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식물 표본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를 만나러 간다”
“식물 표본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를 만나러 간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1.05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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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비엔날레에 작품 선보인 이소요 작가

제주에 흔한 ‘동백’과 ‘야고’의 깊은 이야기

‘탐구’ 활동을 넘어선 ‘탐닉’을 작품 곳곳에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1년 넘게 걸리기도

“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지난해 11월부터 열리고 있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 주제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다. 제주비엔날레 주제는 자연의 흐름을 말한다. 우리 인간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제주비엔날레가 제시한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예술의 영역은 크고 넓다. 단순히 캔버스에 작품을 새겨넣는 행위로만 축소하곤 하는데, 화폭에 담기는 행위 이외의 예술이 얼마나 많은가.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이소요 작가가 눈에 띄는 건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소요 작가는 ‘자연사표본보존복원’이라는 다소 낯선 학문의 전공자이다. 예술을 먼저 접한 그는 자신의 예술을 강화시키려고 ‘자연과학’을 입혔다. 그러다 보니, 그가 뱉어내는 작품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진다.

이소요 작가. 미디어제주
이소요 작가. ⓒ미디어제주

그가 제3회 제주비엔날레에 내놓은 작품은 제주와 연관성을 지녔다. 제주사람에게 익숙한 ‘동백’과 제주사람에서 다소 낯선 ‘야고’다. 동백은 제주에서 너무 흔하기에, 그의 작품을 보는순간 ‘이런 것도 작품이 되는구나’ 느끼게 한다. ‘야고’는 숨겨진 보물을 찾은 느낌이랄까. ‘야고’는 제주에 흔한 억새 뿌리에 기생하는 식물이다. 줄기가 매우 짧아 우리는 그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자랐을 뿐이다.

“동백나무와 같은 것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단편적으로 밖에는 몰라요. 제주동백은 관광지에서 피는 이미지를 생각하기 쉬운데, 자생지에 가면 모습도 다르고, 종도 달라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죠. 동백은 4.3의 상징으로도 많이 접하잖아요.”

그가 흔하디흔한 동백을 들고나온 이유는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흔한 동백이 아니라, 제주 곳곳에 숨겨진 ‘진짜 동백’을 보여주려는 욕망이 제주비에날레에 발현되고 있다.

사실 동백은 이소요 작가에게, 식물의 문을 열어준 존재였다. 지금의 그가 만들어진 과정에 동백이라는 식물이 있기에 그에겐 애착이 남다를 수밖엔 없다.

“강요배 작가의 <동백꽃 지다>는 제가 동백나무에 입문한 계기였어요. 동백이 4.3의 상징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더 깊이 조사하게 되었거든요. 제겐 식물에 입문하게 된, ‘열어주는 문’과 같은 작업이었어요.”

그는 식물 표본을 만드는 예술가다. ‘식물 표본이 예술인가?’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 테지만, 예술이 맞다. 가장 오랜 식물 표본으로 16세기 이탈리아에 살았던 게라르도 치보의 작품이 있다. 치보 역시 예술가였다.

동백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미디어제주
동백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미디어제주

식물 표본을 만드는 예술가는 ‘탐구’를 뛰어넘어 ‘탐닉’해야 한다. 식물을 이해하려고 자료를 뒤지며 공부하는 ‘탐구’는 필수이며, 그 식물의 모든 것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탐닉’이 더해진다.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무척 길다.

“1년 넘게 걸리죠. 왜냐하면 식물 하나의 라이프 사이클을 다 봐야기 때문이죠. 식물 표본을 하나 만들 때 운이 좋으면 1년 안에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고, 봄·여름·가을·겨울 변하는 식물이 많기 때문에 해를 넘기는 경우도 있어요.”

식물 표본을 만들려면 식물의 성장 과정을 오롯이 지켜봐야 한다. 식물 표본은 꽃이 피고, 씨가 떨어지고, 다시 발화해 크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만들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시기를 잘 찾아야 하는 ‘때와의 싸움’이다. 때를 놓치면 그 식물이 있는 곳을 찾아 이 지역, 저 지역을 헤매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제주비엔날레에서 마주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그런 노고가 담겼다.

‘야고’는 제주 억새밭에서 만날 수 있는데, 이소요 작가는 서울에서 먼저 봤다고 한다. 쓰레기매립장이던 난지도가 ‘하늘공원’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제주 억새를 옮겨 심었고, 그때 억새에 기생하던 야고도 뿌리를 튼 모양이다. 사실은 추운 서울에서 살 수 없는 야고임에도 생존하는 희귀한 장면을 그는 목격했다. 커다란 억새 표본 아래 아주 작은 키의 야고의 모습을 제주비엔날레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 야고는 어떻게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야고는 남쪽에서 살아요. 북쪽으로 올라가면 유일하게 발견되는 자생지가 하늘공원으로 알고 있어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하부의) 열기가 지금도 있어서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눈이 내리고 땅이 어는 지대라면 그러지 못했죠.”

하늘공원에서 만난 야고의 본 모습을 찾으려고 숱하게 제주를 오갔다. 그는 그런 모습의 자신을 향해 ‘식물을 배워가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이소요 작가의 갈대 표본으로, 갈대 밑에 있는 식물이 바로 '야고'다. 이소요 작가가 야고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소요 작가의 억새 표본으로, 억새 밑에 있는 식물이 바로 '야고'다. 이소요 작가가 야고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디어제주

“식물을 볼 때면 이 세상이 얼마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지를 깨닫게 되거든요. 항상 식물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아요. 식물은 신기해요. 빛과 공기와 물만으로 몇십 미터에 달하는 아름드리 나무가 생겨나잖아요.”

땅에 박힌 식물은 움직일 수 없어 나약하게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시각일 뿐이다. 식물은 수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개체와도 소통하곤 한다. 우리는 그런 식물을 너무 함부로 대한다.

“가로수의 가지를 칠 때 신호등을 가린다, 아니면 잎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 그런 기준을 대잖아요. 사람의 편리 기준을 따르는데, 그 자리를 쭉 지키고 있던 생물군의 생태적인 관계를 좀 더 생각하고 했으면 좋겠어요.”

이소요 작가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제주비엔날레는 2월 12일이면 마감을 한다. 그렇더라도 이소요 작가는 제주에 또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오름을 오르다 길을 잊어버린 기억, 강한 제주바람을 만나서 무서웠던 기억을 더 얘기할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 그렇다면 우선은 동백이 피는 지금 시기에, 제주도립미술관에 있는 이소요 작가의 작품을 먼저 만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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