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6-21 17:53 (금)
“대물림받던 제주어를 풍성한 시집으로 되살려”
“대물림받던 제주어를 풍성한 시집으로 되살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6.10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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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어를 말하는 김신자 시인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펴내

남의 손 빌리지 않은 자전적 서평 눈길

제목 곳곳에 예쁜 제주어 가득 표현해

김신자 시인. 미디어제주
김신자 시인.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누구든 나만의 고향이 있다. 어떤 때는 그리움 가득한 ‘노스텔지어’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슬픔에 겨운 포르투갈의 ‘파두’로도 들린다. 시인 김신자에겐 고향 바닷가가 그랬고, 그가 말하는 시어는 가슴 깊이 간직한 어머니로 환생해 나온다. 그의 첫 시집이 <당산봉 꽃몸살>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김신자, 그는 제주어로 말하는 시인이다. 유선으로 그를 만난다면 맛깔난 그의 제주어에 속고 만다. 농익은 제주어는 80대의 제주 여성이겠거니 하곤 하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면 깜짝 놀란다. 겨우 50대다.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어떻게 50대가 80대의 제주어를 마음껏 풀어낼까?

“학교에 가면 자연스레 사투리가 나왔죠. 아이들은 제게 ‘너 진짜 할망닮다’고 했어요. 주변에선 그런 말 쓰지 말라고도 했고요.”

사실 그랬다. 1970년대 학교를 다닌 이들은 제주어를 기피했다. 아니, 기피하도록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써서는 안 되는 언어가 제주어였다. 무조건 학교생활의 기준은 서울 사람들이 쓰는 표준어여야 했다. 김신자는 그런 틈에 끼어 사투리만 쓰던 해녀의 딸이었다. 아버지 55세 때 얻은 귀한 딸은 나이 든 부모 세대로부터 어른들이 쓰던 언어를 대물림받을 수밖에 없었다. ‘할망닮다’는 숙명이었다. 과거는 그랬으나 현재는 그에게 다른 ‘사명’을 안겼다. 제주어를 말하는 시인이라는 타이틀이다. 제주어가 이처럼 중요할지 어느 누가 알았을까.

“(친구들이) 결혼하고 나서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자녀를 둔 친구들이 전화를 주는 겁니다. (제주어를 표현하는 숙제가 있는데) 제주어로 뭐라고 하느냐면서요. 제주어사전이 서점에 나올 때도 아니었고, 오로지 입말로 제주어를 표현하던 때였어요.”

김신자 시인은 친구들이 자신을 대하던 그때의 풍경을 ‘물밀듯이’라고 표현한다. 인기만점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들었던 말을 기억해서 들려줬죠. 제주어말하기 대회도 열리기 시작했는데, 대본도 쓰고 연출을 맡기도 했어요. 지금으로부터 한 25년 됐네요. 그러다 더 공부를 하려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현대시로 논문을 쓰려했더니, 제주어로 해보라더군요.”

제주어로 표현하는 일. 그에게 그게 가능한 이유는 있다. 그는 실생활에서 제주어를 쓰는 몇 안 되는 젊은이에 들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제주어를 문학으로 연결하니 너무 좋죠.”

제주어는 그에게 날개를 선물했다. 얼마 전에는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만1000원)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내용보다는 제목에 제주어를 담뿍 담았다. 시집의 첫 시는 ‘옴막, 옴막해불라’인데, ‘옴막’은 음식 따위를 입속에 넣는 행위를 이른다. 예전엔 아이들에게 끼니를 제대로 먹이려고 암죽을 주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시로 만들어진 셈이다.

“제주어를 연구하다 보니 너무 예쁜, 너무 곱닥한 제주어가 많아요. 메모를 해 두었다가 시로 표현하기도 하죠.”

열이 갑자기 오를 때 쓰는 제주어로 ‘왈락’이 있다. ‘왈락’에 감정이 더해지면 극강의 울음이 된다. 가슴이 미어질 때, 온몸에서 슬픔을 말할 때, ‘왈락’을 대체할 표준어는 있을까 싶다.

어머니는 갈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 우리는 5개월 길면 일 년을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 안은 건조했다 (중략) 첫눈도 안 왔는데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했으니 모두들 목구멍에다 잔뜩 울음을 올려놓고도 내뱉지는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자식들을 위해 애써 태연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왈락 덥다며 창문을 열어 놓는데, 그만 그 틈새로

싸락눈, 눈물 반 섞여 왈락하게 내렸다

- 시 ‘왈락’ 중에서

시인들은 자신이 쓴 시집을 써줄 평론가를 찾는다. 시인 김신자는 이번 시집에서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 시집을 평가하는 ‘자전적 시론’을 썼다.

“제가 시를 쓰고 거기에 해설을 쓰려니 고민이 많았어요.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출판사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생님께 시평을 맡긴다고 했으나, 제가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다른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죠.”

남이 하지 않는 길을 걷는 시인. 그는 일찌감치 그의 시에 대한 해설을 해오고 있다. 4년간 <뉴제주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시와 그림으로 보는 제주어’가 바로 그의 모습이다.

그나저나 이번 시조집의 제목이 궁금하다. 시의 제목을 시집의 제목으로 정하곤 하는데, 그는 시의 내용을 제목으로 삼았다. 시집의 제목이 된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은 시 ‘울럿이’에 나온다. ‘울럿이’는 우두커니의 제주어인데, 시인은 시를 쓰며 옛일을 회상한다. 그리운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물질하던 바다도 있다. 어릴 때 바닷가에서 놀던 시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하지만 과거가 내가 사는 이곳에 되돌아올 수 없는 법. 그렇다. 추억은 추억이다. 시인의 말처럼 봄비에 썼던 문장이 다시 돌아올 리는 없다. 그래서 그는 현재를 멋있게 산다. 과거에 갇히지 않고, 더 멋있게 제주어를 복원시키며 현재화하는, 지금의 김신자 시인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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