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2-12-06 17:13 (화)
“가까이 가려고 해도 다가서지 못하는 4·3 현장”
“가까이 가려고 해도 다가서지 못하는 4·3 현장”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5.1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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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해를 걷다] <1> 문학으로 만나는 ‘도령마루’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운명과도 같다. 제주 사람들에게 숫자 ‘4·3’은 단순하지 않다. 현대사를 오롯이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숫자 ‘4·3’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라는 이유만 있지 않다. 거기엔 ‘기억’이 들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안다. 제 몸에 난 생채기를. 우리는 그런 기억을 누군가에게 또다른 기억으로 전해줄 의무가 있다.

기억은 사라지면 회복 불가능하다. <미디어제주>는 그런 기억을 잇게 만드는 기획물을 시작한다. ‘4·3 유해를 걷다’는 이름을 단 기획물이다. 이 기획물은 마을신문인 <아라신문> 학생기자들도 동행한다.

제주도 곳곳에 흔적으로 남은 4·3 유적지. 그때 그 모습으로 기억을 지닌 곳도 있고, 사라진 곳도 있다. ‘4·3 유해를 걷다’는 특정 주제를 정해서 유적지를 들여다본다. 문학을 통해 이야기된 4·3의 장소를 보기도, 남은 건축물을 통해 4·3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편집자주]

 

1979년에 발표된 현기영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
제주사람에게 공포 상징인 서청과 군부 겨냥한 작품
“현재 도령마루는 섬처럼 둘러싸여 오갈 수도 없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학생들이 4·3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사를 꿰뚫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4·3은 ‘학습’으로 다가가게 된다. 자칫 4·3과 거리를 두게 만들 수도 있다. 때문에 좀 더 쉽게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학생들과 특정 주제를 협의해서 유적지를 둘러보는 방법을 택했다. 첫 특정 주제는 ‘문학’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라신문> 마을기자들도 합류를 하겠단다. 판이 좀 더 커졌다.

아라신문 기자들과 도령마루를 찾았다. 미디어제주
아라신문 기자들과 도령마루를 찾았다. 미디어제주

‘4·3 유해를 걷다’ 첫 특정주제와 연관된 문학 작품으로 제주출신 현기영 작가의 ‘도령마루의 까마귀’를 정했다.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순이삼촌’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지목을 받은 이듬해에 나왔다. ‘순이삼촌’이 1978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리며 문단에 파장을 일으켰음에도, 작가 현기영은 4·3이 담긴 이야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펜을 더 날카롭게 세우며 4·3을 말했다.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서북청년단과 군부를 겨냥한 작품이다.

현기영 작가가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를 쓸 즈음, 제주는 새로운 개발바람이 불었다. 도령마루는 그만 이름을 잃고 만다. 제주도가 1970년대 신제주를 개발하면서 특정 회사의 광고를 해주며 ‘해태상’을 설치하는데, 이후 도령마루라는 원래의 이름은 사라지고 우리는 수십년간 ‘해태동산’이라는 엉뚱한 이름만 불러줬다. 도령마루가 제 이름을 찾은 건 해태상이 철거된 2019년부터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제주도민들은 도령마루를 잘 모른다. 여전히 ‘해태동산’에 머물러 있다. ‘해태동산’이라는 기억이, 4·3과 그 이전의 역사를 담은 도령마루의 기억을 덮은 경우가 된다.

도령마루는 조선시대까지는 제주성에서 대정지역으로 가는 이들이 쉬는 언덕이었다. 제주성의 서문을 나선 이들은 용담마을을 걸은 뒤 도령마루에 이른다. 여기서는 쉬어야 정석이다. 높은 언덕이기 때문이다. 숨이 가득찬 몸을 도령마루에 기대면 북쪽의 널따란 평지와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도령마루는 양반집안의 도령들이 언덕을 넘을 때 쉬어갔기에 ‘도령’이 붙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 속으로 들어가본다.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귀리집(귀일댁)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귀리집은 남편과 사이에 아들 순원과 갓난아이를 두고 있다. 시아버지는 솔가지를 말에 싣고 오다가 넘어져 비명횡사하고, 시어머니는 산폭도에게 목숨을 뺏긴다. 남편은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귀리집은 중산간에 있는 노형리에 살다가 1948년 소개령으로 쫓겨난다. 해안마을로 내려온 귀리집은 이듬해 칼바람이 부는 수 개월간 축성 작업에도 동원된다. 축성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까마귀 오’라 불리는 오 순경인데, 서청이다. 소설엔 ‘소개’를 일본말인 ‘소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개를 당한 마을사람들의 심경은 찢어질 듯한데, ‘소까이’를 대하는 토벌대들은 제주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산폭도가 양민 가운데 숨어 살기를 머릿니가 걸버시 한 머리에 서캐 슬 듯하니 어느 하세월에 챙빗으로 굵은니며 가랑니며 서캐를 훑어내 잡을 것이냐. 아예 석유기름 붓고 머리칼을 홀랑 태워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마을을 불태운단다. 생사람 대가리에 석유를 부어 불태우다니, 머릿니 잡는다고 생사람 잡는 게 소까이란 말인가. 집과 양식이 불타고, 소개민 중에는 폭도 가족이라고 지목된 여편네들이 여럿 죽고 심지어는 할망, 하르방마저 더러 죽었다.

