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1:14 (금)
제주 지하수 오염 주범은 농업? "농민들도 속사정은 있다"
제주 지하수 오염 주범은 농업? "농민들도 속사정은 있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2.10.28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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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창간 18주년 특별 기획

각종 연구 등, 제주 지하수 오염 주범으로 1차 산업을 지적
"밭에 뿌려지는 농약·비료 양 상당, 지하수 오염으로 연결"
농부들 “현실적으로 농약 등 사용하지 않으면 힘들어”
제주 농가 부채 전국 평균의 3배 ... 농지 확보도 힘들어
"생산량 확대에 사활 걸 수 밖에 없는 상황 ... 농약 사용 강요돼"
제주도내 농지. /사진=미디어제주 자료사진.
제주도내 농지. /사진=미디어제주 자료사진.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2019년 8월 제주연구원에서 공개한 ‘동부지역 질소비료 사용량 증가에 따른 지하수 수질 위험성과 대응방안’에 따르면 제주동부지역 지하수 수질은 서부지역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준이지만 지하수 수질 악화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질산성질소’의 증가 폭이 우려스러운 수준을 보였다.

특히 해발 200m 이하 지역에서 2013년 이후 질산성질소의 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연구원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구좌읍 지역의 화학비료 사용량 증가와 더불어 해발 200m 이상 상류지역에서 액비 살포 등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토양과 지질 특성이 더해지면서 지하수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주연구원은 실제로 2012년 이후 도내 전체적으로 질소비료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특히 구좌읍을 중심으로 질소비료 판매량이 도 전역 증가율보다 더 높게 늘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주연구원이 내놓은 해결책은 ‘비료 사용량의 감축’이었다. 제주연구원은 “임대농의 경우 여려 필지를 임대해 같은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고,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자동화된 농기계를 이용해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된다. 이로 인한 오염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임대농을 대상으로 적정 비료 사용에 대한 교육 홍보와 더불어 토양 검정을 통해 적정량의 비료를 살포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현재 농가에서 살포하는 비료량은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실정이라 농가에서는 관행적으로 비료를 살포하고 있다”며 “화학비료에 의한 지하수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료사용량을 제한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주도내 밭과 과수원 분포도. 밭과 과수원이 몰린 구좌읍과 대정읍, 한경면 등을 중심으로 지하수의 질산성질소 농도가 높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료=제주연구원.
제주도내 밭과 과수원 분포도. 밭과 과수원이 몰린 구좌읍과 대정읍, 한경면 등을 중심으로 지하수의 질산성질소 농도가 높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료=제주연구원.

올해 6월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보건환경연구원은 “한경면 및 대정읍 지역은 화학비료의 영향이 우세하다”며 해당 지역에서의 지하수 오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화학비료를 지적했다.

이외에도 제주도내 지하수 오염의 원인을 제주도내 농업의 지나친 농약 및 화학비료 사용으로 돌리는 연구결과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월 제주시 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린 ‘탄소저감 실천을 위한 화학비료 및 화학농약 절감’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제주도 3만여 농가가 연간 사용한 비료는 4만7000톤에 이른다”며 이로 인해 지하수와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그러면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는 관리대책이 마련되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숨골을 주제로 한 세미나 과정에서도 주제발표 자리에서 제주도내 지하수 오염을 언급하며 “농민들이 농약 사용 등에 대해 좀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농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제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 농약 및 화학비료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농민들

제주에 이주해 도내에서 4년 째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30대 청년 농부 A(32)씨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제주에서의 농사가 농약 및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A씨는 “간혹 제주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을 향해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며 지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며 “농부 입장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흠집이 없는데다 벌레도 먹지 않고, 크기도 큰 그런 농산물을 내놔야 시중에서 팔린다. 그렇지만 그런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야만 효과가 빠르게 나온다. 이렇게 해서 농산물을 팔아야 잘 팔리기 때문에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A씨는 “애초에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서 판매를 하는 유통단계에서는 서울 가락시장 공판을 거치게 되는데, 가락시장에서부터 깔끔하고 흠집이 없고 벌레도 먹지 않은 것 등을 기준으로 농산물을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사진=미디어제주 자료사진.

