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12 17:58 (금)
꾸준함의 가치, 그리고 대기만성
꾸준함의 가치, 그리고 대기만성
  • 허지훈
  • 승인 2024.06.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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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세상] <11>

프로야구 KIA 최형우-국민 MC 유재석
오랜 무명기 딛고 최고 반열에 ‘우뚝’

흔히 늦게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씨앗을 뿌리면서 물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줄 때 잎과 줄기가 잘 자란다. 그렇게 해서 꽃 모양의 틀이 잡히고, 꽃 외관의 화려함 또한 더해진다. 잘 가꿔진 꽃에 대한 상품 가치 상승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꽃의 개화 과정과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가 묘하게 흡사하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꾸준함에 있다. 이는 현대 사회를 사는 개인이나 분야 모두에 해당된다. 주어진 위치에서 본연의 역량을 꾸준하게 펼쳐 보이면서 지속적인 노력과 열정, 직업 윤리 실현 등을 가미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개인 커리어와 역량의 가치는 더 치솟는다. 어느 한 분야에서 롱런의 지표가 꾸준함에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하다. 지나치리만치 속도에만 치우쳐있는 현대 사회에서 꾸준함의 가치는 단순히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프로야구 KIA타이거즈 해결사 최형우(41)와 국민MC 유재석(52)의 스토리는 대기만성형의 표본이다. ‘정글의 세계’로 칭송되는 스포츠계와 연예계의 살벌한 구조 속에서도 빼어난 워크에식과 남다른 열정, 지속적인 노력 등을 기반으로 각종 커리어를 숱하게 갈아치우며 분야 대표 ‘리빙 레전드’로 군림하고 있다. 젊은 날 인고의 시간을 딛고 어느덧 분야 탑레벨로 올라선 이들의 노력과 열정, 내공, 경험치 등은 크나큰 울림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이들은 오랜 세월 무명기를 거쳤다는 공통분모가 뚜렷하게 존재한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2002년 삼성에 2차 전체 48순위로 입단한 최형우는 고교시절부터 타격 능력은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비의 취약성이라는 크나큰 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체력 소모가 상당히 큰 포수 포지션에서 수비의 취약성은, 활용도에 의문부호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같은 포지션에 있던 진갑용(現 KIA타이거즈 수석코치)의 아우라도 쉽게 넘을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최형우는 프로 입단 첫해부터 2군 신세를 면치 못했고, 2005년까지 1군 무대 출전은 단 6경기에 불과했다. 야심차게 뛰어든 프로 무대의 벽은 20대 초반 청춘에게 너무나 크고 높았고, 타 포지션과 달리 경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포수 포지션에서 적은 출전 경력은 그의 가치 창출에 마이너스와도 같았다. 틀이 견고한 프로의 생리에 1군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적은 선수에 큰 기대치를 건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고, 급기야 2005년 종료 직후 방출의 칼바람을 피하기 어려웠다.

용문고(서울) 2학년이던 1989년 KBS '비바! 청춘! 출연을 계기로 희극인의 꿈을 키워온 유재석도 크게 다를 바 없다. KBS 방송 출연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1991년 5월 KBS 대학개그제에 주저 없이 응시했고, 당시 만 18세의 나이(1972년 8월 14일 출생)로 KBS 공채 개그맨 7기에 합격하며 한국 최연소 개그맨으로 이름을 올렸다. 유재석 그 이전 개그맨 공채 합격자들의 나이대가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대단히 센세이션했다. 그러나 가득한 배고픔에 기수 문화가 악명높은 개그맨 세계는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방송인에게 치명적인 카메라 울렁증과 함께 개그 감각의 무색무취는 개그맨으로서 컬러 구축에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했고, 선배들의 굳건한 위세에 프로그램 출연 비중도 현저히 적었다. 급기야 서울예대 1년 선배이자 공채 동기인 남희석을 비롯,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주가를 높이는 모습을 보인 것과도 사뭇 대조된다. 그렇게 1990년대 후반까지 방송가에서 유재석의 입지는 철저한 무명이었다.

