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4·3 9차 직권재심 피고인 30명 '전원 무죄'... "남은 과제 더 선명해져"
4·3 9차 직권재심 피고인 30명 '전원 무죄'... "남은 과제 더 선명해져"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7.12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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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을 상징하는 동백꽃.
제주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저희 어머니는 유족으로 등록이 안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어머니가 저를 임신해서 외도동 친정으로 가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본가인 노형동에 살다 잡혀가서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일입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집에서 제사가 있어 4촌, 6촌까지 다 모여 있던 자리에서 어머니와 친척들이 전부 총살당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척이 9촌 *삼춘 밖에 없는데요. 나중에 학교를 가려고 보니 저에 대한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어서. 나중에 다른 곳으로 출생 나이를 3살 줄여 입적했습니다.”
*삼춘: 제주에서 이웃, 친척 등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

“저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가 끌려간 날짜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 신체라도 어떻게 찾았으면 해서 (법원에) 나왔습니다.”

2022년 7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가 속행한 9차 4.3 직권재심 공판 자리에서, 피고인 측 유족들이 한 말이다.

이날 직권재심은 피고인 김현범 씨 등 제주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무고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30명에 대해 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 3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이들 피고인 30명은 이미 고인이 된 터라 피고인석에는 유족이 대신해 아픔을 증언했다.

“저희 큰아버지는 결혼 후 3일만에 잡혀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당시 수소문 끝에 큰아버지가 배를 타고 나갔다는 말이 있었는데. 큰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큰아버지를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요. 결혼 직후 두 분 다 변을 당하신 터라. 두 분은 혼인신고도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업 중 갑자기 끌려나간 초등학교 교사, 퇴근길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주정공장 직원… 이날 재판장에서 유족들은 저마다의 절절한 사연을 토해냈다.

“야만의 시대가 저지른 죄를 다시 심판하는 자리.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벅찹니다. 더불어 바라는 점은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억울한 희생자 없이, 희생자임에도 희생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 유족이 되지 못한 분들까지도 다 포용할 수 있는 자리가 (재심을 통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이 법정에서 말했다.

총 아홉 차례 진행된 제주4.3 직권재심. 차수가 진행될수록 제주4.3에 남은 과제가 더 선명해진다.

호적 문제로 제주4.3 희생자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유족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 당시 자료가 미비해 재심 청구가 어려운 피해자들, 군법회의가 아닌, 일반재판에 의해 누명을 쓰며 직권재심 청구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피고인과 4.3을 기억하는 도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 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고 풀어야 할 숙제일 테다.

한편, 이날 재판 후에는 제주4.3 당시 무장대 활동 등을 한 것으로 알려진 피고인 4명에 대한 특별재심개시 여부를 놓고,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피고인 4명 모두 제주4.3희생자로 인정받은 이들이기에, “무장대 활동 등 여부와 무관하게 제주4.3특별법에 의거한 재심 대상”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에 4명에 대한 특별재심을 개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반면, 재심개시 여부를 좀더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경우 제주4.3희생자에서 제외할 수 있다"라는 헌법재판소 기준에, 이들을 포함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무장대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이는 제주4.3희생자로 인정하기 힘들 뿐더러, 인정하더라도 재심대상은 아니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청구인(피고인) 측 입장, 후자는 검찰 측 입장에 가깝다.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또 있다. '무장대' 활동에 대한 시각은 이념이나 입장마다 다르다. 당시를 살지 않은 후세가 이들 개개인의 삶을 흑과 백으로 재단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제주4.3 당시 '무장대로 활동했다'라는 사실만으로, 혹은 그에 대한 증거만으로, 이들을 모두 '4.3 희생자'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이견 좁히기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들 4명에 대한 재심개시 판단을 다음으로 유보했다. 당초 이들과 함께 재심 청구된 64명의 재심 개시 여부 또한 오는 26일 함께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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