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학교 숲에서 찾았어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학교 숲에서 찾았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11.2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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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5>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학교숲 “다시 태어나”

학교협동조합이 만든 농산물 등도 판매 계획

야외수업은 물론, 학교 축제도 열리는 공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녹지의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잘 사는 동네라고 하더라도 콘크리트를 비롯한 불투수성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면 삶의 만족을 담보할 수 없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미 피어스와 그의 연구진이 ‘환경 정의와 건강: 영국의 건강 불평등에 대한 다중환경박탈의 사회 공간적 분포 의미’라는 논문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피어스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다중환경박탈지수’를 개발했는데, 사람들이 사는 주변의 생태환경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들이 개발했다는 ‘환경 박탈’은 인간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를 던지는데, 그건 다름 아닌 우리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피어스 연구 결과는 부자 동네 주민들간에도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런던의 부자동네인 이즐링턴과 클러큰웰 등은 인구밀도도 높고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으며, 녹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 또 다른 부자동네인 나이츠브리지와 베이스워터는 가까운 곳에 있는 하이드파크를 편하게 이용한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즐링턴과 클러큰웰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피어스의 연구는 ‘내 곁에 있는’ 녹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다시 태어난 서귀포산업과학고의 학교 숲. 미디어제주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다시 태어난 서귀포산업과학고의 학교 숲. ⓒ미디어제주

학교 환경도 녹지가 있을 때 달라진다. ‘학교 숲’이라는 용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곁에 있는 녹지를 구경만 하지 않고 학교에 있는 구성원들과 한 몸이 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그럴 때 학교 숲은 가치를 더욱 끌어올린다. 서귀포산업과학고는 녹지를 학생 곁에, 교사 곁에 오게 만들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서귀포산업과학고는 지난 2019년 말에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진행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사업 가능한 곳으로 점찍은 장소는 학교 숲 가꾸기 사업으로 조성된 야외공간이었다. 이듬해 건축설계에 들어갔다. 설계를 맡은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 부희철 소장은 ‘가변성’과 ‘확장성’을 이 공간에 담았다. 공간은 완성 형태였을 때 쓰임이 최소화된다. 그러지 않은 공간은 매번 바뀌는 즐거움이 있고, 사람들이 몰려오게 만들며 거기에 온 이들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부희철 소장이 계획한 학교 공간은 제주에 널린 비닐하우스를 모티브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끌어냈다. 철제 모양의 틀을 숲 공간에 들여놓았다. 회랑형태를 띤 이 공간은 학교 본관 북동쪽 끝에 있다. 마침 특수학급인 ‘하림반’이 본관 끝에 있는데, 여기서 회랑공간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애초엔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배우는 하림반 학생들이 음료를 내놓으려고 했는데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회랑은 만들었으나 쓰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는 잠시동안 모든 걸 멈추게 만들었지만 서귀산업과학고의 이 공간은 새롭게 움틀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코로나19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공간은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학교협동조합)이 생산해낸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소로 쓸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협동조합은 자영생명산업·말산업·디자인·발명 등 4개 분과에 117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조합원은 학생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들도 들어 있다. 이 학교 문경삼 교감은 “공간 혁신으로 만든 이 공간에서 협동조합 농산물 등을 팔 계획이다. 외부에까지 판매할 정도의 수확량은 나오지 않기에 여기에서만 판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철제로 만든 회랑은 다양한 만남이 있는 공간이다. 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든 농산물도 판매하고, 학생들끼리 축제도 여는 장소로 계획중이다. 미디어제주
철제로 만든 회랑은 다양한 만남이 있는 공간이다. 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든 농산물도 판매하고, 학생들끼리 축제도 여는 장소로 계획중이다. ⓒ미디어제주

서귀포과학산업고는 한라봉과 블루베리, 천혜향, 딸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학교엔 스마트팜도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유럽채소와 상추 등 신선한 채소를 스마트팝에서 생산한다. 신선한 채소와 맛있는 과일이 회랑공간에서 판매될 날을 꿈꾸고 있다.

학교 회랑은 학교협동조합의 생산물 판매 장소로 활용되는 용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야외수업도 여기에서 진행되고, 학생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학교 축제가 열릴 때면 학생들의 끼를 발산하는 무대도 된다. 학교 숲으로 조성된 공간이기에 다양한 나무가 그늘과 여유를 생산한다. 메타세콰이어가 있고, 고로쇠나무, 녹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조록나무, 산유자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학생과 교사들의 벗이 된다.

학교 회랑은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며 쉴 수 있고, 어떤 때는 왁자지껄한 시장터도 되는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에서 말하는 회랑은 ‘길게 두른 복도’를 의미하는 원래의 ‘회랑’(回廊)이 아니다. 서귀포과학산업고의 회랑은 사람들이 모이는 ‘회랑(會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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