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자연과 인간, 신앙이 하나의 공간에 담긴다면”
“자연과 인간, 신앙이 하나의 공간에 담긴다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1.18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제주비엔날레에 작품 선보인 김기대 작가

제주현대미술관 남쪽에 ‘바실리카’ 지어

제주라는 대지를 캔버스 삼아 작품 소화

인간의 직접 행위인 농업을 작품에 투영

“유채꽃 필 때까지 남아주었으면 어떨까”

잘 놀아서일까? 놀 공간을 잘 만드는 이가 있다. 도순초등학교나 선흘초등학교를 가본 이들은 안다.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며 노는 행위의 놀이가 아닌, 또 다른 재미난 놀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걸 일깨우는 작가가 있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모든 걸 잘 다루는 김기대 작가이다. 그는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 주어졌을 때 힘을 낸다. 대지를 캔버스 삼아 작업을 한다. 특히 제주도는 김기대 작가에겐 커다란 캔버스다. 다만 제주라는 캔버스는 함부로 대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아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대한 캔버스를 해치지 않게 해야 제대로 된 작품을 낼 수 있어서다.

제주현대미술관 남쪽에 자리를 잡은 김기대 작가의 '바실리카'. 미디어제주
제주현대미술관 남쪽에 자리를 잡은 김기대 작가의 '바실리카'. ⓒ미디어제주

제주현대미술관 남쪽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공수장고 곁에 낯선 건축물이 있다. 성당인가? 교회인가? 이런 느낌을 떠올리게 만든다. 파빌리온 형태의 그 건축물에 다가서면 ‘바실리카’라는 설명문이 사람을 맞는다. 만든 이는 김기대.

알고 보니 김기대 작가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에 초대를 받았다. 문화예술공공수장고를 배경으로 세운 ‘바실리카’는 뼈대를 드러낸 중세의 교회와 같다. 바실리카는 로마 시대엔 권력의 정점에 있던 공공의 장소였다가, 기독교도의 세속적인 교회당으로 목적을 갈아입는다. 그러다 서양 건축의 핵심으로 승화한다. 그게 제주에 있다니…. 왜 김기대 작가는 ‘바실리카’를 대지에 얹혔을까.

“제주에 와서 접한 게 농업이었어요. 자연과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 농업이 있잖아요. 저는 규모 있는 농업은 아니지만 부업으로 여러 가지를 키우고 있어요. 취미 수준이긴 하지만요. 제주에 와서 야생의 자연 속에 풍덩 빠지는 느낌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 경계에 농업이 있는 거예요. 제주엔 또한 무속 신앙도 강하잖아요. 아울러 농업의 입장에서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은 강력한 존재거든요. 자연과 인간, 신앙이 연결되는 걸 하나의 공간에 표현하고 싶었죠.”

김기대 작가. 미디어제주
김기대 작가. ⓒ미디어제주
'바실리카'는 외부에 설치됐지만, 30분의 1로 축소를 시킨 '바실리카'를 제주현대미술관 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디어제주
'바실리카'는 외부에 설치됐지만, 30분의 1로 축소를 시킨 '바실리카'를 제주현대미술관 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에 정착한지 10년. 조천읍 와산리에 살면서 농사도 조금 짓는다. 농사를 지으며 삶도 짓는다. 아울러 생각도 짓고, ‘바실리카’와 같은 파빌리온도 짓는다. 어쩌면 그에겐 제주살이의 모든 게 ‘짓는 행위’이다. 그에겐 ‘바실리카’도 ‘세운 게’ 아니라 ‘지은 것’이다. ‘세우다’와 ‘짓다’는 다르다. ‘세우다’는 건축가의 의도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이라면, ‘짓다’는 목적의식을 담은 좀 더 창조적 행위를 말한다. 다양한 변화를 예고하고 만드는 행위가 ‘짓다’이며, 가장 예술적인 행위도 거기서 나온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폰티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예술은 재생할 수 없는 것이다. 복사한 것과 복구한 것은 예술이 아니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그림이 비록 아름답게 완성된 것일라 할지라도 그 가치는 라파엘로의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그림보다 못하다.”

