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09 (금)
아, 불편해 불편해
아, 불편해 불편해
  • 정경임
  • 승인 2023.05.17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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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18화

제주올레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제주올레를 개척할 때 뒤엉켜 있는 덩굴을 헤쳐가며 길을 만들면서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고 한다.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부심과 함께 언뜻 회의감을 내비친 듯했다. 물론 이러한 감은 필자만이 느낀 것일 수 있다. 여하튼 제주올레는 이보다 더 유명해질 수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올레 걷기를 위해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필자 역시 올레길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래도 서귀포 시내권에 거주하기 때문에 6코스와 7코스, 8코스를 주로 걷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코스가 바뀐다. 그 이유는 초기에 개방되었던 사유지가 차츰 비공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돌개 코스를 걷다가 개인주택 소유자가 사유지라며 올레길을 막아놓았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중문해녀의집까지 걷다 보면 씨에스호텔을 지나는데, 이곳 역시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이곳은 모처럼 지인들이 방문했을 때 마치 내가 올레길을 만든 사람처럼 잘난 척하며 안내하던 코스였다. 잘 꾸며진 호텔 정원에 잠시 머물며 춘향이처럼 높다란 그네도 탔고, 기분 내어 호텔의 비싼 음료도 사 먹었다. 형편이 안 되어 씨에스호텔에 숙박한 적은 없지만 이곳을 걸으면서 “우리 언젠가는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해보자.”라고 다짐을 했다. 중문해녀의집에서 전복죽과 모둠회를 먹으러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호텔이기도 하니까.

켄싱턴리조트 출입제한 표지. 올레길이 막힌 구간. 정경임
켄싱턴리조트 출입제한 표지. 올레길이 막힌 구간. ⓒ정경임

 

# 너마저…

오랜만에 월평포구에서 대포포구까지 걸어야지, 맘먹고 바다풍경을 바라보며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월평포구를 지나자마자 필자가 알던 올레길이 없어졌다. 길을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길이 없어져버렸다. 새 길을 뚫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혹시 부근에 올레길로 들어가는 곳이 있을지 몰라 몇 걸음 더 옮겨봤는데, 길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대포포구에서 거꾸로 월평포구로 걷기로 했다. 예전에 풍림리조트였던 곳이 지금은 켄싱턴리조트로 이름이 바뀌고, 올레꾼들이 다리도 쉴 겸 식사도 할 겸 자주 들렀던 레스토랑이 애슐리퀸즈로 바뀌었다. 그 레스토랑에 가면 늘 먹었던 성게미역국은 더 이상 주문할 수 없게 되었다. 근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조트로 드나드는 출입구는 필자가 알기로만 5개였다. 정문과 그 아래 악근천을 따라 걷는 소로, 큰 돌이 놓여 있는 또 다른 악근천 길, 리조트 뒤쪽으로 들어가 포토존이 있던 뒷길, 그리고 서건도에서 리조트로 이어지는 올레길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정문만 열려 있고, 나머지 4개는 불통이었다. 3개는 공사 중 또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고, 서건도로 향하는 올레길은 아예 폐쇄해 버렸다.

제주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예쁜 것들. 더덕잎과 꿩알. ⓒ정경임
제주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예쁜 것들. 더덕잎과 꿩알. ⓒ정경임


# 고사리 들판에 버려진 쓰레기

2월 말부터 들판에는 달래들이 쭉쭉 올라오고, 3월 중순부터는 고사리들이 고개를 내민다. 올해는 운 좋게도 꿩알을 만나기도 했다. 고사리를 찾다가 누가 들판에 바구니도 버리고 간 거야, 라며 눈살을 찌푸리다가 가까이 가보니 바구니처럼 생긴 둥지가 있었다. 그 안에 작은 알들이 10여 개 있었다. 바로 네이버렌즈로 검색을 해보니 꿩알이란다. 세상에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눈에 띌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 억새 사이에 둥지를 만들어놓았으니, 사람손을 탈까 걱정이 컸다. 둥지 위에 얹어놓은 풀들 위에 몇 줄기 억새를 더 놓으며 발길을 옮겼다. 아, 이제부터 불편함이 발동을 걸었다. 몇 걸음에 한 번씩 초코파이 비닐이며 맥주캔이 아무렇게나 들판에 버려져 있었다. 필자가 이 들판을 다닌 게 10여 년이 되었는데, 올해처럼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제주에서는 플로깅이 축제처럼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보물 같은 들판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다니, 정말 화가 난다. 들판을 쏘다니다 보면 허기가 지고 목도 축여야 하지만 빈 껍질과 캔 등을 왜 버리고 가는지, 쓰레기를 볼 때마다 불편해진다.

들판에 버려진 쓰레기들. 제주의 자연에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 ⓒ정경임
들판에 버려진 쓰레기들. 제주의 자연에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 ⓒ정경임

 

# 제주의 공간과 자연은 열려 있어야 한다

환경과 건강을 챙기는 플로깅은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고사리를 채취하러 와서 들판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은 나쁘다. 사람은 손이 있어 쓰레기를 주울 수 있지만, 들판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캔에 발이 끼거나 비닐봉지를 삼켜 목에 걸리면 어떡하나. 한편 사유지라서 올레길을 막는 개인이나 업체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려 해도 그들의 조치는 상업적이다. 왜냐하면 초창기 올레길 사업에 흔쾌히 길을 내어준 것은 홍보의 일환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의 자연은 그들이 일궈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제주의 자연을 활용해 이득을 취하며 폐쇄적인 공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제주의 공간과 자연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으면 최소한 공간 제약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제주의 공간이 막힘 없이 개방되기를 바라며, 제주의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 투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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