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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면서 불편한 것들(feat. 어중간한 중장년)
제주에 살면서 불편한 것들(feat. 어중간한 중장년)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10.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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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14화

필자처럼 제주에 홀딱 반해 이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주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인 이도 있으며 계절마다 제주를 찾는 여행객도 있다. 어떤 이들은 1개월, 6개월, 1년짜리 제주살이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렇듯 제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이며, 환상의 섬으로 일컬어진다. 제주로 이주한 지 햇수로 11년차인 필자 역시 제주가 ‘막’ 좋다. 이제 제주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지만 여전히 이방인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한 연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관계의 어려움이 가장 크고 경제적 난제, 그리고 쓰레기 문제, 이렇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성향이 다르듯이 개인차가 있겠지만, 필자가 느끼고 분석하는 바가 그렇다는 것이다.

서귀포 강정 바닷가에서 발견한 모양들. 바위로 둘러싸인 네모(사진 위)와 홍합이 연출한 동그라미

 

# 아는 사람만 보인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차별의 요소로 작동할 만한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퇴출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성적인 판단과 법적 조항을 만들어도 실생활에서는 차별 요소가 굳건히 자리한다. 이런 차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부문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잠깐 웃음 터지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2017년 겨울, 제주의 어느 공공기관 채용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 해서 필자가 취업할 때 가장 약점인 나이를 기입하지 않아도 되어 나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면접장에서 면접 대기자들에게 인적사항을 적으라며 종이 한 장을 나눠준다. 주민등록번호와 출신학교, 심지어 출신지까지. 그럼 그렇지~ 그런데 문제는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차별 요소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마을 부녀회 활동은 물론 직장 내 승진에서도 비제주인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이른바 ‘괸당문화’로 일컬어지는 본토박이 제주 사람들끼리의 서로 챙겨주기 문화이다. 물론 1947년부터 육지 사람들이 제주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제주의 괸당문화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그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더라도, 제주민들의 감성과 이성은 아는 사람만 보이는 괸당문화에 지배받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때문에 필자는 에트랑제(이방인)의 쓴맛을 맛보곤 한다.
 

한라노루생태원 서식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자유로운 노루들.

 

# 주택도 땅도 너무 비싸다

제주에 정착한다는 것은 제주에서 먹고사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꾼 같은 뜨내기들 말고 무슨 연유에서건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마련해야 하고, 먹고살 직장을 구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주와 식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 역시 4년여 동안 학교를 오가며 논술과 진로 강의를 했고, 이후 뒤늦게 자격증을 취득하여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퇴직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자리를 찾아 제주에 온 젊은 층들은 1~2년 즐기다 가려고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것같 다. 그들은 제주를 정착지로 여기지 않는다. 또 다른 부류는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하고 여유 있게 제2의 삶을 영위하려는 ‘부유’한 장년층이다. 문제는 필자와 같이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부유’하지도 않고 ‘즐기는’ 것에만 주력할 수 없는,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사람에게 제주의 주택과 땅은 너무 비싸다. 300평 정도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래도 농사짓는 땅인데 바닷가처럼 몇 백만 원까지 할까 싶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가격의 단위가 달라졌다. 숫자 0이 하나 더 붙었다고 생각하면 될 지경이다. 1평에 200만 원 하는 땅에 상추를 심어, 금상추라 생각하며 맛있게 냠냠 먹어야 하나?
 

# 쓰레기가 차고 넘친다

중국에서 흘러와 제주 해변가에 널린 괭생이모자반

제주에는 클린하우스가 잘 정비되어 있는 곳이 많다. 가정집과 상점가 쓰레기는 어느 정도 정리정돈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밭과 바다다. 그리고 공공시설이다. 좁다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귤밭이나 밭이 나온다. 밭 한 귀퉁이에 농약병과 비료 부대 등이 쌓여 있다. 아찔하다. 바다는 더욱 심하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싱그러운 봄이 시작될 즈음 중국에서 흘러온 괭생이모자반이 해변가를 뒤덮어 걷기도 힘들고 썩은 냄새도 진동한다. 게다가 낭만에 취해 바닷가를 거닌 여행객들이 휙 던져버리거나 살그머니 놓고 간 일회용 컵과 생수병들이 낭만의 흔적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버스정류장이나 관광지에는 카페용 일회용 컵이 왜 그리 많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 걷기에 집중하다가도 복부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온다. 제주의 경관을 보고 싶어 하고, 제주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쓰레기도 차오른다.

제주에 제대로 정착하고자 발버둥치는 필자는 제주에 살면서 이 세 가지가 가장 불편하다. 거꾸로 제주민들 역시 ‘육지것’들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네가 그것 때문에 불편했구나, 공감을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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