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7:49 (목)
“학교 곳곳에 애착을 지닐 장소가 널려있어요”
“학교 곳곳에 애착을 지닐 장소가 널려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4.13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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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10> 온평초등학교

‘IB 인증학교’에 도전하며 공간도 변신

텐트 있는 교실도, 카페와 같은 교실도

학년 바뀌면 교실 풍경도 바뀌는 경험

숲과 어우러진 온평초. 미디어제주
숲과 어우러진 온평초.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왜가리가 날아든다. 연못에 먹을 게 있는가 보다. 다른 새들도 가득하다. 아침마다 새들이 내는 음향은, 이곳을 숲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온평초등학교의 풍경은 늘 이렇다. 그러고 보니 온평초는 숲 공간이 탁월하다.

온평초는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보이는 풍경이 부럽지 않다. 헐벗은 황무지에 떡갈나무를 심기 시작하며, 마을의 모습을 바꿔나간 그 이야기가 부럽지 않다. 숲이 넓게 펼쳐진 학교이기에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공진화의 모습을 온평초는 보여준다.

‘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기획에 온평초등학교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이처럼 학교의 멋진 숲 공간 때문이었다. 온평초는 숲 공간에 숲 놀이터도 갖추고 있고, 숲에 있는 특징적인 공간은 아이들이 지은 이름을 달았다. 초록쉼터, 삼각김밥휴게소, 거미집, 초록오두막, 레인보우밍…. 각각의 이름을 연결하면 동화가 만들어질 듯하다. 온평초의 숲은 ‘열운이 초록동산’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수십 종에 이르는 나무와 어우러진 학교의 초록동산은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벗이다.

숲을 가득 품에 안은 온평초. 여기는 공간과 장소가 잘 어우러져 있다. 공간이 더 빛을 발하려면 ‘장소’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공간과 장소는 같은 단어가 아니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학교라는 전체가 공간이라면, 어떤 학생이 특별하게 애착을 갖는 곳은 곧 ‘장소’가 된다. 학교는 그런 장소를 많이 만들어줄 때라야 좋은 풍경을 만든다. 온평초등학교가 그렇다. 학생들이 애착을 가질 장소가 널렸다. 그게 숲이라는 외부공간만 있는 건 아니다. 작은 학교이지만 학교 건물 곳곳에 그런 장소가 있다.

온평초는 곧 ‘IB 인증학교’에 도전한다. 지금은 인증학교를 향해가는 ‘IB 후보학교’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일까. 다른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학교의 비전이 있다. 온평초의 비전은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탐구하고 성장하는 세계시민을 기른다’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비전을 새겨넣었고, 거기에 교사들과 아이들이 손으로 꾹꾹 눌러 찍은 알록달록한 손가락 도장이 있다. 세계시민이 되겠다는 굳은 약속이다. 그런 약속은 온평초등학교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교실로 이어진다.

1학년 교실 풍경. ⓒ미디어제주
1학년 교실 풍경. ⓒ미디어제주
텐트가 있는 교실도 있고, 카페를 닮은 교실도 있다. ⓒ미디어제주
텐트가 있는 교실도 있고, 카페를 닮은 교실도 있다. ⓒ미디어제주

학교 교실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장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단순한 공간을 뛰어넘는 장소는, 학교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걸음마를 뗀 아이는 엄마의 품을 떠난다. 그런데 아이가 찾는 장소는 ‘엄마의 품’과 닮은 곳이다. 장롱 속, 탁자 밑, 그러다가 다시 엄마 품으로 아이는 온다. 구석진 곳이나 엄마 품속을 닮은 그런 장소를 아이들은 찾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도 그런 공간을 찾아 자신의 장소로 만드는 기술을 지녔다.

학년당 1개 학급의 작은 학교인 온평초등학교는 독특하게도 그런 공간이 많다. 아이들은 그런 공간에 끌린다. 1학년 공간은 박공 모양의 지붕을 지닌 2개의 집이 있다. 아이들에겐 수업을 겸한 놀이공간이 된다. 다른 교실엔 아주 작은 인디언 천막이 있다. 텐트가 있는 교실도 있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공간을 배운다. 4학년 교실은 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온평초는 1학년부터 6학년 교실의 풍경이 모두 다르다. 대개의 학교 공간은 학년이 달라도 공간은 변하지 않는데, 온평초 아이들은 매년 달라지는 교실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은 학년이 달라질 때마다 애착하는 장소를 갖게 된다.

또 있다. 언어를 배우는 교실인데, 영어만 능숙하게 다루는 교실이 아니다. 온평초 학생들은 세계시민이라는 구호에 맞게 타갈로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와 인연이 있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 학생들도 엄마의 언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교육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계단을 오르면 아늑한 공간이 있고, 계단 밑의 공간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로 꾸몄다. 그러고 보니, 곳곳이 좋아할 만한 장소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교실은 엄마의 품을 닮았다. ⓒ미디어제주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교실은 엄마의 품을 닮았다. ⓒ미디어제주

하나의 공간이 ‘내 것’이라고 부를 장소가 되는 순간을 아이들은 평생 가슴에 간직하게 된다. 온평초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IB 교육이랑 함께하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느끼는 장소성은 온평초 비전이 말하듯, 어느 순간 세계시민으로 활짝 열리는 꿈을 꾼다.

일반적인 학교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을 들라면 길게 뻗은 복도이며, 거기엔 고정된 게시판이 놓이게 마련이다. 온평초는 고정된 게시판 대신에 이동식 게시판을 곳곳에 놔두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다른 곳에 놓아서 공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IB 교육과정이 바꾼 학교의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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