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8:08 (화)
75년 전 산으로 간 이들이 노로오름에 남긴 삶의 흔적들
75년 전 산으로 간 이들이 노로오름에 남긴 삶의 흔적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5.2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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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주말, 애월읍 노로오름 일대 ‘항쟁의 길’을 걷다
초소‧거주지 흔적, 실탄‧탄피 등 발견 “유적지로 보전‧관리돼야”
지난 28일, 4.3 당시 무장대와 애월 등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머물렀던 노로오름을 찾아 빗 속 숲길을 걷고 있는 4.3 기행팀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28일, 4.3 당시 무장대와 애월 등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머물렀던 노로오름을 찾아 빗 속 숲길을 걷고 있는 4.3 기행팀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5월의 마지막 주말. 부처님 오신 날 연휴와 대체휴일이 이어지는 일요일 아침, 작은 배낭 하나만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집결 장소는 바리메오름 주차장. 3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조금 일찍 출발했지만 평화로 입구에서부터 차가 밀리더니 아뿔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늦지 않게 집결지에 도착. 비 때문에 일행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SUV 차량에 갈아타고 곧바로 이동, 임도가 이어지는 오름 중턱까지 30분 가량 더 들어간 후에야 차에서 내렸다.

목적지는 노로오름. 4.3 당시 애월 등 중산간 마을에 있던 주민들과 무장대가 토벌대를 피해 숨어든 곳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4.3통일의길, 마중물이 6년째 4.3유적지 조사를 통해 찾아낸 무장대와 토벌대의 전투 흔적, 무장대와 주민들의 오랫동안 머물렀던 흔적이 확인된 장소이기도 했다.

빗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기 전, 6년째 진행해온 조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있는 배기철 조사단장은 “1894년 갑오년에 있었던 동학농민전쟁은 농민군, 1980년 5월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광주시민들은 시민군인데, 이 곳 노로오름까지 와서 길게는 열 번까지 혹한의 겨울을 버텨냈던 이들은 여전히 산군, 무장대, 유격대, 심지어 폭도로 불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노로오름 유적지 조사 작업이 4.3에 대한 이름 찾기, 즉 정명(正名)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진심이 담긴 배 단장의 묵직한 메시지였다.

다수 희생자가 발생한 학살터, 토벌대의 소개령으로 마을이 불에 타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마을 등 우울한 장소들 뿐만 아니라 이번 4.3 기행 장소인 노로오름 같은 곳도 4.3유적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숲길을 따라 걷다가 조사팀 일행이 미리 표식을 남겨둔 곳에서 오른쪽으로 다소 경사진 길을 오르다보니 오름 능선 부근에 경계초소인 듯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조사단 일행 중 한 명이 “노로오름 능선을 따라서 비슷한 모습의 초소를 몇 군데 더 볼 수 있다”면서 “초소 부근에서 탄피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멀리서 토벌대의 움직임이 포착될 경우 미리 경계사격을 하면서 분화구 안에 있는 다른 대원들과 주민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로오름 분화구에서는 탄피 뿐만 아니라 탄두가 온전히 그대로 있는 실탄, 탄창 클립이 잇따라 발견됐다.

실제로 이날 4.3 기행에 참가한 일행들이 직접 호미 등 장비를 들고 분화구 내 바닥을 조심스럽게 파내기 시작하자마자 MI 소총 실탄과 탄피가 잇따라 발견됐다. 탄피 뒷면에서는 미국의 병기창에서 생산된 탄환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확인되기도 했다.

노로오름 분화구에서 발견된 MI소총 실탄. /사진=미디어제주
노로오름 분화구에서 발견된 MI소총 실탄. /사진=미디어제주
노로오름 분화구 사면의 암반을 활용한 집터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노로오름 분화구 사면의 암반을 활용한 집터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분화구 사면 암반이 있는 곳에서는 임시 거처로 활용된 흔적이 고스란히 확인됐다. 깨진 항아리와 야트막하게 돌담을 쌓아놓은 모습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5월의 마지막 주말, 비를 맞으며 앞서 간 이들의 길을 함께 걸었던 이날 빗속에서의 다섯 시간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길, 항쟁의 길이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다음은 조사단의 일원이기도 한 강동수 전 전교조 제주지부장이 이날 노로오름 능선에 있는 경계초소에서 제를 올리면서 4.3 영령들에게 고(告)한 내용이다.

“뭔가 나올거 같은디, 뭔가 보일거 같은디 그냥 지나치고 경 햄신게 마씀. 이 곳에 대한 증언자료에 있는 장태코 일대를 아무리 뒤져도 아직까지 찾지 못해수다. 미안허우다. 어딘가 있을 거 같은디, 누군가가 알고 있을 거 같은디 아직까지 찾지 못햄수다. 이젠 나이 들엄젠 많이 소홀해지는 느낌도 이수다. 하반기에는 국공조사 들어가보카 허연 도청하고 조율중에 이수다.

여하튼간에 삼춘들이 원했던 세상, 이 땅을 지키고자 했던 삼춘들의 고마움, 제주도민들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그 정신, 끝까지 이어가게 헐거우다.

조만간에 통일된 조국 올테주양. 걱정허지 마십서. 이 비 오는디 여기까지 찾아오는 벗들이 이수다. 이 힘이면 기필코 통일된 조국, 삼춘들이 원했던 민중민주주의 세상 꼭 올 거우다. 오늘은 이걸로 고(告)햄수다”

노로오름 일대 유적지 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강동수 전 전교조 제주지부장이 4.3 영령들 앞에 제를 지내면서 무릎을 꿇고 고(告)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노로오름 일대 유적지 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강동수 전 전교조 제주지부장이 4.3 영령들 앞에 제를 지내면서 무릎을 꿇고 고(告)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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