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제주4.3이 끊어버린 세상 향한 통로, '기록'으로 되살려내다
제주4.3이 끊어버린 세상 향한 통로, '기록'으로 되살려내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1.12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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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제1회 4.3정담회 개최
'기록' 통해 4.3 관련 의제 및 정잭 발굴 위해 마련
4.3과 그 이후 삶 다룬 '인동꽃 아이' 통해 4.3 조명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4.3의 기억을 담아낸 '인동꽃 아이'의 저자 강양자 작가(가운데)와 한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요가 강사 이제윤씨(왼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4.3의 기억을 담아낸 '인동꽃 아이'의 저자 강양자 작가(가운데)와 한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요가 강사 이제윤씨(왼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4월이 돌아오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더 납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도요. 불타버린 광령리의 집도 떠오르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힘들었던 시간들. 순박하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게 누구의 책임인지 속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4.3의 광풍 속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 남겨졌던 강양자 작가는 12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열린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에서 이렇게 전했다.

이날 열린 4.3정담회는 제주4.3을 겪어왔던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기록’을 통해 4.3을 공유하고 향후 의제와 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행사다.

행사에는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한권 위원장과 박두화 부위원장, 강봉직 의원, 강하영 의원. 고의숙 의원. 현기종 의원 등이 참석했다. 그 외에 이날 정담회에서 공유된 ‘기록’이자 자신이 겪은 4.3과 그 이후의 삶을 풀어낸 4.3그림에세이인 ‘인동꽃 아이’의 저자 강양자 작가와 제주도 관계자 등이 함께했다.

한 위원장은 “지나온 시간은 한순간 한순간이 각자의 기억이자 기록으로 남는다”며 “4.3의 정의로운 해결은 그날의 기록에서 시작하고, 그 기록은 4.3의 시간을 함께 거쳐온 많은 분들의 기억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기록을 통해 4.3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제1회 4.3정담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며 “4.3의 평화·인권·상생의 가치를 다시금 새기고, 우리 모두가 내딛는 걸음이 새로운 기록이 돼 4.3이 상생의 기록, 역사의 기록, 모두의 기록이 돼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이어 강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강 작가가 태어난 곳은 일본이었다. 1942년 경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45년 대한민국이 광복을 이루자 강 작가는 부모와 함께 부모의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제주에 돌아오자 마자 부모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질 않았어요. 저는 외할아버지를 붙들고 부모님이 어디에 갔느냐고, 왜 오질 않는 거냐고 다그쳐 물었죠. 외할아버지는 날이 밝으면 아버지를 찾으러 가자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그랬어요.”

강 작가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아버지가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었던 광복 직후의 강 작가는 아버지를 찾아달라며 외할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강 작가의 화를 받아주던 외할아버지도, 어느 순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곳곳에선 총소리가 들렸다.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4.3이 제주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외할아버지가 밭일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아요. 제가 외할아버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는데 그 날따라 돌아오질 않으셨죠. 기다리다 지쳐서는 외할머니에게 가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덜컥 주저 앉으셨어요. 할머니는 저에게 혼자 자고 있으면 할아버지를 찾아서 오겠다고 했지만, 저는 어두워지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서 할머니를 따라 나섰죠.”

외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따라나선 어린 강 작가의 마음은 무거웠다. 강 작가는 “제가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화를 내고 이것 저것 물어본 것이 할아버지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었나 생각했죠. 나 때문에 안 들어오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꼭 할아버지를 찾고 가자고 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작가는 그 날 이후 외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외할아버지를 찾아 나섰지만, 외할아버지가 늘 밭을 갈던 자리에는 할아버지의 흔적도, 함께 밭을 갈던 소의 흔적도, 달구지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4.3의 기억을 담아낸 '인동꽃 아이'의 저자 강양자 작가(가운데)와 한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요가 강사 이제윤씨(왼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12일 재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1회 4.3정담회(思·삶情談會) ‘오늘의 기록, 4.3 미래를 열다’가 열리는 가운데, 4.3의 기억을 담아낸 '인동꽃 아이'의 저자 강양자 작가(가운데)와 한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요가 강사 이제윤씨(왼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하루는 외할아버지를 찾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서는데 별안간 천둥이 쳤죠. 11월이었어요. 추위도 시작되고 있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밭에서 내려오는데, 제가 빨리 걸을 수 없어서 할머니 등에 엎었어요. 그렇게 내려오다가 할머니가 넘어지는 바람에, 저도 할머니 등에서 돌구덩이로 떨어졌죠. 할머니도 너무 놀라서 제 이름을 부르는데, 저는 그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강 작가는 그 때 척추를 다쳤고, 다친 척추와 함께 그 이후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냈다. 강 작가는 그 이후 4.3에 따른 후유장애 신청을 했지만, 강 작가의 후유장애는 인정되지 않았다. 강 작가의 등이 4.3의 광풍 속에서 실종된 외할아버지를 찾다 다친 것이 아니라, 결핵성 척추염에 따른 것이라는 그 당시 국민학교 생활기록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4.3이 뭔지도 몰랐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다가 다치게 됐는데, 사회와 국가가 믿어주질 않았다. 그 후 일절 밖으로 다니질 않았다.”

그렇게 사회와 단절된 강 작가는 인동꽃을 팔아 5환을 번 것이 유일한 경제생활이었다. 4.3을 지나오며 결국 사회와 담을 쌓았던 강 작가에는 인동꽃만이 유일하게 사회와 강 작가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강 작가는 어린 시절 광령리에 살던 시절, 외할아버지가 밭에 나갈 때에 따라 나서곤 했다. 그 밭에서 처음으로 반딧불이 5마리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반딧불이를 외할아버지에게 가져가 이렇게 말했다. “이 곤충은 왜 반짝거리는거죠? 땅의 별이에요?” 외할아버지는 그런 강 작가의 질문에 웃으면서 “네 머리에는 뭐가 들었는데 그런 말을 하느거냐”고 하셨다.

반딧불이를 ‘땅의 별’이라고 생각했던 강 작가는 순박하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4.3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왜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4.3의 광풍은 강 작가를 휩쓸었고, 평생에 걸쳐 사회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요가 강사를 하던 이제윤 씨로부터 방문 요가 수업을 받게 됐다. 강 작가와 요가 수업을 하던 이제윤씨는 강 작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고, 강 작가가 4.3그림에세이 ‘인동꽃 소녀’를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기록을 통해, 강 작가는 70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 밖으로 나온 강 작가는 “앞으로는 천지의 자연을 품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다 내키면 그림도 그러보고”라고 덧붙였다.

강 작가가 ‘기록’을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왔듯이, 세상도 ‘기록’을 통해 강 작가와 4.3을 만났다.

이 ‘기록’을 조명한 자리를 마련한 4.3특별위원회는 앞으로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이와 같은 목소리를 담아내는 다양한 정책 등을 의회 차원에서 관심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한권 위원장은 강 작가의 에세이에 대해 “개인의 삶이 평생 고난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4.3특위 역시 2023년에는 기록을 통해 4.3의 미래를 설계해 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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