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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호소 “만화와 같은 숲 공간이 없어진다니”
아이들의 호소 “만화와 같은 숲 공간이 없어진다니”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5.1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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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만난 아이들

도로 개설 문제점 알리려 행사 기획

“환경영향평가 부실한 것 알 수 있어”

“추억 담긴 곳 사라진다니 너무 슬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지구를 가꾸고 돌보려는 생각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오히려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12일 마련된 행사를 보면 그렇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이하 서녹사)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의 커다란 잔디광장에서 마련한 이날 행사는 사실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기획해서 마련됐다. 기자회견 발표 등의 큰 자리는 어른들이 준비해줬으나, 세부 내용은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왔다. 아이들은 이날 공연도 하고, 놀이도 하며 도시우회도로 개설의 문제점을 알렸다. 그런 자리를 기획한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서녹사가 활동을 시작한 건 지난 2019년 4월이다. 벌써 활동한 지 5년을 넘겼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아이들은 5년을 지켜봤다.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환경을 생각해보기도,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사고를 키웠다. 고교 2년생인 정근효 학생은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12일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의 멀구슬나무 아래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아이들. 미디어제주
12일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의 멀구슬나무 아래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아이들. ⓒ미디어제주

“환경영향평가부터 잘못됐어요. 4km가 넘는 우회도로를 개설하려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려고 도로 구간을 3개로 쪼갰단 말이에요. 꼼수입니다.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시민들이 멸종위기종 2급인 맹꽁이를 찾아냈어요.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한 걸 알 수 있어요.”

정근효 학생은 어른들이 하려는 행동이 미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만화같은 공간’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기자를 향해 말했다. 만화같은 공간은 뭘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신비한 공간이죠. 솔숲에 들어가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잔디광장을 관통하는 6차선 도로가 만들어지면 이 일대를 수십 년간 지켜온 소나무 숲도 사라진다. 아이들에겐 신비한 공간인데, 사라질 것에 대한 우려를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미 건설된 구간 이외엔 도로 개설을 중단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공간을 공원이나 숲으로 꾸몄으면 좋겠어요. 1900명의 서명을 받아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냈음에도 도의원들은 도로를 내자고 해요. 목적과 명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다. 행사를 준비한 또 다른 아이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 임지인 학생이다. 도시우회도로 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졌을 때 기자와 마주한 기억이 있다. 그새 훌쩍 커버렸다. 지인 학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의 녹지공간을 사랑한다.

“먼나무를 너무 좋아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도서관에 올 때마다 먼나무를 만났어요. 소나무 숲에서 엄마랑 도시락을 꺼내서 먹고, 책을 읽은 추억이 엄청 많아요. 추억이 담긴 곳이 사라진다니 너무 슬퍼요.”

먼나무는 서귀포학생문화원 바로 앞에 있는 나무를 말한다. 6차선 도로가 나면 사라지게 된다. 지인 학생은 먼나무에 오르곤 했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러나 개발은 그런 기억을 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서명 운동도 했고 제가 직접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어요. 막으려고 해봤지만 건설이 시작됐어요. 그렇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개발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기획을 했어요. 제주도에 도심 녹지가 거의 없는데, 이런 녹지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 녹지 공간을 표현한 아이들.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 녹지 공간을 표현한 아이들. ⓒ미디어제주

아이들에겐 거대한 공룡과 싸우는 일이었다. 막으려고 해봤으나 아이들의 앞에는 대답 없는 행정과 개발 이익을 도와주는 도의원들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지인 학생은 더 이상 도로 개설이 되지 않길 바란다. 만약 공사가 계속된다면 차선이라도 줄여서 녹지공간을 조금만이라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초등학생들도 이날 행사에 함께 참가했다. 초등학교 5학년 임최바다와 3학년 임최하늘은 자매다. 둘의 생각도 궁금했다. 바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추억을 뺏지 말았으면 해요. 도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로가 생기더라도 최대한 자연이나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늘이는 도로 개설로 사라지는 공간이 안타깝다며, 나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무야 그동안 상쾌한 공기를 주어서 고마웠고, 너의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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