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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닥친 사라호 태풍을 어떻게 잊나요”
“추석 명절 닥친 사라호 태풍을 어떻게 잊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5.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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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연구센터,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 발간

제주 사람들은 태풍에 대한 쓰디쓴 기억이 많다. 특히 이 태풍을 빼놓지 못한다. 바로 ‘사라’라는 이름이 붙은 태풍이다. 사라호는 1959년 추석 명절에 제주를 휩쓸었다. 때문인지, 당대를 살던 사람의 뇌리엔 사라호가 응어리처럼 박혀 있다.

제주학연구센터가 제주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 있던 사라호의 흔적을 찾아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이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제주학총서 72호로 나왔다.

사라호는 순간 최대풍속 33.5㎧로 제주 북동쪽으로 북상, 239㎜가량의 폭우를 전역에 쏟아냈다. 제주에 머문 시간은 12시간 정도였다. 수많은 가옥이 무너지고, 적지 않은 인명이 격류에 휩쓸리는 등 제주에 많은 사상자와 피해액을 남겼다.

사라호는 제주에서만도 사상자 137명, 가옥 피해 1만4721동, 선박 피해 333척 등 당시 32억 5,276만 5,345환(531억 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기록했다. 피해 복구를 위해 국가와 도는 가옥과 어선 복구, 식량 확보 등 복구 대책 마련하고, 민생 안정을 위한 방안을 내었다. 전국적으로는 의연금 모금 운동을 벌여 당시 85만 환이라는 재해 복구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은 고(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사라호 피해 상황 사진 17점을 비롯해 신문자료, 구술자료 등을 소개하고 있다. 모두 4부로 되어 있다. 1부 <왜 지금, 우리는 ‘사라’호 태풍인가>, 2부 <사진으로 보는 ‘사라’호 태풍-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기록들>, 3부 <활자에 새긴 ‘사라’호>, 4부 <입말로 풀어낸 ‘사라’호> 등이다.

1부 <왜 지금, 우리는 ‘사라’호 태풍인가>는 ‘사라’호 태풍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이 수집된 경로부터 태풍 발생, 피해 상황, 복구 대책, 수재의연금과 구호 활동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2부 <사진으로 보는 ‘사라’호 태풍-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기록들>은 설명을 곁들인 ‘사라’호 태풍 화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물바다를 이룬 산지천과 동문천 일대, 파손된 어선끼리 뒤엉킨 제주항, 제주 시가지에서 무너져 내린 전주와 간판, 그리고 뿌리째 꺾인 가로수, 뼈대만 남은 주정공장 창고 등이 사진에 보인다. 사진 대부분은 도민 사회에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다.

홍성흠(1928~2022) 선생은 제주시 이도리 출신으로 1959년 국도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제주지부 주재기자 등 1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1961년 발생한 ‘경주호 침몰사고’ 취재로 언론취재 특종상을 받기도 했다.

3부 <활자에 새긴 ‘사라’호>는 ‘사라’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신문자료를 소개한 면이다. 여기서는 《제주신보》(1959~1960년)의 기사 가운데 ‘사라’호 태풍에 관한 기사 31개를 발췌했다.

4부 <입말로 풀어낸 ‘사라’호>는 ‘사라’호를 겪었던 27명의 어르신을 만나 채록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발간과 관련해 연구 책임을 맡은 현혜림 전문연구원은 “이 책을 통해 65년이 흐른 ‘사라’호를 옛 추억거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사라’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17점의 사진이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어 이 울림이 도민 사회에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은 제주학연구센터 누리집에서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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