예술은 완성된 형태에 있지 않음을 지오 폰티는 말하고 있다. 예술가마다 다소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폰티의 주장은 똑같은 것을 베껴서 여기저기 놔둘 수 있다면 예술로 부르기에 낯설다는 설명이다. 그러기에 예술에서 형태는 잠시 빌려올 뿐이다.

김기대 작가의 파빌리온인 ‘바실리카’도 재생할 수 없다. ‘바실리카’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바실리카’는 비를 맞고, 눈도 맞는다. 강한 바람을 대할 때도 있다. 어떤 날은 강한 햇볕에 노출되기도 한다. ‘바실리카’ 내부엔 어느 작은 농사꾼의 기대를 담은 농작물이 자란다. 자연에 모든 걸 내놓았기에, 특히 차가운 겨울과 싸우기에, ‘바실리카’의 농작물은 시시시때때 변한다. 간혹 겨울의 냉혹함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먼저 뜨는 농작물도 있다.

‘바실리카’는 뼈대를 드러내고 있지만, 아래쪽은 방풍망으로 둘렀다. 방풍망은 시선을 가려주는 베일과 같다. ‘바실리카’ 내부에 들어간 이들은 남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미로로 계획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바실리카’의 끝엔 고개를 숙여야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다.

“여기에 여러 가지를 던져넣으려 했어요. ‘바실리카’로 걸어 들어가면 사람들은 (방풍망 때문에) 안개처럼 사라져요. 누가 봐도 교회인데, ‘바실리카’ 안에 들어가면 농업에서 재배하는 식물이 있어요. 특히 교회에서는 가장 안쪽이 중요하잖아요. 신의 세계에 가까워지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바실리카’는 밖으로 나오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을 만나도록 했어요.”

‘바실리카’는 종교를 빌려 지은 공간으로, 인간이 자연과 가까이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게 만드는 구조물이다. ‘바실리카’ 끝에 있는 출구는 종교 건축에서 만나는 ‘앱스’다. 교회 건축의 앱스는 사제가 있는 제단이지만, ‘바실리카’는 세상 사람 누구나 제단을 향해 나가고, 자연으로 귀화하라고 말한다. 제주는 곧 자연이니까.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내건 주제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다. ‘바실리카’는 주제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모든 것은 자연과 연결돼 있다는 그 주제를 ‘바실리카’는 잘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바실리카’ 내부는 왜 미로일까.

“어찌 보면 ‘바실리카’ 내부는 중첩된 공간인데,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뭔가 모색을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어떤 걸 찾아갔으면 해요. 미로로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 거꾸로 나오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가 꿈꾸는 건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가 아닐까. 넓은 대지에서 ‘바실리카’의 좁은 미로, 다시 나오면 거대한 자연. 김기대 작가는 ‘바실리카’를 통해 그걸 느껴보라고 권한다.

가설 건축물인 파빌리온 형태로 건축된 '바실리카'. 노란 유채가 피는 땅 위에 세웠다. 미디어제주
가설 건축물인 파빌리온 형태로 건축된 '바실리카'. 노란 유채가 피는 땅 위에 세웠다. ⓒ미디어제주

파빌리온은 언젠가는 생을 다한다. 가설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바실리카’도 파빌리온이기에 생은 유한하다. ‘바실리카’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 마감일인 오는 2월 12일까지 목숨을 지킬 수 있지만, 이후론 장담하기 힘들다.

‘바실리카’는 코스모스가 한창 필 때 기획됐다. 설계도 오래 걸렸다. 재생할 수 없는 예술을 하려다 보니 그랬다. 그렇다고 설계대로 된 건 아니다. ‘바실리카’를 얹은 대지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는 땅이다. 그 뜰은 다시 봄을 맞으면 노란 꽃의 물결이 인다. 그때까지 ‘바실리카’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노란 밭에 둘러싸인 ‘바실리카’ 미로를 걷는 이가 있을 테고, 미로를 따라 걸으며 뭔가를 모색할 연인도 상상해본다. 출구로 나온 이들은 제주 대지의 노란 봄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상상이지만 현실이 되어도 좋으리라.

파빌리온이라고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파빌리온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금도 우뚝 서 있으나, 김기대 작가의 파빌리온인 ‘바실리카’도 그렇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건 아니다. 노란 유채꽃이 피는 그 시점까지만 있어 준다면 제3회 제주비엔날레를 더 잘 알려주는 일일테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