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나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어요”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10.11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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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환경, 놀이] <2> 삶터 가까운 곳에 녹지를

[인터뷰] 20대 다큐멘터리 감독 김유리씨

다큐 ‘덮어놓고~’ 제주여성영화제에 초청

“기억이 사라지는 걸 최대한 막고 싶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갈수록 더워지는 지구. 녹지 확충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제주특별자치도도 앞으로 5년간 제주도 전역에 6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도심의 녹지공간을 늘리겠다고 얼마 전 발표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구상을 들여다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녹지공간을 만들 계획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녹지는 걸어서 즐길 때라야 제격인데, 과연 제주도가 녹지공간으로 생각하는 도심의 땅은 어디에 있을까. 더구나 제주도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이하 서녹사)의 요구는 모른체하며, 도로 만들기에 열중이다. 녹지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없애면서, 녹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꼴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공동체 복원’에 관심이 높다. 사회학자여서인지 녹지를 바라보는 태도도 다르다. 그는 “시카고시청에 조성한 으리으리한 옥상정원은 사회적 인프라가 아니다”고 외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옥상정원보다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접근이 쉬운 녹지, 즉 공동체 텃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김유리씨. 그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녹지공간이 많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미디어제주

왜일까. 시청의 옥상정원은 지역사회 주민들을 연결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땅을 지닌 공동체 텃밭은 동네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거기를 지나가는 이들에겐 스트레스 수준도 덜게 해준다고 했다. 더불어 그런 녹지공간은 과열된 도심의 온도를 효과적으로 낮춰준다.

20대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유리씨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녹지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는 서귀포시 서홍천 일대를 곧잘 걷곤 하는데, 어린이들이 집과 가까운 곳에서 뛰어놀 녹지공간의 중요성에 관심이 무척 높다. 그런데 그는 서귀포시는 어린이들이 놀기에 흡족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놀이터 현황을 공공 데이터 포털에서 찾아본 적이 있어요. 서귀포는 시내권도 그렇고 그 외의 지역도 부족하다고 생각들었어요. 놀이터가 있는 곳도 놀이기구만 있고 쉴 만한 공간은 없었고, 제일 아쉽다면 안전을 위해서겠지만 바닥은 매트를 깔아놓았잖아요. 정말 개미 한 마리 볼 수 없는 그런 깔끔하고 정돈된 곳이더라고요.”

우리나라 놀이터는 고정된 틀을 지녔다. 거의 비슷한 놀이시설, 안전한 바닥, 흙은 찾아볼 수 없는 공간으로 대표된다. 김유리 감독은 놀이터에 대한 관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어린이들이 놀 곳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 위치를 해야 한다고 봐요. 어린이 놀이시설 따로, 공원 따로, 이렇게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도 청소년도, 나아가 청년이나 어른들도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유리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면 놀이시설의 획일적 구분이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는 녹지공간은 어린이들이 노는 곳이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 가능한 곳이어야 함을 읽게 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김유리씨의 첫 작품도 그런 고민에서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놓은 첫 작품은 <덮어놓고 파당보민>이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제주여성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된 이 작품은 환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담겼다. 그래서인지 도시우회도로를 녹지공원으로 만들자고 외치는 ‘서녹사’의 활동도 그에겐 관심거리였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이유는 저와 제 친구, 동생이나 후배 아이들에게 좋은 걸 물려주고 싶어서였어요. ‘좋은 게’ 부모님들이 물려주고 싶은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고요. 부모 세대들은 잘 정돈된 도시화 된 환경이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진짜 좋아하던 길이 있었는데 대학 때 내려와 보니 없어진 거예요. 개발되면서 그 길의 나무는 다 베였어요. 오래된 나무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자기가 기억하던 산과 자기가 기억하던 숲이 사라지는 모습을 겪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그걸 최대한 막고 싶었어요.”

건축가 정기용은 “길은 풍경의 저장창고다. 할아버지가 보았던 풍경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나도 같이 동일한 풍경을 본다는 것은, 나 또한 길의 역사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건만, 우리들은 사라지는 길을 매번 보고 있다. 그런 길은 김유리 감독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길이 있다. 김유리 감독은 그걸 지키고 싶어한다.

“외할머니 댁에 은행나무 큰 게 있었는데 나무는 잘리고 신작로가 세워졌거든요. 나무 밑에서 은행을 줍던 기억은 저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이모와 삼촌도 있어요. 다들 그 풍경을 아쉬워하죠. 텃밭도 개발되면서 사라지곤 해요. 어머니가 아파트 옆에 텃밭을 가꾸면서 지냈는데, 도로가 나면서 없어졌어요. 주차장으로 쓴다고 하면서 텃밭을 밀어버렸어요.”

김유리 감독의 말처럼 ‘좋은 것’에 대한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자연과 어울려 사는 게 당연할테지만, 부동산 가치에 더 끌린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닌 자연의 본성을 되살릴 수 있을까.

“흙을 만져보고, 텃밭에서 뭔가를 얻으면서 희로애락을 겪은 사람들은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아이든 어른이든 흙과 더 가까워지려면 텃밭이 필요하다고 봐요. 환경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죠. 다만 그걸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랑 말로만 하는 사람이랑 차이가 있을 수밖엔 없겠죠.”

김유리 감독은 엄마랑 서홍천을 걷곤 한다. 어쩌면 엄마는 그에게 자연을 일깨우는 지시등과도 같다. ⓒ미디어제주
김유리 감독은 엄마랑 서홍천을 걷곤 한다. 어쩌면 엄마는 그에게 자연을 일깨우는 지시등과도 같다. ⓒ미디어제주

김유리 감독은 멸종위기생물인 맹꽁이 울음을 포착해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가 계획된 서홍천에서 맹꽁이의 울음을 찾아냄으로써 우회도로 확장 공사는 일시 중단됐다. 개구리 울음과 맹꽁이 울음을 구분하지 못하던 그였는데, 엄마가 그에게 자연의 소리를 일깨웠다.

“엄마랑 솜반천(서홍천)을 걷곤 하는데 거기서 맹꽁이 소리를 찾았어요. 엄마가 그 소리를 알더라고요. 맹꽁이는 ‘맹꽁, 맹꽁’ 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마가 맹꽁이는 ‘멩막’하면서 운다고 해서 제주도에서는 맹꽁이를 ‘멩마구리’라고 부른다는 것도 엄마가 알려줬어요.”

엄마가 가르쳐준 지혜 덕분에 김유리 감독은 멸종위기생물인 맹꽁이의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환경청에도 이를 보고할 수 있었다. 맹꽁이 소리 덕분에 우회도로는 일시 중단된 상태이지만, 언제든지 제주도는 도로를 뚫을 계획을 잡고 있다.

“서홍천에 다리가 생기고 건설 자재들도 오가면 맹꽁이 서식지는 파괴되겠죠. 뭔가 세워지면서 한곳이 무너지게 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슬퍼요.”

기록하는 사람 김유리. “슬프다”고 한 기록도 그는 담아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카메라에 담긴 기록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기록이길 바란다. 누군가가 봤던 길을 걷고, 다른 사람도 그 길을 걸어가는 ‘기억의 공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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