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제주 신화에 아버지·어머니의 생활이 담겨 있어요”
“제주 신화에 아버지·어머니의 생활이 담겨 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2.08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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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화를 문화소로 바라본 강순희 작가

최근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 펴내

기존 신화 연구 틀 과감히 깬 ‘도전’ 인상적

“신화 만든 사람들의 은유 이해할 수 있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사람에겐 ‘희망’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용기’다. 일찌감치 괴테가 그런 말을 했고, ‘길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에릭 호퍼도 ‘용기’를 내세웠다. 왜 용기일까? 희망만 있다면 꿈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강순희가 펴낸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는 호퍼가 말한 용기를 떠오르게 한다. 호퍼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그렇다.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는 신화연구의 기존 틀을 걷어낸 작품이다. 그의 용기는 자신에게 신화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힘을 줬고, 책을 읽는 이들은 신화에 대한 그동안의 궁금증도 풀게 됐다. 우리가 신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읽었는지를 상상해 본 이들이라면, 강순희의 책은 몰랐던 사실을 풀어주는 ‘유레카’나 다름없다. 다들 그러겠지만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인간과 신이 서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누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는 신화에 대한 오랜 궁금증을 지닌 이들에겐 그야말로 딱 맞다.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를 펴낸 강순희 작가. 미디어제주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를 펴낸 강순희 작가. ⓒ미디어제주

그를 만나러 갔다. 책은 400쪽을 넘는데, 완독을 하고 그를 만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책은 제주신화 가운데 일곱 가지 이야기를 문화소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일곱 이야기 중 내가 아는 건 ‘세경본풀이’다. 세경본풀이라도 읽고 가야 그와 대화가 될 듯싶었다.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를 쓴 강순희는 신화 전공자는 아니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국어교사로 신화를 들여다본다. 그에겐 신화의 중심 소재인 ‘신화소’도 중요하지만, 신화를 풀어줄 ‘문화소’가 더 중요했다. 신화에서 문화소를 끄집어내려면 신화를 해체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기존 학계에서 쉽게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다. 그래도 그는 해냈다. 이성적인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깊이 있게 공부하려고 2012년부터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어요.”

그의 제주신화에 대한 관심은 남들과는 달랐다. 신화를 만들었던 당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찾아내려 했다. 그러려면 신화를 해체해야 했다. 신화는 ‘신들의 신성한 이야기’로 바라보는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해석을 해보니까 지금 우리가 봤을 때는 일반적인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핵심 절차가 이야기에 녹아 있더군요. 세경본풀이대로만 하면 풍년이 든다더라, 실패하지 않는다더라,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심방하고 교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고, 이야기가 더 추가되면서 신화는 전승돼왔죠.”

그의 말마따나 신화엔 ‘중요한 핵심 절차’가 있다. 신화를 만든 이들은 그걸 은유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신화를 제대로 읽으려면 그들이 만든 은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강순희는 당대 사람들이 만든 ‘놀라운 은유’를 문화소라는 이름으로 잡아냈다. 책의 제목에도 담긴 문화소는 과연 뭘까.

“문화소는 문화질서를 나타내는 조각이죠. 문화소를 확신 내지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고 깨닫는 계기가 있었어요. 학생들과 신화 수업을 하면서 제가 ‘왕관’, ‘박쥐’, ‘손잡이’, ‘방패’ 등을 칠판에 썼어요. 글 쓰는 시간이었는데, 쓴 단어를 연결해 한 편의 신화를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수업시간. 그는 ‘코로나19’라는 말은 하지 않고, 단어만 칠판에 쓰고 아이들에게 각각의 단어를 연결 지어 신화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놀라운 건 아이들의 상상력이었다. 아이들은 ‘왕관’을 통해 왕관을 닮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만든 신화에 등장하는 왕관은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존재로 등장한다. 코로나19의 매개체인 박쥐는 신화에서 왕관의 진실을 알려주는 존재로 나온다.

