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일주일이면 돌아오신다더니 75년만에…” 80세 딸의 눈물
“일주일이면 돌아오신다더니 75년만에…” 80세 딸의 눈물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02.28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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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행방불명 희생자 3명 신원확인, 보고회 열려
유가족들, 희생자 유골함에 이름 붙이고 헌화, 오열
희생자 김칠규씨의 딸인 김정순씨가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희생자 김칠규씨의 딸인 김정순씨가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7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3구의 유골이 마침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와, 생전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모두 3명의 4.3희생자 행방불명인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 28일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신원확인 보고회를 갖고 3구의 시신을 유해 봉안관에 안치했다.

이번에 신원확인과 함께 유가족들을 찾은 희생자들은 군법회의 희생자 1명과 행방불명 희생자 2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4.3희생자 유가족 279명이 참여한 채혈분에 대한 제주국제공항 발굴 유해와 유전자 대조 결과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신원확인을 통해 이들은 75년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이들 중 한 명은 김칠규씨다. 1948년 34세 였던 김칠규씨는 당시 제주읍 이호리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하던 중 1948년 12월30일 집을 나섰고, 그 후 75년 동안 집으로 돌아가질 못했다. 집을 나선 김씨는 토벌대에 체포됐고, 그 후 행방불명됐다.

이후 수형인 명부에서 이름이 확인이 됐고, 1949년 6월28일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비행장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추정됐다. 김씨의 시신은 2008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지점에서 발굴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15년이 지나는 동안 김씨의 신원은 확인이 되지 않다 이번에야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희생자는 강창근씨다. 1948년 8월 어머니가 시내에 가서 집 짓는 재료를 사오라고 해서 심부름을 나선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그의 가족들은 강씨가 행방불명된지 몇달이 지나서야 주정공장에 잡혀가서 경찰서로 이송됐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지만 면회는 할 수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얼마 후 비행장에서 사람들이 총살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강씨의 생사를 확인하러 경찰서를 찾았지만, 시신을 확인하진 못했다. 강씨의 시신은 그 후 2008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지점에서 발견됐고, 그 후 역시 15년이 지난 이제서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마지막 희생자는 김두옥씨다. 김씨는 4.3 당시 안덕면 광평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던 중 1948년 11월 중순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소개되고, 집이 불타버리자 거주할 곳이 없어 인근 야산에서 숨어지냈다.

김씨는 1948년 12월경 일가족이 희생되고 나자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부친과 동생을 데리고 화순리로 내려와 살던 중 중산간에서 내려왔다는 신고에 잡혀가게 됐다. 1949년 7월 비행장에서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의 부친이 현장을 확인했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다.

김씨의 시신은 그로부터 59년이 흐른 2008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동측교란지점에서 발견됐으며, 그로부터 15년이 더 흘러서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이번 신원확인 보고회는 개회와 국민의례 이후 신원확인 경과보고의 순으로 진행됐다. 유전자 감식작업을 맡고 있는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이승덕 교수는 경과 보고를 통해 “유전자 감식과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 감식에 가족들의 참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분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행방불명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전자 검사로 신원이 확인되는 유해가 줄어들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신원확인을 하려 노력하지만 부족하다. 무엇보다 유가족의 참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유가족분들에게는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족들의 유해 운구가 진행됐고, 유해 운구 이후에는 유가족들이 유해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이 과정을 통해 4.3희생자들은 숨을 거둔지 75년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어진 유족 헌화 및 분향 과정에서는 많은 유족들이 오열을 하며 마침내 돌아온 가족들의 넋을 위로했다.

희생자 김칠규씨의 딸인 김정순씨는 80세가 돼서야 어린 시절 떠나간 아버지를 마주하고, 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을 붙여드렸다.

김정순씨는 “제가 먼저 집에 가 있으면 일주일 있다 오겠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돌아오셨다”며 “하지만 이제라도 아버지를 찾았다. 감사드린다. 아버지에게도 감사드리고, 너무 즐거워서 말이 안나온다”고 말했다.

희생자 강창근씨의 딸인 강술생(77)씨가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희생자 강창근씨의 딸인 강술생(77)씨가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희생자 강창근씨의 딸인 강술생(77)씨는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었다”며 “그래서 4.3행방불명인의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채혈 광고를 봐도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년에 유가족 채혈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생각지도 목하게 신원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잠도 잘 수 없었다. 70여년이 지나 처음으로 아버지라 불러보는데 한이 맺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오랜 세월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와서 너무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희생자 김두옥씨의 조카인 김용현씨도 “4.3희생자 행방불명자 신원확인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 많은 희생자 유족들이 유가족 채혈에 동참을 해서 한 분이라도 더 많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오랜 세월 어둠 속에 잠드셨던 4.3희생자 3분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린다”며 “희생자 영전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온 70여년의 세월이었다”며 “통한의 세월을 버텨오신 유족 한 분 한 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오 지사는 또 “4.3은 세계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위대하고 숭고한 여정”이라며 “제주도정은 4.3의 정신을 온 인류와 공유하면서 평화와 상생의 세계적인 상징으로 꽃을 피우고자 한다. 제주가 겪었던 참혹한 비극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 역시 “통한의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사랑하는 가족을 품에 안으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주도의회도 4.3의 정의롭고 완전한 해결을 이룰 때까지 모든 힘을 모아 나가겠다. 가족과 만난 세분이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편히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등에서 발굴된 4.3희생자 유해는 총 411구다. 이중 141구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270구의 유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해 유가족들에게 신원확인을 위한 채혈 등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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