운동선수와 연예인은 모두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개인사업자 신분에서 실적을 쌓지 못하면 대중들의 뇌리에 잊히는 것은 순간이다. 거기에 스포츠계와 연예계는 살벌하다 못해 정글 숲이 가득한 세계들이다. 운동선수는 코칭스태프, 연예인은 방송 PD에 의해 각각 활용 루트가 마련된다. 코칭스태프와 방송 PD의 롤 부여에 따라 개인사업자 신분에서 대중성 향상과 개개인 가치 증대 여부가 가늠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개 분야 모두 시대적 변화와 환경은 물론, 추구하는 스타일과 방향성에 스며들지 못하면 단칼에 낙오된다. 이처럼 크나큰 시련과 모진 풍파가 이 둘에게 가혹하게 다가왔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은 요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열정(Passion)'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매개체를 토대로 밥줄을 연명하려는 열정은 이들에게 크나큰 열매로 다가왔다. 시장 가치 향상을 위해 변화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인고의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냈고, 가지고 있는 특색의 극대화와 꾸준한 노력 등이 곁들여지며 열정의 싹을 활짝 꽃피웠다. 무명 시절에 겪은 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을 꾸준하게 불태우는 모습은 전화위복이 됐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완숙미도 더해졌다.

최형우는 2005년 방출 통보 직후 경찰청 야구단(現 해체) 창단 멤버로 입단, 2007년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서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을 휩쓸며 퓨처스리그를 평정했다. 이에 프로팀 레이더망에 자연스럽게 포착되면서 제대 직후 2008년 삼성에 재입단했다. 퓨처스리그 평정은 1군 무대 평정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2008년 중고신인 신분으로서 신인왕 타이틀을 품에 안은 것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6년 타격 3관왕(2011년 - 홈런, 타점, 장타율, 2016년 - 타격, 타점, 최다안타), 2017년 출루율, 2020년 타격왕 타이틀 홀더로 군림하며 수상 이정표를 더 늘렸다. 뿐만 아니라 포지션 별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 수상도 6회(외야수 - 2011, 2013~14, 2016~17, 지명타자 - 2020)를 달성했다.

최형우는 개인타이틀의 두둑한 수상과 함께 팀과 리그 기여도도 남다르다. ‘삼성 왕조’ 시절 핵심 자원으로 KBO리그 역대 2번째 한국시리즈 4연패(2011~14)에 앞장서며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고, 이를 토대로 2016년 종료 직후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사상 첫 100억원대 계약 시대를 열면서 고향팀 KIA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이적 첫해부터 빼어난 장타력과 생산성을 기반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V11’을 지휘한 최형우는 이후에도 정확성과 장타력을 기반으로 뛰어난 생산성을 뽐내며 베테랑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그는 지난 시즌 종료 직후 40대 선수로는 첫 비FA 계약을 맺는 영예를 안는 등 꾸준한 활약상과 노력, 자기관리, 열정 등의 가치를 펼쳐 보이며 ‘모범 FA'의 선례도 남겼다. 지난해 6월 20일 대전 한화 전을 통해 KBO리그 최다타점 기록 경신(종전 이승엽 - 1498타점)을 이뤄내며 역대 최초 1500타점의 위업도 작성했다. 지난 6월 12일 인천 SSG 전에서는 KBO리그 최다루타 기록(종전 이승엽 - 4077루타) 마저 갈아치우는 등 KBO리그 새 역사 창조 또한 이뤄냈다.

데뷔 직후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유재석도 가지고 있는 싹을 프로그램과 잘 녹여내며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그 시초는 2000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MC 중심의 예능이 아닌 게스트 중심의 집단 예능의 성격을 띠었다. 단독 MC를 맡은 유재석의 진행능력과 순발력, 위트 등이 대중들에 큰 호평을 받았다. 당시 이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형식 도입과 시청자 투표라는 획기적인 방식을 도입하면서 주목도를 끌었고, 이를 거울삼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격언을 제대로 실현했다. 그렇게 해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히트와 함께 브라운관에서 유재석의 싹은 화려하게 꽃피웠다. 원조 ‘스포테이너’ 강호동, 서울예대 91학번 동기인 이휘재, 김한석과 짝을 이룬 2002년 KBS 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공포의 쿵쿵따‘는 예능적 재미와 웃음을 넘어 당시 일반 국민들이 사석에서 한데 즐기는 게임으로 불리면서 중독성을 높였고, SBS ’실제상황 토요일 X맨(2003~04)'에서 강호동, 김제동과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연출하며 대표 MC로서 입지를 더 탄탄히 했다. 예능 PD의 프로그램 런칭 때 진행자 0순위로 유재석을 점찍는 빈도는 더 늘었다. MBC ‘무한도전(2006~18)’, KBS ‘해피투게더(2001~현재)’, SBS ‘런닝맨(2010~현재)’까지 지상파 3사 프로그램 10년 이상 장수 MC로도 군림하는 진기록과 함께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MC로 이미지를 굳혔다. TV 시청 환경이 브라운관에서 모바일, 모바일에서 OTT(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로 이동되는 환경 속에서도 유재석의 모습이 안 비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고,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 존폐가 갈리는 방송 생리에서 진행 프로그램의 연이은 장수는 유재석의 영향력이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증거다. 탁월한 진행능력과 순발력, 위트는 물론 시청자들을 어루만지는 빼어난 공감능력까지 34년 방송 경력의 베테랑으로서 연륜도 그대로 묻어나고, 빠르게 프로그램 성향과 변화를 캐치하는 부분 또한 가히 압권이다.