“왕관은 코로나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이야기를 지어내더라고요. 수행평가를 하면서 제주 신화를 아이들이랑 읽어서인지 아이들은 영웅의 구조를 알더라고요. (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썼더군요. 이게 곧 은유잖아요. 아이들은 신화로 코로나 질서를 말하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 질서예요. 아이들이 만든 신화엔 코로나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그 안에 (코로나는) 숨어 있어요.”

이야기를 만들 때 필요한 건 이야기의 요소가 되는 ‘화소’다. 신화적 이야기는 ‘신화소’가 되는데, 강순희는 당시 문화 질서를 말하려는 의도가 신화소에 있다고 말한다. 다만 문화소는 신화소에 숨어 있기에, 찾아낼 수밖에 없다. 문화소를 끄집어내 조합하면 신화에서 말하는 숨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신화소가 ‘상상의 영역’에 있다면, 문화소는 ‘현실의 영역’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그걸 찾는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제주 신화의 숲-문화소로 걷다>라는 이름을 내건 책이다.

신화는 아주 오래 전에 살던 이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거기엔 수많은 신화소가 숨어 있는데, 당대 사람들은 알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강순희 작가는 오래 전 이야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책을 통해 알려준다. 세경본풀이만 하더라도 자청비를 농경신으로 받드는데,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자청비가 하늘에서 씨앗을 가져왔기에 농경신으로 모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문화소를 찾아내면 더 쉽게 세경본풀이를 읽게 된다. 독자들은 그의 책을 어떻게 바라볼까.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닌, 신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이제 궁금증이 풀려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신화를 잘 모르는 분들은 어렵다는 반응이죠.”

책에 등장하는 신화는 원천강본풀이, 삼두구미본, 눈미불돗당본풀이, 세경본풀이, 삼달리본향당본풀이, 고내리당본풀이, 지장본풀이 등이다. 죽음, 탄생, 생활, 병(病) 등의 영역을 담은 이야기다. 결국은 우리의 삶과 인연이 깊은 걸 찾아내고, 문화소로 읽는 작업을 해왔다.

제주신화는 무한하다. 책에 끄집어낸 이야기는 아주 일부에 해당한다. 제주신화를 들여다보는 강순희 작가에게 제주신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생활의 대본이죠. 세경본풀이를 예로 들면 이야기로만 읽어도 되게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잖아요. 거기엔 농경의 질서가 담겼어요. 어떻게 씨앗을 뿌려야 하고, 마소 관리는 어떻게 하고, 밭갈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활을 느꼈어요. 박물관에서 물체로 보여주는 (옛 사람들의) 생활도 있지만, 이야기 속에 백성들의 삶이 들어있다는 걸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요.”

강순희 작가는 '문화소'로 제주신화를 읽는 도전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강순희 작가는 '문화소'로 제주신화를 읽는 도전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신화는 변한다. 다르게 변형된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 요소가 가미되어 성장한다는 뜻이다. 강순희 작가는 이런 신화의 변화과정에 3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시간과 공간, 신앙민(주체)이다. 세 가지 요소가 신화에 영향을 미치고, 신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그는 본다.

강순희 작가는 50대다. 50대는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마지막 세대이다. 그는 책의 여는 글에서 “오십 대의 시간이 흘러가는 중이다. 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50대는 누군가로부터 신화를 들었고, 신화소에 담긴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다. 그가 50대이고, 그를 인터뷰이로 맞은 기자도 50대다. 여는 글에서 강조한 50대는 신화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이다. 아니, 신화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세대라는 뜻이다. 때문에 앞으로 강순희 작가의 행보도 궁금해진다.

“신화는 끊임없이 관심을 불러일으켜요. 저는 이런 방법론으로 계속하겠다는 일종의 도전장이죠. 신화를 해석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 쪽으로 써나갈 것 같아요.”

책은 강순희 작가를 인터뷰한 기자에게도 용기를 준다. ‘문전본풀이’의 문화소를 잘 찾아내 건축으로 읽고 싶다는 용기가 타오른다. 그랬더니 강순희 작가는 ‘성주무가’ 사설도 곁들여보란다. 문화소로 신화를 들여다본 강순희 작가의 과감한 도전 덕분에, 내겐 아주 즐거운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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