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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나? 제주서의 노력 한 자리에
'문화'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나? 제주서의 노력 한 자리에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2.12.1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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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문화의섬:네트워킹 데이' 가져
선흘 그림 그리는 할머니 등 문화가 불러낸 변화 공유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문화’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공유하는 체계다. 즉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이며, 그 활동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도 하며, 최근 들어서는 기후위기 등으로 그 문제점들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 역시 ‘문화’가 만들어내는 변화에서 나온다. 그런 문화는 미래를 바라본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마련한 ‘제주문화예술의 섬: 네트워킹 데이’ 역시 문화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통해 더욱 나은 미래를 고민해보는 자리였다. 지난 16일부터 18일에 걸쳐 마련됐으며, ‘미래를 위한 실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우리의 실험실’이라는 주제로 ‘지속가능한 삶’을 찾기 위한 노력과,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실천적 사례들이 다양한 강연과 대담, 오픈워크숍, 라운드테이블, 공연 등을 통해 공유됐다.

2022 제주문화예술섬 네트워킹 데이 포스터. /자료=제주문화예술재단
2022 제주문화예술섬 네트워킹 데이 포스터. /자료=제주문화예술재단

사단법인 소셜뮤지엄은 제주의 외딴 마을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이뤄낸 변화를 이 자리에서 풀어놨다. 소셜뮤지엄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일상에 예술을 집어넣고, 그를 통해 할머니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다. 예술가가 된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나아가 마을공동체를 변화시켰다.

소셜뮤지엄은 삶 속에 목탄을 갖다 놓고, 물감을 갖다 놨다. 제주도내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들의 창고 앞에서 창고와 할머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할머니들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진 할머니들은 하나둘 모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흘리의 밭에서 손에 흙을 묻혀가며 평생을 지내온 할머니들은, 어느 순간부터 손에 목탄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집 안에서 할머니들의 생활 공간은 겨우 안방과 부억, 거실 정도였다. 하지만 목탄가루를 손에 묻히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안방과 부엌에서 벗어나 집 안에 그림방을 놓기 시작했다. 밭작물을 보관하던 창고는 겔러리로 변화시켰다. 할머니들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배우기 위해 제주도내 곳곳의 겔러리들을 견학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삶의 반경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넓어졌다.

'제주문화예술의 섬: 네트워킹 데이'가 16일 오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문화예술의 섬: 네트워킹 데이'가 16일 오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할머니들의 변화는 주변의 변화를 불러왔다. 가족 먼저 변해갔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갖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전시회 첫날 할머니분들 중 한 분의 따님이 찾아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늘이 끝’이라고 말하고 가셨다. 그 후 그 따님은 매일 전시회에 오시며 자신의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지 감시하셨다. 전시회가 열리던 4주 내내 그렇게 하시더니, 전시회 마지막 날에는 직접 자신의 어머니가 그린 그림을 구입하셨다. 그림이 어머니가 남기는 유산이고, 기록이라는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뮤지엄 측은 이렇게 말했다.

마을공동체도 변화했다. 일부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그 마을의 다른 할머니들도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들도 그림을 배우기 위해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그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흘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예술의 생산자들이 되기 시작했고, 작은 변화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변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선흘리 할머니들. /사진=사단법인 소셜뮤지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선흘리 할머니들. /사진=사단법인 소셜뮤지엄.

이 ‘네트워킹 데이’에서는 또 다른 성공적인 실험도 공유됐다.

제주에서 ‘생태정원 베케’를 일군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는 생태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수십년을 식물원에서 일하며 식물을 가까이 해왔다. 식물에 대한 관심과 지속된 공부는 그로하여금 정원가가 되도록 했고, 제주도 서귀포시의 자신이 그리던 정원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정원을 가꾸던 그는 서귀포시의 자신의 공간에서 벗어나, 도심 속 녹지공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날 강연을 통해 나무가 도심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디자인적인 측면으로 전달했다. 대개는 정육면체로 이뤄진 건물은 김 대표가 보기에 ‘면’들이 집합이다. 이 건물들로 이뤄진 도심 역시 ‘면’과 ‘면’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는 이 도심 속에 심어진 나무가 ‘면’으로만 채워진 공간에 던져진 ‘선’과 ‘점’이라고 했다. 이 ‘선’과 ‘점’은 ‘면’의 공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요소다. 즉, 도심 속 녹지공간은 도심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고,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나아가 그는 정원을 통해 제주 자연의 뛰어남을 봤다. 식물을 공부하고 정원을 가꾸던 그는 제주의 복수초가 겨울부터 꽃을 피워며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함을 전했다. 겨울에는 수선화와 동백이 피어나며,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남을 전했다. 모든 계절에 걸쳐 제주는 꽃을 피워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주 자체가 하나의 커더란 정원이었다.

정원을 가꾸던 것이 나아가 제주의 도심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자라나게 했고, 제주 자체를 가꾸고자 하는 마음을 자라나게 했다. 김 대표의 생생한 이야기로 이와 같은 변화가 더 많은 이들에게 공유됐다.

이외에도 다른 이들은 무너저가는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기후위기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라는 점을 전했다. 그 외 더 아름다운 제주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청년들이 모여, 제주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과 고충을 나누기도 했다.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더 나은 변화를 위한 방안들이 공유됐고, 생각들이 전해졌다. 의견과 의견이 전달됐고, 변화를 위한 다른 만남들이 기약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며 약속을 나눴다. ’네트워킹 데이’가 끝이 나도, 이 날 뿌려진 씨앗들은 이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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