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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 구조와 선배 “선배는 선배다워야 선배”
상명하복 구조와 선배 “선배는 선배다워야 선배”
  • 허지훈
  • 승인 2024.04.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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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세상] <4>
오재원 수면제 대리 처방으로 본 스포츠계 고질적 병폐

수직적 구조를 나타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랜 세월 관통해온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상명하복(上命下服)’이다. 상관이 명령하면 하관은 복종한다는 뜻으로 직장이나 동료 선-후배 관계와 사제 관계 등 각기 다른 관계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으며, 상급자의 불합리한 명령을 하급자가 마지못해 따를 때 더 고착화된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잔존악습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이 용어는 권력을 지배하고 때리기 좋은 구조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잔존악습 중 하나다. 오히려 상명하복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화되는 현실이다. 상하관계가 강하기로 악명높은 스포츠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후배 관계를 몸으로 겪고 답습하면서 후배를 향한 선배의 폭언과 구타, 갈굼 등은 이미 한국 스포츠계의 오랜 병폐이며, ‘썩은 살’로 자리한 지 오래다. 불합리를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 선수 생명이 중단되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어서다. 최근 야구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오재원(39)의 마약 투약에 따른 구속기소도 상명하복 체계에서 나온 스포츠계의 악습이 결정적인 발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린 시절부터 클럽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해외와 달리 대한민국은 운동선수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시작점이 독특하다. 이는 국가적 정책과도 맞닿아있다. 다름 아닌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 시절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엘리트 체육 육성이었던 것. 이에 학교 운동부 창단 러시가 1960~70년대를 기점으로 거세게 불어닥쳤고, 엘리트 체육 육성에 따른 선수 발굴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점이 발생한다. 바로 학교 운동부에 입문해야 정식적인 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엘리트 체육 자체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집중된 특성을 띠고 있는 데다 군사정권 하에 구타와 폭언을 비롯한 인권 침해 등이 만연했다. 이런 특성은 답습되고 운동선수들은 온몸으로 감내하며 받아내야 했다. 선-후배끼리 모여 지내는 합숙 문화는 상명하복 체계를 통한 선배의 월권을 행사하기에 딱 좋은 구조였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 재력은 물론, 팀내 비중이나 롤 등에 의해 내부 서열이 갈리는 불평등도 그간 학교 운동부 운영의 악습과 엘리트 체육의 폐허를 부채질했다. 그러다 보니 선배의 말은 곧 법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확립됐고, 명령 불복종에 따른 후폭풍의 두려움과 불안감 등에 의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경우들 또한 허다했다. 좁디좁은 운동판에 합리적 의사결정이 받쳐주는 것은 당연히 만무했다.

야구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의 운동 시작 연령은 저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초등학교 3~5학년이 많다.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온갖 고독함과 어려움 등을 무릅쓰고 직업 선수로서 부와 명예를 모두 쟁취하겠다는 일념 하에 운동 세계로 뛰어든다. 학생 신분에서 학습권이 아닌 운동선수로서 운동권이 우선인 운동부의 세계에 학생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은 먼 나라 이야기에 가깝고, 상하관계 형성에 따른 상명하복 체계와 위계질서 등의 학습을 토대로 어린 시절부터 연신 비지땀을 쏟아낸다. 교실이라는 터전에서 무리지어 생활을 하는 일반 학생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필드가 곧 꿈과 희망을 촉진하는 터전이었다. 학창시절 각종 대회에서 활약상은 곧 상급 학교 진학이나 취업 전선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한 취업문 통과는 곧 직업 선수의 동기부여 확립에 날개를 달아준다. 선배의 불합리한 명령이나 폭언 등의 화살이 날아와도 후배가 쉽사리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다.

그렇게 온갖 피눈물을 감내하고 취업문 통과를 이뤘어도 상명하복의 문화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굳건하다. 학년이 구분되는 학생 시절과 달리 기존 선배들과 똑같은 직업 선수로서 신분을 얻지만, 그 안에서 커리어와 지위 등의 차이는 또 다른 불합리함, 부조리 등을 부른다. 여기서 오재원의 마약 투약에 따른 구속기소와 후배 8명에 수면제 대리 처방 강요 등의 추가 혐의는 상명하복의 문화의 완결판에 가깝다. 2022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오재원이 현역 말년에 주로 2군에서 활약한다. 그가 후배들과 2군 합숙 생활을 하면서 수면제 대리 처방 강요와 협박 등을 서슴지 않은 것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야구계와 사회 전체에 큰 충격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거기에 보도된 8명이 2진급 선수라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나이가 많다고 다 선배가 아니라는 사회적 메시지도 분명하게 내포했다. 매스컴 보도 과정에 후배들을 향한 협박 메시지 공개는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한 월권 행세의 표본과도 같고, 2군 합숙 생활을 후배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일탈을 후배들에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함은 가히 엽기적이다. 그간 거친 언행과 부적절한 멘트 등으로 쌓인 부정적 이미지를 만천하에 전파시킨 격이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2007년 두산에 입단해 16년간 ‘원 클럽 맨’으로 활약한 오재원과 달리 보도된 8명이 2진급 선수라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수위는 더 거셀 수밖에 없다. 2군 선수들은 오로지 1군 무대 진입을 위해 가지고 있는 영혼을 다 갈아넣는다. 고된 합숙 생활에도 어린 시절부터 바라본 1군 무대 진입을 통한 로망 실현이 이들의 스파이크 끈을 더욱 동여매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시즌이 끝나는 10월 혹은 그 이전 방출이라는 칼바람을 맞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야구에 대한 애절함이 더 진하게 물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오재원의 범법 행위와 그에 따른 수면제 대리 처방으로 저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탑이 무너질 위기에 내몰렸고, 1군 진입을 통한 날갯짓 실현도 공염불이 될 여지가 커졌다. 선배의 협박과 폭언 등이 존재했다고 한들 불합리함과 부조리함 등을 끝내 넘어서지 못한 자체가 안타깝기 짝이 없으며, 상명하복 체계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부분에 있어서도 더 그렇다. 가뜩이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동향에 추후 피의자 신분 전환 가능성 등까지 감안하면 모든 피해를 다 떠안는 것이다.

비단 오재원 사건이 야구, 즉 스포츠계에만 문제로 대두될까. 단호하게 “NO”다. 이미 한국 사회는 상명하복 문화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 등이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진 상황이다. 선배들이 직급이나 신분, 지위 등의 우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협박하고 폭언하는 행위는 온-오프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뜩이나 직장 내 괴롭힘과 왕따 이슈를 더 부채질하게 되고, 심각한 우울증과 수면장애 등 개인의 심신 건강에도 크나큰 문제가 되고 있다. 동성과 이성 할 것 없이 신분 차별을 심화시키는 모습은 개인이나 조직 발전에도 장애물이다. 어처구니없는 명령 등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하는 후배들의 닭똥같은 눈물과 피는 운동부 못지않게 대한민국 전반적인 조직 문화나 분위기 등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수동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배들의 안하무인, 독불장군 같은 행동을 두고 ‘꼰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위, 나이, 신분 등의 우위가 존중과 연결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과거 대중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SBS TV 코미디 프로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를 기억하는가. ‘웃찾사’ 엔딩을 장식하는 ‘형님뉴스’ 코너에서 ‘길용이(개그맨 김재우)’의 멘트 개사는 상명하복 체계에서 오는 선배들의 존재에 경종을 울린다. ‘선배가 선배다워야 선배지’. 오재원 사건을 통해 선배의 정의를 새롭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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