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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에서 제주대첩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화북에서 제주대첩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1.09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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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화북포구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석 제막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석 제막에 참석한 화북 마을 주민들. 미디어제주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석 제막에 참석한 화북 마을 주민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시 화북동에 새로운 역사문화 콘텐츠가 생겼다.

화북동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지닌 마을이다. 여기에 새로운 콘텐츠로 ‘제주대첩’이 덧붙여진 것.

화북동 마을 주민들은 지난 8일 화북포구 일대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석 제막식을 가졌다. 이로써 화북동은 새로운 콘텐츠를 얻게 됐다.

을묘왜변은 지난 1555년(명종 10) 왜구가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이다. 왜구 세력은 전남 영암 일대는 물론, 제주까지 침략을 일삼았다.

1555년 5월 육지부를 침범해 노략질을 했던 왜구 일당은 패퇴하면서도 전남 일대에 큰 피해를 안겼다. 왜구 일당은 그걸로 그치지 않고 6월엔 제주까지 침범했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왜구는 6월 21일 제주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상륙을 준비했다고 나온다. 왜선은 40여 척이었고, 적지 않은 병력을 상륙시켜 제주를 침탈했다. 침탈의 시작점은 화북포구였다.

왜구들이 화북포구로 들어온 시점은 6월 27일이다. 1000명 넘게 상륙한 왜구는 제주성을 사흘간 포위하며 진을 쳤으나, 제주도민들이 활약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을묘왜변은 왜구들의 대규모 침탈이면서도, 제주도 역사로 보면 가장 큰 승리를 안긴 사건이다. 당시 명종은 을묘왜변을 가리쳐 ‘대첩’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지난 8일 화북포구에서 제막된 ‘을묘왜변 제주대첩’이라는 표석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김영국 청풍마을 회장은 “을묘왜변은 조선 건국 후 최대 규모의 왜변이었다. 제주대첩의 시발점인 화북포구에 전적지 표지석을 설치하는 제막식을 갖게 돼 뜻깊다”면서 “앞으로 지역 축제인 화북 포구문화제 프로그램에 이를 재구성해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에게 널리 홍보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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