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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보행자를 위해서도 내놓자”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보행자를 위해서도 내놓자”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2.24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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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가와 함께 걷기] <6> 이즈건축 강중열

도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대형구조물? 수많은 사람들? 높은 건축물이 많고, 인구가 많다고 도시에 힘이 붙을까? 그러진 않다. 도시의 힘이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214일부터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공공건축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는 걷고 싶은 도시 공간 만들기라는 기획전이다. 기획전에 참여한 공공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공성지도로 표현하고 있다. 공공건축가들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원도심 일대, 제주 도내 곳곳에 널린 오일시장에 그들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미디어제주>는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는 공공건축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공성지도를 기획했고, 그들의 제안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서귀포 ‘중정로 가로변 활용과 보행환경 개선’ 제안

뉴욕이 ‘타임스스퀘어’라면 서귀포는 ‘구중파스퀘어’

“공공건축가는 더 좋은, 더 안전한 도시 만드는 역할”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애착은 ‘특정한 장소’에서 두드러진다.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땅과 집에 대한 애착을 지닌 이유를 생각해보라.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땅, 보살핌의 기억이 있는 공간은 누구나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를 향해 ‘이동 중 정지(pause in movement)’라는 말을 썼다. 투안은 움직이다가 어떤 지점에 멈출 때, 그곳이 모종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곳이어서란다. 움직이다가 멈추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장소’는 ‘가치의 중심지’가 된다고 투안은 얘기했다.

이즈건축 강중열 건축가가 제안한 '중정로 보행환경 개선'. 미디어제주
이즈건축 강중열 건축가가 제안한 '중정로 보행환경 개선'. ⓒ미디어제주

투안의 말처럼 하나의 장소가 가치를 지니려면 ‘애착’이 필요하다. 애착은 아무렇게나 발현되지 않는다. 기억이 누적되거나, 내게는 남과 다른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길이든, 동네든 내 눈에 들어와야 한다. 바로 ‘휴먼스케일’이다. 덴마크 도시계획가인 얀 겔은 휴먼스케일에 따른 거리 측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얀 겔은 22~25m 거리에서 대상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고, 사람간의 거리가 7m 이내로 들어오면 명료한 대화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로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휴먼스케일의 느낌을 잃게 된다. 가로 폭이 넓다는 건, 차량이 늘고 소음 역시 상승한다는 이야기가 되며, 걷는 이들에겐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런 공간에서 보행자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상대방이 내 눈에 들어오고, 상대방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오는 공간이야말로 잘 꾸미면 인간다운 행위가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는 강중열은 공공성지도로 ‘중정로의 가로변 유휴공간 발굴과 활용을 통해 보행환경 개선’이라는 제안을 들고나왔다. 중정로는 서귀포시 중앙동과 정방동을 잇는 도로로, 그는 걷기에 좋은 도로 여건을 만들자고 했다. 우선 그가 말하는 ‘걷고 싶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그는 다음처럼 설명했다.

걷고 싶은 도시는,

일상적 이용 장소들이 인접해 걷기를 생활화할 수 있는 유용성(useful)이다.
보행자가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안정성(safe)이다.
‘내 집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는 건물과 가로 풍경을 통한 편안함(comfortable)이다.
친숙하면서도 특색있는 건물들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흥미로움(interesting)이다.

걷기 좋은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건축가 강중열은 각종 시설물로 걷기를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고, 중정로의 보행로를 넓혀서 가로환경을 바꾸고 싶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중정로에 거는 기대를 그의 목소리로 더 자세하게 들어본다.
 

노란색 바탕이 서귀포시 중정로이다. 건축가 강중열은 지난해 빨간색 도로(초원다방사거리~동문로터리) 일대에 대한 공공성지도 작업을 했고, 올해는 서쪽으로 연장을 해서 파란색 도로(서문로터리~구중파사거리)를 새롭게 제안했다. ⓒ미디어제주

- 중정로 프로젝트를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서귀포시에 초원다방사거리로 불리는 곳이 있어요. 지난해 동문로터리에서 초원다방사거리까지 공공성지도 작업을 했죠. 올해는 구중파사거리로 불리는 곳에서 서문로터리까지 작업을 했죠. 중정로는 총 길이가 1.4km인데, 지난해와 올해 작업으로 완성이 되는 거죠.
 