- ‘도령마루의 까마귀’ 중에서

2019년 도령마루에 세운 방사탑. 미디어제주
2019년 도령마루에 세운 방사탑. 미디어제주

옛사람들은 머릿니와 함께 살았다. 이를 털어내는 데는 참빗만큼 유용한 게 없었는데, 토벌대들이 보기엔 그냥 불태우면 된단다. ‘생사람 잡는’ 게 바로 토벌대들이 이야기하는 소까이였다.

귀리집이 동원된 축성 작업은 제주성에서 출발한 팀들과 만나면 끝난다. 소설 속에는 1949년 초부터 성담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정이월까지 이어졌다고 나온다. 그걸 진두지휘하는 인물 서청을, 현기영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음처럼 그린다.

닛뽄도로 멀쩡한 사람 모가지를 겨누고 혼겁하게 으름장 놓던 저 작자도 같은 무리다. 일본 순사가 조센징 목 치던 그 끔찍한 닛뽄도를 새 나라 새 경관이 써먹다니! 저 까마귀 오는 삼팔따라지 이북 출신이다. 그것도 “쉿, 육지 순경 오람져(온다)?” 하면 울던 젖먹이도 경풍 들리게 화들짝 놀라며 울음을 뚝 끊는 무서운 서청 사람이란다. 어찌나 무서운지 같은 순경이면서도 섬것들은 도무지 기를 못 편다. 무섭기가 섬 출신 순경 몇곱절 더 무섭다. 저것 봐라. 오 순경이 얼마나 무서우면 저리도 쩔쩔맬까? 민보단 사람들이 점호가 먼저 끝나는 대로 까마귀 오 순경한테 보고하느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며 들쭉날쭉하는 꼴이 가련하구나.

- ‘도령마루의 까마귀’ 중에서

4·3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서청’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반공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그들은 제주도민들에게 이승만 초상화를 사도록 강요하는 건 기본이고, 이루 말하지 못할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때문에 젖먹이에게 “서청이다”고 말하면 울음을 그쳤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소설에 나온 표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소설과 똑같은 말을 했으니까.

현기영이 4·3을 불러낼 당시, 4·3을 바라보는 시각은 ‘폭도가 일으킨 폭동’이었다.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었고, 무장대들의 후손 역시 ‘빨갱이’였다.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 봤을 때 4·3은 봉기도 될 수 없었고, 항쟁도 될 수 없었다. 그래도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엔 ‘산사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토벌대의 시각으로는 ‘폭도’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폭도’가 전혀 아니었다.

도령마루는 14개 마을에서 끌려온 이들이 죽임을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소설은 14개 마을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도령마루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들것으로 옮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귀리집 남편이 있을 줄이야. 소설의 끝부분을 옮겨본다.

까마귀 오가 십분 내에 마치라고도 했지만 어서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여편네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그들은 맨손으로 송장을 잡아끌어 담가에 얹고 종종걸음치면서 들고 가 밭 가운데 구덩이에다 처넣는다. 귀리집은 까마귀 부리에 쪼인 시체 얼굴들이 차마 끔찍하여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데, 웬일인지 자꾸 눈길이 눈망울 파먹힌 그 흉측한 얼굴들에게 간다. 이런, 내가 몹쓸 년이다, 빌어먹을 년이다. 여기서 순원이 아방을 찾다니. 그이가 이렇게 쉽사리 죽었을 리가 없지. 그러나 그게 아니다. 포개진 시체를 끌어내다가 “저걸 보게" 하고 영순이 어멍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다행히 다른 시체 밑에 들어가 있어서 까마귀 부리에 쪼이지 않은 채 온전한 얼굴, 구레나룻이 사뭇 자라 얼굴을 반쯤 덮고 있지만, 그건 깔축없이 순원이 아방이다. 가슴이 터질 듯 뛴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 ‘도령마루의 까마귀’ 중에서

도령마루에 있는 방사탑의 비문. 미디어제주
도령마루에 있는 방사탑의 비문. 미디어제주

가짜이름 ‘해태동산’을 벗은 도령마루는 가까이 가기 힘든 곳이다. 여기엔 방사탑이 있고, ‘학살의 기억은 묻히고 이름마저 빼앗긴 도령마루’라는 나무 팻말이 을씨년스럽다.

방사탑은 2019년 4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민예총 이름으로 세워졌다. 비문엔 ”망각과 고립의 땅 도령마루에 생명과 평화의 염원담아 4·3방사탑을 세웁니다“고 되어 있는데, 비문처럼 도령마루는 여전히 고립돼 있다. 도령마루 주변은 차를 댈 수도 없고, 걸어서 갈 수도 없다. 건널목도 없으며, 안전선에 차를 대지 말라는 단속 카메라만 눈을 부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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