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자리를 달라하고, 보은하고 “언제까지 이럴건가”
자리를 달라하고, 보은하고 “언제까지 이럴건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8.23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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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오영훈 도정의 인사를 보며

선거 매개로 값진 일자리 챙기는 일 고착화
“제대로 일할 인물을 자리에 앉히는 게 중요”
조선시대 ‘분경금지’ 참고하면서 도정 이끌길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옛것을 두고 ‘고리타분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반드시 그러진 않다. 오히려 우리는 옛것을 통해 배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그렇듯, 옛것을 보고 우리는 새로움을 알게 된다. 인사 문제도 그렇다. 옛것을 보며 21세기에 부족한 인사 문제를 배운다.

인사는 왜 중요할까. 인사는 사람을 어느 자리에 둘지를 고민하는 걸로 이해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인사는 해당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사람을 뽑는 일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선거에 붙어 다니는 단어가 있다. ‘보은’이다. ‘보은(報恩)’은 한자 그대로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인데, 선거를 도와준 이들을 하나하나 챙겨주는 일이 마치 상식화돼 있다. 당선된 이는 도와준 이들에게 한자리를 주려고 하고, 도와주는 이들도 한자리를 챙기려는 욕심을 지닌다. 어찌 보면 선거를 매개로 값진(?) 일자리를 챙겨주는 공생관계가 만들어진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면서 조정을 차지하는 인물도 대폭 물갈이된다. 여기에 개국공신들도 끼어드는데, 조선 2대왕인 정종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다.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을 막기 위해 ‘분경’을 금지한다. 분경금지는 나중엔 법제화된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실리는데, 분경행위를 하다가 걸리면 처벌하도록 했다.

‘분경(奔競)’은 권세를 지닌 이들에게 벼슬을 구걸하는 행위가 될텐데, 지금으로 말하면 ‘어공(어쩌다 공무원)’ 자리를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겠다. ‘분경’은 다른 말로 ‘엽관’이라고도 부른다. ‘엽관(獵官)’도 한자를 풀이하면 “관직을 사냥한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 임금은 매우 피곤했다. 공부를 죽도록 해야 했다. 매일 경연(經筵)을 여는데, 맹사성이 경연 자리에서 인재 등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인재는 다스림에 이르는 도구이니, 예부터 치란(治亂)의 자취가 항상 반드시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중략) 분경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사대부들은 일을 맡아 공을 이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첨하면서 미쁘게 보일 일만 합니다.”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1월 13일)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 왼쪽 원문은 맹사성이 경연 때 정종에게 한 이야기이며, 음영으로 처리한 부분은 제대로 된 인재등용이 되지 않을 때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 한자는 음영 부분만 확대했으며, "인재는 다스림에 이르는 도구이니, 예부터 치란의 자취가 항상 반드시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 왼쪽 원문은 맹사성이 경연 때 정종에게 한 이야기이며, 음영으로 처리한 부분은 제대로 된 인재등용이 되지 않을 때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 한자는 음영 부분만 확대했으며, "인재는 다스림에 이르는 도구이니, 예부터 치란의 자취가 항상 반드시 여기에서 비롯됐다(人才 致治之具也 自古治亂之迹 常必由之)"는 내용이다.

맹사성이 경연 때 한 말속에 인사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우선 행정을 잘 운영할 도구로서 인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제대로 되지 않으면 치란, 즉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워진다는 말을 꺼냈다.

맹사성은 여기에 덧붙이는데, 바로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이다. 재상부터 6품에 이르기까지 아는 사람의 행적을 일일이 적어서 공천하자고 했다. 대신 아부하는 이들은 배척하고, 여기저기 난잡하게 청탁하는 이들의 문서를 모조리 모아서 자료화하자고 했다. 맹사성의 이 말은 ‘분경’이나 ‘엽관’을 하는 행위를 완전히 뿌리 뽑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선거공신을 쓰는 일을 탓할 건 아니다. 문제는 쓰임새 있는 인물인가에 달렸다. 오영훈 도정이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4년의 임기로 따지면 아직도 출발선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인사 문제로 시끄럽다. 시작부터 꼬이고 있다. 재선을 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모두 자리를 주는가 본데, 그러면 안된다. 선거를 도와준 이들이라고 다들 자리에 앉힐 게 아니라, 쓰임새 있는 인재를 자리에 앉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 내가 낸 세금을 엉뚱한 이들의 월급으로 주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맹사성이 앞서 한 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공부하는 셈 치고 한 번 더 익혀보자. 오영훈 도정도 이 문장을 익혀보면 나쁘진 않아 보인다.

“인재는 다스림에 이르는 도구이니, 예부터 치란(治亂)의 자취가 항상 반드시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人才 致治之具也 自古治亂之迹 常必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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