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초가의 공간을 찾아보며 숨바꼭질해봐요”
“제주 초가의 공간을 찾아보며 숨바꼭질해봐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7.14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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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제주 읽기] <5> 곱을락
삼군호구가간총책. 제주대박물관 소장.
삼군호구가간총책. 제주대박물관 소장.

제주의 전통집은 초가였다. 세칸집이 많았고, 좀 더 큰 네칸집도 존재했다. 이보다 작은 두칸집도 없었던 건 아니다. 현재 남아 있는 초가의 상당수는 세칸이나 네칸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민 대다수가 초가에 살던 때는 어땠을까. 관련 기록을 뒤져보자.

광무 8년, 그러니까 1904년 기록이 있다. ≪삼군호구가간총책(三郡戶口家間總册)≫인데,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 제주의 3개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의 인구와 집 크기를 기록해두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호구 조사가 아니라, 집 크기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삼군호구가간총책≫을 들여다보면 제주 도내 전체의 호수는 2만2072호였고 인구는 8만5330명으로 집계된다. 호당 평균 인구수는 3.87명이며, 집의 칸수는 평균 2.33칸으로 나온다. 호당 인구가 채 4명도 되지 않는다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칸수도 세칸이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기록일까? 집계의 오류인지, 측정 방식의 오류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삼군호구가간총책≫에만 집 크기를 기록했을까. 그건 아니다. 집의 크기, 즉 가간(家間)을 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고종 32년(1895)에 호구 조사를 좀 더 체계화시킨 세칙이 발표되는데, 그걸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칙을 보면 ‘호적지’에 여러 가지를 기록하도록 했다. ‘호적지’에 담을 내용으로는 호주의 이름과 나이, 본관, 직업, 동거 친족의 이름과 나이, 집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빌려 쓰는지 유무, 집의 칸수 등이다.

고종 때부터 좀 더 구체적인 호구 조사가 필요했고, 3년에 한 번 이뤄지던 호구 조사도 매년 진행하게 된다. 호적지가 있다면 고종 때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겠으나, ≪삼군호구가간총책≫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당시 호구 조사 때는 자신의 집이 있으면 ‘기유(己有)’라고 표기했고, 집을 빌려 쓴 경우는 ‘차유(借有)’라고 했다. 이도 저도 아닐 때는 호구에 들지 못했다. 때문에 ≪삼군호구가간총책≫은 동거인을 죄다 호주로 명기했는지, 아니면 빌려준 집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칸수가 줄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듯 ≪삼군호구가간총책≫으로 제주 초가의 규모를 상상하는 건 분명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제주 초가로 이미지화하는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세칸집은 상방(마루)을 중심으로 좌우로 정지(부엌)와 구들(방)이 존재한다. 구들 뒤로는 고팡(창고)이 있다. 세칸집을 다시 정리하면 ‘정지-상방-고팡·구들’의 구조가 된다. 네칸집은 ‘고팡·구들-상방-챗방·구들-정지’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띤다. 네칸집은 세칸집에서 볼 수 없는 ‘챗방’이 있다. 챗방은 지금의 ‘다이닝룸’과 같은 기능을 지닌 공간이다.

제주의 전통집을 이야기하다가 길어졌는데, 제주그림책연구회가 펴낸 ≪곱을락≫(2008년 발간) 속에 제주 사람들이 살던 집의 풍경이 잘 드러난다. 곱을락은 ‘숨바꼭질’의 제주어인데, ≪곱을락≫을 음미하면 제주 초가의 숨은 공간이 눈에 보일듯하다.