- 그렇다면 중정로(서문로터리~동문로터리) 작업이 마무리된 거군요.

그렇죠. 중정로 작업을 전부 다 하게 됐죠. 중정로는 과거 중심지 역할을 했어요. 도시 확장으로 쇠퇴기를 걷고 있지만, 서귀포시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길이에요.


- 제안의 핵심은 뭐라고 보면 될까요.

가장 큰 키워드라면 보행이 가능한 ‘워크빌리티(walkbility)’입니다. 과거엔 자동차가 도로의 주인이었다면, 지금은 보행자 중심으로 활용되어야죠. 보시다시피 도로는 자동차 중심의 통과 목적만 지닌 길로, 너무 단조롭죠. 그러니 도시를 찾는 일도 없어지고, 보행자들이 없으니까 도시는 활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자동차 중심을 사람 중심으로 살짝 바꾸고, 자동차가 다니던 길의 일부를 보행환경으로 내놓도록 한 겁니다. 사람들이 그런 길을 걷다보면 주변을 더 둘러보고 머무르게 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활력을 가지게 된다는 거죠.


- 제안 내용을 보면 교통섬도 달라 보이는데요.

서문로터리의 교통섬이 어떻게 가로환경과 잘 어우러질지를 제안했어요. 현재 교통섬은 자동차가 안전하게 선회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만, 제안 내용은 보행자들이 자동차의 상황을 보면서 건너기도 하고, 교통섬에 잠깐 머무를 수도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어요. 그러니까 ‘자동차의 안전지대’가 아니라 ‘사람의 안전지대’로 구상을 해봤어요.

 

올레여행자센터 앞 보행로. 사람들이 오가기에 무척 좁다. 이즈건축
올레여행자센터 앞 보행로. 사람들이 오가기에 무척 좁다. ⓒ이즈건축

- 사람들이 안전하게 쓰도록 해주자는 거군요.

또 말씀을 드리면 중정로에 ‘올레여행자센터’가 있어요. 여행자들에겐 상징성이 무척 크죠. 사람들이 제주도를 걸으면서 힐링을 하고, 마지막엔 여행자센터에 들러서 완주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 보행환경은 나빠요. 두 명, 세 명, 네 명이 걸어오는데 일렬로 와요. 어깨를 나란히 걷을 수 없어요. 안타깝죠. 지장물들을 피해가면서 걸어야 해요. 이걸 개선을 해봤죠.


- 마지막으로 주안점을 둔 게 있다면요.

과거 중앙파출소로 쓰던 자리를 지금은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여기는 (서귀포 시민들에게) 인지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입체화시켜서 멀티그라운드를 만들어봤습니다. 사람들에게 장소를 제공해주고, 그 장소를 사람들이 채우게 하려고요.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나 헤럴드스퀘어는 자동차 중심의 공간이었어요. 거기에 예산을 들여서 보도를 깔거나 하진 않았고요. 그냥 바리게이트만 설치를 했는데, 사람들이 반응을 했어요. 차가 없으니까 시민들이 테이블도 놓고, 자연스럽게 앉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문화가 생성되었어요. 구중파사거리도 그렇게 만들어보자는 거죠. 뉴욕에 ‘타임스스퀘어’가 있다면 서귀포에 가면 ‘구중파스퀘어’가 있다는 식으로요.


- 행정에서 이런 제안을 모두 받아준다면 좋겠어요. 그래도 셋 중에 어느 게 행정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보행자에게도 공평하게 길을 돌려준다면 걷기 좋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겁니다. 실험적인 가로공간을 조성한 헤럴드스퀘어는 보행 안전사고는 10분의 1로 줄고, 사람들이 더 찾는 공간이 되었어요. 중정로도 그렇게 도전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공공건축가들이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공공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도시는 건축을 만들 수 없지만 건축은 도시를 만든다”고 했어요.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해서 건축과 건축의 연결 부위, 도시가 형성되는 부위, 공공재로 이용할 수 있는 부분들, 이런 것들을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토론하고 연구를 하면서 좋은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점을 배웠어요. 공공건축가는 더 좋은 도시,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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