A씨는 행정당국에서도 농약 및 화학비료의 사용을 알게 모르게 장려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A씨는 “평소 친환경 농업을 해온 조천의 한 농부는 화학비료를 쓰면 작물이 잘 자란다는 말을 듣고 화학비료를 사용해보려 했지만, 이와 관련한 지원을 받기 위해 이전에 화학비료를 사용했던 실적이 있어야 했다.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고 꼬집었다.

A씨는 그러면서 “행정당국 등에서는 친환경 자체를 독려한다기보다는 친환경 농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지원이 멈추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A씨의 지적에서는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깔끔하고 흠집이 없는데다 벌레도 먹지 않는 등의 상품만을 생산해야 할까? 상품성이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인 재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친환경 농법을 해오던 조천읍의 한 농부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로 눈을 돌린 것에는 농부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이 놓여 있다.

◇ 제주농민들의 부채, 전국 평균의 3배 ... 농지 마련도 어려워

제주도가 지난 9월15일 공개한 ‘2022년 농축산식품 현황’에 따르면 제주도내 농가당 평균 소득은 전국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농가당 평균소득은 5258만6000원으로 경기도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렇지만 제주도내 농가들이 지고 있는 부채는 그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기준 제주도내 농가당 평균 부채는 9천999만6000원으로 사실상 1억원이다. 소득의 2배에 육박한다.

이는 다른 지역 농가들이 지고 있는 부채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전국에서 제주 다음으로 농가당 부채가 많은 곳은 경기도로 5731만3000원이다. 제주보다 4000만원 이상 적다. 그 외 다른 지역의 농가당 부채는 적게는 1700만원 수준에서 많게는 3500만원 수준이다. 전국 평균 농가당 부채도 3659만2000원이다. 제주와 비교하면 3배 가깝게 적은 수준이다.

농민들의 농지 확보도 쉽지 않다. A씨는 “농지 구매를 목적으로 최대 3억원을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3억원으로 농지를 구입한 뒤 농사를 지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5년 거치 이후 이자를 포함해 매년 수천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이를 상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대출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아울러 “사실 3억원을 대출받는다고 해도 제주에서 농지를 구입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농지의 땅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A씨는 “지인이 이 3억원을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하려 했지만 금액이 부족해 다른 대출을 끌어모아 2억원을 더해 농지를 구입했다. 이후 상환 등으로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제주도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육지부의 농지는 평당 10만원에서 20만원 수준으로 구입을 할 수 있는데, 제주의 경우는 평당 50만원에서 많게는 70~80만원까지 간다. 3억원을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한다고 해도 600평 내외의 땅일텐데, 이 면적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제주의 땅값이 너무 높아서 나타나는 문제”라며 “여기에 더해 농지를 농사 이외에 투기 목적 등으로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려움이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농지법 위반 등으로 제주경찰에 적발된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한 농지.  한 농업법인이 필지 분할 등으로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주경찰청.
지난 2020년 농지법 위반 등으로 제주경찰에 적발된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한 농지. 한 농업법인이 필지 분할 등으로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주경찰청.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농민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상품성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지하수 오염에 영향을 덜 미치는 친환경 농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농민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2007년 입도해 10년 넘게 농업 종사하고 있는 또 다른 농민인 B씨는 <미디어제주>와의 통화에서 “친환경 농업은 일반적인 농업에 비해 노동력이 더욱 많이 투입된다"며 "더군다나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한 것에 비해 크기 등이 작은 농산물이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상품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더 나아가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려는 경우에는 일반 농업에 비해 7~8배의 자본이 더 투입돼야 한다. 제주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농약이나 화학비료 사용이 사실상 강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제주도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도는 도내 농가들의 화학비료 및 농약 사용 절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57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용역으로 올해 11월 중으로 완료된다.

도 관계자는 “여기에 더해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미생물 지원사업도 많이 하고 있다”며 “올해 추경에도 미생물 지원 사업을 반영해 농약과 비료의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화학비료 및 농약 사용 절감 방안 마련 용역까지 마무리되면 보다 뚜렷한 대책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역시 지난 9월 열린 ‘탄소저감 실천을 위한 화학비료·화학농약 절감’ 심포지엄에서 “제주도정은 화학비료 절감을 위해 기술보급과 컨설팅, 모니터링에 힘쓰며 농가경쟁력 향상과 제주 청정환경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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