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 4.3연구소장 "여성들의 경험, 미래 기록으로 살아나길"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포승줄에 묶여 당장이라도 총칼에 희생될 처지였다. 하지만 동생이 오줌이 마렵다는 이야기에 어머니가 몰래 포승줄을 풀었고, 동생의 오줌을 누인 뒤 다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1948년 4.3당시 일곱살이었던 김용렬 씨는 목숨을 건졌다.
그렇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그 이듬해인 1949년 12월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다. 막내동생은 굶주려 죽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어머니는 김씨에게 “두루(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해 태어난 오청자 씨도 연이어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다. 오씨의 큰 오빠가 4.3에 연류돼 희생됐고 친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죽음 역시 경험해야 했다. 여동생과 친할아버지도 희생됐다.오씨의 어머니 역시 고통을 감내하다 1953년 세상을 떴다. 당시 일본에 있던 오씨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4.3의 광풍 속에서 몰살당한 줄 알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별세했다. 그렇게 온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오씨는 삶을 살아냈다.
이처럼 4.3의 모진 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제주4.3연구소가 4.3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구술집 ‘4.3과 여성,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를 펴냈다.
1편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2편 ‘4·3과 여성,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에 이은 세 번째다. 집필은 허영선, 양성자, 허호준, 조정희가 참여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4·3속에서 여성들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온 아름다운 존재들”이라며 “이 책은 어린 시절 4·3을 겪은 6인의 여성들이 어떻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갔는지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허 소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수습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의 주체자가 돼 분투했다. 돌담 하나하나 등짐으로 나르며 황량한 벌판에 집을 지었고, 가족을 만들었고, 꽃나무를 꽂았고, 생존의 울타리를 스스로 엮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들이 한땀 한땀 기워가는 기억과 경험이 미래의 기록으로 살아나기를 바란다”며 “이 혼란의 시기, 이렇듯 상상 이상의 가혹한 절망 속에서도 단단한 정신력으로 견뎌냈던 4.3의 어머니들에게 끝없는 마음을 담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