겁질에 굴묵에 곱으난
푸데에 쉐똥 ᄆᆞᆯ똥 ᄀᆞ득ᄒᆞ영
냄새 재완 곱질 못허크라

- ≪곱을락≫ 중에서

≪곱을락≫은 제주어를 담았다. 위의 내용을 표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엉겁결에 굴묵에 숨었더니
자루에 소똥 말똥 가득해서
냄새 겨워 숨지 못하겠네

굴묵은 온돌방에 불을 땔 때 필요한 공간이다. 특히 말똥은 화력이 좋았다. 말이 많던 제주에서는 나무 뿐아니라 동물들이 뱉어낸 분뇨 역시 땔감이 되곤 했다. 여기서 제주도와 육지부 공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육지부는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 불을 지피면, 방도 따뜻하게 데우곤 한다. 그러나 여름철은 그게 불가능하다. 부엌에서 밥을 했다가는 방도 데워지기에, 사람은 살 수 없게 된다. 제주도는 그와 다르다. 제주도는 정지라는 공간에서 밥을 하고, 방은 따로 난방을 했다. 그런 난방을 가능하게 만든 공간이 굴묵이다.

굴묵에 숨는 장면을 묘사했다.
굴묵에 숨는 장면을 묘사했다.

대신 제주도는 정지에서 밥을 하다가 연기가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연기는 집안 곳곳에 스며드는데, 이게 장단점을 지닌다. 연기는 곳곳에 퍼지며 벌레를 잡아주고, 습기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단점이라면 연기가 집안을 시커멓게 만든다는 점이다. 제주에 오랜기간 유배살이를 했던 동계 정온(1569~1641)의 ≪동계집≫에 그런 장면이 묘사돼 있다.

집이 낮아서 몸을 바로 세울 수가 없고 방도 좁아서 무릎을 움직일 수가 없고, 그을음이 벽에 가득하여 의관(衣冠)이 더럽혀지므로 잠시도 거처할 수 없다. 남쪽 모퉁이의 반 칸은 토상(土床)을 만들어서 침실로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대개 이곳 풍습이 온돌방을 좋아하지 않으나 유독 이 집만은 온돌을 놓았다.

- ≪동계집≫ 제2권 기(記) 중에서

정온이 제주에 유배를 온 때는 1614년(광해군 6) 8월이다. 더울 때 제주에 와서인지 첫인상이 좋진 않다. 정온이 유배를 와서 기거했던 집엔 온돌, 그러니까 구들을 갖춘 집이다. ≪동계집≫을 보면 정온이 마주한 공간은 안거리와 밖거리를 갖춘 집이었고, 정온은 남쪽에 있던 공간을 ≪동계집≫에 자세하게 기록했다. ≪동계집≫을 분석해보면 정온이 기거한 곳은 네칸집으로, 제주에 흔하지 않던 온돌을 갖추고 있었다. 정온이 묘사했듯,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제주사람들은 구들이라는 방에 익숙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굴묵을 갖춘 집은 18세기 이후에 보편화되지 않았을까.

정지에 강 살레 아래 들어가난
좁작허연 보들랑보들랑.
상방에 강 보난
ᄑᆞᆺ감 우리는 항만 싯곡.
어염에 이신 문 욜앙 보난
왁왁헌 고팡인게
“아이고, ᄆᆞᄉᆞᆸ다!”
- ≪곱을락≫ 중에서

번역

부엌에 가 찬장 아래 들어가니
좁아서 바둥바둥
마루에 가 보니
감 우리는 항아리만 있고.
곁에 있는 문 열어 보니
캄캄한 창고방이네.
“아이고, 무섭다!”

고팡에 숨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컴컴한 고팡 공간이 보인다.

≪곱을락≫에 드러난 초가는 세칸집이다. 정지에 살레를 뒀으니 챗방이 존재하지 않는 집이다. 세칸집은 친숙한 우리들의 공간이었다. 잠을 자기도 하고, ≪곱을락≫에서 표현한 숨바꼭질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숨을 공간을 지녔다.

≪곱을락≫은 바깥공간도 잘 표현하고 있다. 돗통시가 있고, 눌도 있다. 눌은 장마철 직전에 수확하곤 하는 보리를 장맛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보리눌’을 비롯해 여러 용도의 눌이 있었다. ≪곱을락≫은 올레를 벗어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폭낭(팽나무)도 그렸다.

요즘 아이들도 숨바꼭질을 할까? 어디선가 하긴 할텐데, 본 일이 없다. 아이들의 바깥 놀이터였던 공간은 하나둘 사라지고 없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고 외치던 목소리는 너무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만 놀앙 밥 먹으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외침도 너무 오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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