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내가 아는 제주를 가나다로 표현해 본다면”
“내가 아는 제주를 가나다로 표현해 본다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2.03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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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제주 읽기] <1> 제주가나다

제주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사진으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제주를 나타내곤 한다. 물론 아주 긴 텍스트로 제주를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제주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표적은 대부분은 어른이다. 여기서 빠지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제주의 미래 주인들인데, 우리들은 제주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을 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른은 물론, 아이들을 포함시켜 제주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누구나 손에 쥐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른의 시선도, 아이의 시선도 그림책엔 담긴다. 그렇게 해보자며 만든 단체도 있다. 제주그림책연구회다. 연구회 회원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제주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미디어제주>는 올해부터 제주그림책연구회가 내놓은 그림책을 중심으로, 제주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 주]

 

2004년 제주그림책연구회 첫 결과물
14가지 키워드로 제주의 가치를 설명

제주그림책연구회 첫 작품인 '제주가나다' 표지. 미디어제주
제주그림책연구회 첫 작품인 '제주가나다' 표지. ⓒ미디어제주

한때 유행한 동시가 있다. ‘말놀이’ 동시집이다. ‘말놀이’로 풀어낸 작품을 꼽으라면 최승호 시인의 동시가 유명하다. ‘말놀이’ 동시는 2005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아이들 세계의 스테디셀러인 동시집이다. 말놀이 동시는 음절을 따서 아이들이 쉽게 말을 익히도록 돕는다. 그런데 말놀이 동시집보다 앞서서 나온 말놀이 그림책이 있다. 바로 제주그림책연구회가 펴낸 <제주가나다>이다.

<제주가나다>는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14개의 자음으로 제주를 풀어냈다. 말놀이 동시집보다 한해 먼저 나왔다. 정말이다. 2004년에 펴낸 <제주가나다>는 제주그림책연구회의 첫 작품이다. 제주그림책연구회를 만든 다음 해에 빛을 봤다. 연구회 창립 후에 여섯 달을 매주 만나 그림과 글 작업을 해온 결과물이 바로 <제주가나다>였다.

<제주가나다>는 아쉽게도 절판됐지만, 표지를 들여다보면 제주를 이야기하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샛노란 바탕의 표지 <제주가나다>는 나비의 날갯짓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나비의 날개는 보통 날개가 아니다. 날개에 눈을 가까이 댈수록 제주가 보인다. 어디서 많이 봐왔던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 지도가 아닌가.

<제주가나다> 표지는 고종 9년(1872)에 발간된 ‘제주삼읍지도’에서 따왔다. 속을 펼치니 다시 지도가 나온다. 이번에 등장하는 지도는 이형상 목사가 1702년 제작했다는 <탐라순력도>에 등장하는 ‘한라장촉’이다.

제주그림책연구회의 첫 작업이어서였을까. <제주가나다>는 제주를 담으려는 의지가 무척 강하다. 표지에 드러난 지도도 그렇지만, 말놀이로 제주의 상징을 찾고 있다. ‘가나다~’로 시작해서 14가지로 제주를 표현한다면 뭐가 떠오를까. 제주그림책연구회는 곶자왈, 노랑굴 검은굴, 돌하르방, 록담만설, 몽생이, 빙떡, 설문대할망, 오름, 정낭, 초가집, 컨벤션센터, 태왁, 팽나무(폭낭), 한라산 등을 <제주가나다>에 담아냈다.

<제주가나다>엔 제주의 숲이 있고, 제주 사람들이 쓰던 그릇이 있고, 제주 사람들의 먹거리도 있다. 제주 사람들이 살던 집의 모습, 밭일과 물질도 14개의 키워드에 나타난다.
 

'제주가나다'에 실린 초가집. 강신영 그림. 미디어제주
'제주가나다'에 실린 초가집. 강신영 그림. ⓒ미디어제주
'제주가나다'에 실린 태왁 그림. 홍진숙 그림. 미디어제주
'제주가나다'에 실린 태왁 그림. 홍진숙 그림. ⓒ미디어제주

초가집

물질 갔던 어머니 돌아오실 때
새 베러 갔던 아버지 돌아오실 때
바당에서 휘감던 짠바람을 데리고 온다.
오름에서 뛰감던 풀바람을 데리고 온다.

정지에선 짠 내음 씻어낼 물을 끓이고
굴묵에선 풀 내음 녹여낼 불을 지피고
낮은 지붕 둥그런 얼굴로 초가집이 마중 나간다.
올렛담 구멍 발자국 소리 따라 막내둥이 마중 나간다.

치읓(ㅊ)으로 표현된 ‘초가집’(글 강순희)엔 제주의 모습이 잘 담겼다. 14개의 표현마다 제주그림책연구회가 글을 썼고, 그림은 신성여고 동문으로 구성된 ‘에뜨왈’ 회원들이 덧붙였다. 가장 어려운 자음은 리을(ㄹ)이다. <제주가다나>는 ‘록담만설’(글 강영미)을 리을의 대표격으로 표현했다. 내용을 잠시 들여다본다.

록담만설

겨우내 한라산 백록담에 눈이 내리면
흰 사슴은 초여름까지 그 눈을 간직한단다.
눈은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산 아래까지 내려오지
퐁퐁 솟아나
졸졸 흐르는 물은 흰사슴의 하얀눈
목마름을 적셔주는 단물이 되지.

겨우내 한라산은 눈을 가득 품는다. 그 물은 우리가 늘 마시는 귀한 보물임을 ‘록담만설’은 꺼내고 있다. 이렇듯 14개 표현은 소중한 제주의 가치를 말한다.

<제주가나다>로 시작을 알린 제주그림책연구회는 매년 결과물로 인사를 한다. 매년 제주를 쓰고, 그려낸다. 초창기 그림을 그리던 에뜨왈 회원은 제주그림책연구회 회원이 되고, 글만 쓰던 회원들도 직접 그림을 그리며 책을 내고 있다.

제주에 사는, 제주를 잘 아는 사람들, 제주를 알고픈 사람들에게 제주는 어떻게 표현될까. 2004년을 표현한 제주그림책연구회 회원들이 다시 ‘가나다~’로 제주를 이야기한다면 어떤 키워드가 나올지 궁금하다. 각자 ‘제주가나다’를 만들어보자. 나는 이렇게 표현해보련다.

갈치, 낭(나무), 돌, 라잠(裸潛·물질), 몽골, 본풀이, 사삼(4·3), 용암, 제주어, 초가, 콘테나(제주의 감귤경제), 태우, 포구,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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