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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위험한 제4한천교에 보행교를 덧대자”
“걷기에 위험한 제4한천교에 보행교를 덧대자”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2.23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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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가와 함께 걷기] <5> 다랑쉬건축사사무소 현승훈

도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대형구조물? 수많은 사람들? 높은 건축물이 많고, 인구가 많다고 도시에 힘이 붙을까? 그러진 않다. 도시의 힘이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214일부터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공공건축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는 걷고 싶은 도시 공간 만들기라는 기획전이다. 기획전에 참여한 공공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공성지도로 표현하고 있다. 공공건축가들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원도심 일대, 제주 도내 곳곳에 널린 오일시장에 그들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미디어제주>는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는 공공건축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공성지도를 기획했고, 그들의 제안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제4한천교-한천변-한천초로 이어지는 보행로 구상

“한천변 텃밭은 어린이와 어르신 접점 될 수 있어”

공공건축가는 사람들간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걷는 건 왜 중요할까. 뛰거나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과 달리, 걷기는 ‘주변 시야’ 확보라는 다른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야를 확보한 사람들은 ‘두리번두리번’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곁눈질’을 하며 주변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런 행위를 ‘측면적 설명’이라고도 한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곁눈질 활동으로 대상물과 자신의 거리를 판단하고, 높고 낮음도 가늠하게 된다. 빠르게 움직일 때는 그런 활동이 불가능하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심리학의 원리>에서 ‘주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변은 인간이 지닌 모든 정서나 행위의 간극을 메우는 것으로, 인간이 지닌 생각이 연속성을 지니게 한다. 그건 천천히 걸었을 때 더욱 확실해진다. 천천히 걷게 되면 초점(대상물)에 맺히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초점은 좁아지고, 주변은 단순히 스쳐가는 이미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주변의 가치는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 특히 제주도내 공공건축가들의 작업으로 만들어진 ‘공공성지도’는 주변을 인지하게 만드는 걷기의 필요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공공건축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공공건축가와 함께 걷기’라는 기획 역시 걷기가 핵심이다.

건축가 현승훈이 제안한 '제4한천교-한천변 유휴공간-한천초등학교 연계 보행로'. 미디어제주
건축가 현승훈이 제안한 '제4한천교-한천변 유휴공간-한천초등학교 연계 보행로'. ⓒ미디어제주

우리는 걷기를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특권층을 위한 곳으로 기획되곤 했다.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도시는, 특권층에게만 열려 있었다. 18세기 초반에 도시계획이 등장할 때, 원활한 교통이 핵심이었다. 특권층의 재산인 마차가 그걸 대변한다. 마차를 타고 다닐 여유가 있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간극은 너무 멀었다. 사회적 지위는 물론, 경제적 여건도 차이가 났다.

지금은 어떨까. 마차에서 자동차로 전환된 지금의 사회는 ‘모빌리티’가 사회적, 경제적 간극을 설명한다. 조만간 자율주행이 보편화된다면 더더욱 사회·경제적 간극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걷기를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어쩌면 두 발로 걸어다닐 때 뛰는 ‘내 심장’이 ‘모빌리티’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랑쉬건축의 현승훈 소장이 제안한 ‘제4한천교-한천변 유휴공간-한천초등학교 연계 보행로’는 의미깊게 다가온다.

건축가 현승훈은 차량 통행에 초점을 둔 제4한천교를 사람들에게 돌려줄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제4한천교를 오가는 차량을 통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 다리에 보행로를 덧붙이고, 초등학교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을 갖추자는 제안이다.

그가 말하는 ‘제4한천교-한천변 유휴공간-한천초등학교 연계 보행로’가 어떤 내용인지, 그의 입을 통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 언제부터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나요.

제주에 공공건축가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공성지도를 만들 때도 참여를 했는데, 이번 제안은 지난해 제안의 연장선입니다. 제주시 용담 지역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한천이라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 올해 제안 중 특징적인 것이라면 뭐를 들 수 있을까요.

한천초등학교를 오가는 학생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다리, 그리고 하천변에 있는 유휴공간을 보행로로 바꾼다면 좀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 보행환경을 만들려면 두 가지가 충돌할 수밖엔 없죠. 걸어야 하는 사람이 있을테고, 운전자들은 보행하는 사람들을 걸림돌로 생각할텐데, 이런 거리차를 어떻게 좁히면 될까요.

아이들은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걷는 일은 누구나 하기에 평등하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차를 운전하는 행위는 소수만 누리는 혜택이죠. 차를 운전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운전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하자는 것이죠.
 

차량 통행은 많지만 보행로가 없는 제4한천교. 미디어제주
차량 통행은 많지만 보행로가 없는 제4한천교. ⓒ미디어제주
제4한천교에서 바라본 한천의 모습. 건축가 현승훈은 다리와 한천변이 이어진 보행로를 한천초등학교까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미디어제주
제4한천교에서 바라본 한천의 모습. 건축가 현승훈은 다리와 한천변이 이어진 보행로를 한천초등학교까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미디어제주

- 제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요.

한천을 가로지르는 제4한천교가 있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이나 한천초등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은 무조건 건너야 하는 다리입니다. 그러나 다리엔 보행로가 없기에, 보행 영역을 확보하자는 제안입니다. 아울러 한천변에 관리가 되지 않는 텃밭을 학교의 텃밭으로 활용해보자는 제안도 해봤어요. 텃밭은 어린이와 어르신의 어떤 접점도 될 수 있으리라 봐요. 소공원도 하나 있는데, 도로에서 3m 정도 내려가야 합니다. 그걸 교육장소로도 활용하고 자연 친화적인 구조물로 계획을 해봤어요.
 

- 한천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다리(제4한천교) 너머에도 많이 사나요.

네, 많아요. 출퇴근을 하면서도 다리를 많이 보게 되는데 차량 통행량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고 위험성이 많아요.
 

- 제안을 들여다보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서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도청 협조와 제주도교육청, 학교 측의 협조만 얻는다면 현실성이 보이는데요. 이것만큼은 실현됐으면 한다는 제안이 있다면요.

다리에 보행교를 증축하고 텃밭 보행로를 갖추는 제안입니다. 현재 보행환경이 되지 않는 다리는 걷기에 위험하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추진했으면 합니다. 보행교를 따로 놓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과한 예산이 필요하기에 기존 교량 구조물을 활용한다면 가벼운 구조물을 달아서 보행로를 확보해보자고 제안을 해봤습니다.
 

- 제주 도심을 보면 보행환경이 열악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차량에 익숙해진 점도 있을테도, 제주도 지형 특성이 해안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경사 지형이어서 자전거를 이용하기에도 불리한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동안 눌려 있던 보행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고, 차츰 걷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리라 봅니다.
 

- 그런 면에서 공공건축가들의 역할을 설명해주신다면요.

공공성지도를 2년동안 해오면서 소소한 공간을 탐색하고 제안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건축가들이 그동안은 건축이라는 영역안에서 자기 작업을 해왔다면, 공공건축가들은 행정이나 주민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도심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공공건축가는 건축물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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