출연 프로그램의 빅히트에 상복은 두둑하게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2003년 KBS와 MBC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수상 커리어 장만의 서막을 열더니 2005년 KBS ‘해피투게더-프렌즈’로 생애 첫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15년만에 최고의 훈장을 떠안았다. 이후 유재석의 대상 커리어 수집은 모터를 제대로 달았다. 2006년 ‘무한도전’으로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초로 2개 방송사 대상의 역사를 만들었다. 2007년 ‘무한도전’의 단체 연예대상 대상과 함께 2008년 ‘패밀리가 떴다’로 SBS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지상파 3사 대상 ‘트리플크라운’의 대위업도 남겼다.

유재석 출연 프로그램은 대부분 출연진 간 환상적인 호흡이 중요하다. 그런 호흡은 프로그램 재미와 가치를 높이면서 대중들에 방송일을 오매불망 바라보게 만드는 설레임을 안겨줬다. 아울러 캐릭터에 맞게 역량을 최대치로 끄집어내는 부분 또한 프로그램 롱런을 가능하게 했다. 2013년 종합예술상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비롯,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연속 대상 수상의 업적(지상파 3사와 백상예술대상 포함)은 유일무이한 업적이다. 202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또 한 번 TV 부문 대상 수상과 함께 최초 예능인 2회 수상 또한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운동선수와 연예인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누구나 역량과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뚜렷하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도 같다. 매슬로우의 욕구실현 5단계에서 최고 단계에 있는 자아실현은 이러한 본성을 더 일깨운다. 현대인들의 성향과 가치관, 특성은 모두 다르지만, 자아실현을 통해 부와 명예를 쟁취하려는 모토 만큼은 뚜렷하게 내재되어 있다. 분야 영향력을 넓히면서 주변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는 부분은 자아실현의 범주에서 부와 명예 쟁취를 위한 나은 삶의 구현 코스로 삼으려는 노력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현대 사회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큰 괴리에 휩싸여있다. 일단, 지나치게 속도에 옭아매는 것이 문제다. 매년 경제 불황이 사회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에 물질 만능주의가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너도나도 하루빨리 뭔가를 실현하고 싶은 나머지 20대 중-후반 젊은 세대들 뿐만 아니라 3~40대 세대들의 의식에 ‘좋은 직장’만 찾으려는 고집과 ‘잦은 이직’은 고용 시장을 어긋나게 만든다. 더불어 구성원 간 융화, 윤리, 소양 등을 등한시하는 경향도 높다. 너무나 서글픈 사회의 자화상이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어떠한 신분에 있든 꾸준함을 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꾸준하게 열정과 노력 등을 가미했을 때 비로소 가지고 있는 역량이 더 빛을 내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얘기다. 한 번에 반짝해서 이룬 것보다 꾸준함을 가지고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였을 때 그 가치는 더 폭등한다. 그렇게 됐을 때 부와 명예 쟁취는 물론, 분야 영향력 행사와 주변 구성원 인정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꾸준함을 통해 대기만성형의 스토리를 연신 써가는 최형우와 유재석의 스토리가 찬란함을 더하는 이유이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격언도 한데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는 빚어질 수 있다. 어떠한 돌발상황과 리스크가 늘 마주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열정과 노력 등의 지표가 꾸준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인지하고 삶을 다채롭게 그려간다면 분명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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