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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3 수용자 중 미성년자 포함, 사진 자료로 확인
1948년 4.3 수용자 중 미성년자 포함, 사진 자료로 확인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2.11.2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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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추가진상조사단,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회에 조사단 활동 중간 보고
김천교도소‧제주지검 수형인명부 등 자료도 입수 … 행불인 피해실태 파악 길 열려
1948년 6월 수용자들이 무장한 경비대에 의해 심문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교복과 모자로 미루뤄보면 수용자들 중 2명은 중학생으로 추정된다.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1948년 6월 수용자들이 무장한 경비대에 의해 심문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교복과 모자로 미뤄보면 수용자들 중 2명은 중학생으로 추정된다.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1948년 6월 미군이 제주농업학교 수용소를 방문해 촬영한 사진이 미 극동사령부와 위성턴의 미 육군성 정보국에 보고됐던 사실을 알려주는 보고서 내용이 새롭게 확인됐다.

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은 지난 24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제3차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에서 추가 진상조사 수행 결과를 보고, 이같은 조사단의 활동 내용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사단이 입수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특히 19장의 사진 설명을 통해 당시 수용자 가운데 중학생 등 미성년자들이 포함돼 있고, 수용시설 방역 물자 등이 미 군정청에 의해 지급된 것임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이 새롭게 알려지게 됐다.

1948년 6월 수용자들에게 미 군정에 의해 지급된 소독약(DDT)을 뿌리고 있는 모습.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1948년 6월 수용자들에게 미 군정에 의해 지급된 소독약(DDT)을 뿌리고 있는 모습.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12~13일 미 대사관 외교관과 해군 군무관, 미 군사고문단 장교들이 함께 제주를 시찰했으며, 김충희 도지사와 신현준 해병대사령관, 제주 법원 관계자 등과 회의를 갖고 앞으로도 정기적인 시찰을 통해 군의 사기를 진작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문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같은 자료는 이미 소강상태에 있는 시점에서도 미국과 미군이 제주의 상황을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단이 수집한 자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 중인 1715건, 1만3334장의 문서와 사진, 항공사진 지도 등이 포함됐다.

또 대전과 성남의 국가기록원에서 1945년에서 1949년까지 제주지검에서 작성된 수형인명표철과 제주를 본적지로 하는 김천교도소 수형인명부(1950), 제주지검 수형인명부(1950-1953), 재소자인명부 등이 추가로 입수됐다. 이 기록물에는 전국의 수형인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어 행방불명된 4‧3희생자들의 피해실태 파악과 행적을 가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 밖에도 2700여 건의 신규 자료를 발굴하고 국가기록원에 자료 송부를 요청했다.

조사단은 제주지방경찰청 등에서 100여 건, 1300여 매 분량의 새로운 자료를 수집했고, 이 중에는 사건 종결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신원특이자’, ‘공안사범’ 등으로 낙인찍혀 사찰기관에 의해 관리받던 희생자 가족들의 피해를 뒷받침해줄 자료가 일부 확인되기도 했다.

1973년 경찰사 발간을 위해 3‧1사건 이후 4‧3의 전개 과정에 대한 기술과 당시 피해 상황, 경찰 활동 일지 및 전사자 명부 등도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도내 4‧3희생자 및 유족 증언 등을 통한 지역별 피해실태와 일본 현지 조사를 틍한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파악 조사 활동, 지난 3월 제28차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의결에 따른 6개 주제(지역별 피해실태, 행방불명 피해실태, 미국의 역할, 군‧경토벌대와 무장대 활동,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에 대한 조사 활동 보고도 함께 이뤄졌다.

회의에 참석한 분과위 위원들은 앞으로도 내실 있고 공정한 조사를 당부하는 한편, 이미 고령인 4·3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증언 조사, 정부·기관 소장자료 발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앞으로도 국가기록원, 경찰청, 해군(해병대) 등 관련 기관 방문 조사와 미국, 호주 등 주요 관련 국가의 문서 및 기록물 수집을 위한 현지 조사 계획을 수립해 추가 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 차원의 추가진상조사는 지난 2021년 3월 전부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22년 만에 다시 이뤄지게 됐고, 진상조사와 보고서 작성의 실무는 제주4·3평화재단이 수행하고 있다.

조사 활동을 바탕으로 2024년까지 작성될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회에 보고하게 된다.

1948년 8월 31일 24군단 정보참모부(G-2) 부관 중령 제임스 쇼 주니어(James E. Shaw, Jr)가 발송한 문서 표지. 해당 문서와 첨부된 19장의 사진은 육군부 정보국,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G-2)를 통해 미 육군부 지형과, 10월 13일 미 육군부 정보문서과, 11월 24일 정보도서관 등에 전달됐다.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1948년 8월 31일 24군단 정보참모부(G-2) 부관 중령 제임스 쇼 주니어(James E. Shaw, Jr)가 발송한 문서 표지. 해당 문서와 첨부된 19장의 사진은 육군부 정보국,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G-2)를 통해 미 육군부 지형과, 10월 13일 미 육군부 정보문서과, 11월 24일 정보도서관 등에 전달됐다. /자료 출처=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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