
“내겐 가족이 있어 글을 쓸 수 있답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2.30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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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시인 이승일, 세 번째 시집 내놓아
가족 이야기가 담뿍 담긴 <가족사진> 펴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엄마는 늘 아들을 바라본다. 태어날 때부터 한시도 아들을 자신의 눈에서 놓지 않았다. 사랑으로 보다가도, 어떤 때는 안쓰럽기도 했다.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겠지만 시인 고혜영의 눈에 지적장애를 지닌 아들은 더더욱 그랬다.

아들은 이젠 서른을 넘겼다. 늘 엄마 주위에 있는 아들이지만, 어떤 때는 아들이 아닌 시인으로 엄마를 대하곤 한다. 아들은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했고, 글은 가족들에겐 지적장애를 잊게 만드는 도구였다.

시인 이승일의 세번째 시집 '가족사진'. 미디어제주
시인 이승일의 세번째 시집 '가족사진'. 미디어제주

나이 서른 둘의 아들 이승일씨. 아니 시인 이승일. 그가 세 번째 시집을 들고 세상과 교우한다. 세 번째 시집은 <가족사진>으로, 도서출판 한그루가 내놓고 있는 ‘한그루 시선’ 15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가족사진>은 시인 이승일의 글과 그가 찍은 사진이 담겼다. 시인 이승일의 가족은 엄마만 있는 건 아니다. 누나도 있고 형도 있다. 조카도 시인의 눈엔 시로 읽힌다. 그런 이야기가 <가진사진>을 메운다.

누나 농사
형아 농사
손주 농사
나 농사

엄마의 마음 밭에
가족 농사짓습니다

우리 집 마당 가득히
엄마꽃이
핍니다

- ‘엄마꽃’ 전문

시인 이승일의 시는 가족의 소중한 존재를 일깨운다. 가족은 대화를 나누는 친구이며,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이며, ‘엄마꽃’에서 보듯 마음 깊이 담아두고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만일 글이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시인 이승일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글은 지금의 이승일을 만들었고, 가족의 사랑을 알게 만든다. 사람은 태어나서 걷기까지 힘든 발걸음을 하듯, 시인 이승일은 서른 두 살이 되기까지 남모를 걸음걸이를 해왔다.

서른 살이 지나고
서른한 살 맞은 나





길을 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반달이 밤하늘에서
하얀 미소 보냅니다

‘서른의 정거장’ 전문

시인 이승일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시원해지고, 입가엔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족사진>에 담긴 사진은 피사체가 또렷한 맑은 사진도 있지만 바람에 흔들리듯 초점을 잃은 사진도 있다. 이유는 있다. 시인 이승일의 눈은 편치 않아서다. 망막박리 수술을 받고, 희미한 왼쪽 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때문에 가족은 시인 이승일에겐 ‘눈’과 같다.

시인 이승일의 <가족사진>을 펼친다면, 엄마의 이야기를 먼저 읽으면 좋다. 엄마 고혜영씨는 <가족사진> 말미에 ‘엄마의 글’을 통해 곧 서른 셋이 될 시인 이승일의 존재를 말한다. 아니, 가족을 말한다.

시인 이승일은 중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첫 시집 <엄마 울지 마세요, 사랑하잖아요>를 내놓았고, 당시 지적장애로는 유일하게 <장애예술인총람, 2010년>과 <한국장애인문학도서> 시 부문에 올랐다. 2018년 <직진 버스 타는 구름>을 세상에 발표했으며, 지난해는 ‘별님이 놀러 온 날’로 제3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우수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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