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9-13 17:29 (금)
“오래 가는 공공건축물을 설계하는 게 개인적 목표”
“오래 가는 공공건축물을 설계하는 게 개인적 목표”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9.02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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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아홉 번째 만남은 건축사사무소 기준의 홍기준 대표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9>
홍기준 건축사사무소 기준 대표

홍기준 대표가 말하는 건축 : 소라의성

곡선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만들었지? 우선 드는 생각은 그렇다. 보는 이는 즐겁지만, 건축물을 만들 때 투입된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수많은 곡선을 만든 건축가들이 떠오른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그렇고,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도 수많은 곡선이 만나서 하나의 건축물로 탄생하지 않았던가.

둥글다는 건 원초적이다. 곡선은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인간도 그렇고, 자연도 그렇다. 대부분의 모든 자연은 각의 개념을 지니지 않았다. 둥근 사물을 바라볼 때 편안한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건축으로 소화해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곡선의 모양새를 지닌 아치나 볼트를 구현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자연은 애초에 원형구조를 많이 선택하고 있으나, 인간은 건축물에 원형을 소화해내려고 수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원형을 구조적으로 만드는 일은 도전 영역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런 고민을 덜어주는 건 선과 선이 만나서 각을 이룰 때다. 그런 점에서 소라의성은, 고민을 한 흔적물이다.

사람은 빛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둥글다는 건 사방으로 퍼진 빛을 통해 인식된다. 둥근 건축물은 볼륨을 지니고, 그 볼륨은 건축물을 스스로 돋보이게 한다. 건축물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유이다.

소라의성. 미디어제주
소라의성. ⓒ미디어제주
 

소라의성은 서로 다른 원형의 합체다. 평면에 큰 원과 그보다 작은 원, 그보다 더 작은 원을 그린 뒤 소라의성은 땅 이에 세워졌다. 2층의 툭 튀어나온 부분은 가느다란 둥근 기둥이 받든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감아 돌아간다. 모든 게 곡선이다.

원형의 연속인 소라의성은 인간이 만들었으나,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겨있다. 서귀포의 아름다운 해안절벽 위에 소리소문없이 앉아 있다. 그러고 보니, 해산물 소라도 원형의 연속이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알 길을 없으나, ‘소라의성’은 음식점 이름으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1층은 관광안내소, 2층은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2층 북카페에서 조용하게 바닷가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쌓인 감정은 녹아내린다. 건축물이 사람의 기분까지 제어 가능함을 여기서 느낀다. 그러니, 누구든 편안한 건축물에 들어앉고 싶은 욕망을 지닌다. 태아는 바깥에 나오기 전까지 둥글게 몸을 감싸 안는데, 둥글다는 게 편안한 이유는 있었다.

소라의성은 누가 설계를 했을까? 의문이다. 1969년 건축되었다는 소라의성은 고(故) 김중업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일까? 알 수는 없다. 김중업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김중업의 작품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 당시 제주에서 이런 건축물을 구현하는 일은 어려웠다. 소라의성 곡선 처리 방법은 결코 쉽지 않다. 김중업이 설계한 옛 제주대 본관의 곡선 처리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사람들은 소라의성을 김중업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김중업의 작품이 아니라면? 혹시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제주대 본관 작업에 참여했던 목수가 소라의성에 관여했을 개연성도 있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라도 상관없다. 소라의성은 사람을 끌리게 하니까.

 

홍기준 대표와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 건축사사무소 이름이 ‘기준’인데, 그렇게 정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 이름으로 하기는 했어요. 한자로도 ‘기준’을 말할 때 그 ‘기준’이거든요. 어릴 때는 놀림도 받았죠. 체육시간이면 “기준하라”고 불렀죠. 사무실을 오픈할 때 고민은 많이 했어요. 과연 이름으로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해야할지 고민했어요. 주변에서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이름을 하느냐, 그런 얘기도 해줬어요. 또 다른 이유를 들라면 건축물이 준공된 후에 건축물 대장에 이름을 남기잖아요. 거기에 건축사 이름이랑 사무소 이름이 들어가는데, 최대한 제 이름을 알리고 싶었어요. 건축물 대장에 두고두고 제 이름이 남잖아요. 건물이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이름은 남는 것이죠.

- 소라의성을 제주도에서 소개하고 싶은 건축물로 꼽으셨어요.
아이들이랑 제주도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는데, 정방폭포에 왔다가 자연스레 소라의성으로 들어왔어요. 아우리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입면이 독특하잖아요. 재료도 그렇고요. 소라의성을 제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 소라의성 건물 팻말에는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라고 하긴 하는데요.
1960년대 후반에 지어졌는데, 당시 이런 형태의 건축을 하신 분이 김중업 선생이 유일했다고 하죠. 더욱이 자료가 없어요. 김중업 선생이 추방당하다시피 하다 보니 자료가 삭제되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이런 건축은 김중업 선생 외에는 없기에, 그렇게 추측하는 것 같아요.

홍기준 건축사사무소 기준 대표. 미디어제주
홍기준 건축사사무소 기준 대표. ⓒ미디어제주

- 개인적으로 끌리는 또 다른 공간이 있나요?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가 고향입니다. 어릴 때 ‘보호탑’이라고 불리는 게 있었어요. 돌을 평평하게 놓고, 다시 돌을 놓고, 시멘트를 바르고, 비석 같은 걸 올린 장소였죠. 거기 가면 항상 아이들이 있었어요. 아이들이랑 어울려 놀던 기억이 있는 공간이죠. 시대가 변하면서 애들도 사라지고, 보호탑이 있는 곳은 철거되었어요. 지금은 정자가 대신하고 있어요. 애들이 없어진 자리에 어르신들이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바뀌었죠. 기능은 바뀌었으나, 그 장소는 여전히 좋아요.

- 기억 속의 장소에 대한 애착이군요.
그렇죠. 태어나서 줄곧 고내리에서 자랐고, 결혼하고 나와서 살게 되기 전까지 살았으니까요. 새롭게 정자가 들어섰지만 어쨌든 그 기억 속에 있는 장소는 변함없죠.

- 나를 건축으로 이끈 책을 하나 소개해 준다면요.
리차드 웨스턴의 <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이 있습니다. 영국 건축가가 지은 책인데 기둥이나 보, 아치 등 건축 요소들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어떤 식으로 건축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 책을 처음엔 도서관에서 만났다가, 따로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어요. 책을 보면서 건축은 참 대단하구나, 느끼게 됩니다. 책 내용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면, ‘문’이라는 건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잖아요. 고대 이집트의 문은 어떻고, 고층화되면서 문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회전문 개발로 새로운 형태의 문이 등장하기도 했고요.

- 설계할 때 몸의 어디가 잘 작동을 하는가요.
몸은 세포로 구성됐잖아요. 세포가 느끼면 머리에서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내죠. 뭔가 느끼면서 집중하게 되면 손이 움직입니다. 드로잉보다는 실무 위주로 들여다봐요. 크기를 먼저 체크하고, 평면 계획 등을 잡고 설계를 진행합니다. (대지에 들어갈) 건물 규모가 적정한지, 법 문제는 없을 지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세부 설계를 하죠.

- 건축사라는 직업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으시는지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건축물 대장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저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름을 남기는 일과 함께 책임감도 있어야 되죠. 이름을 남기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하죠.

- 건축사는 사회적 책무도 필요하죠.
건축사는 서비스업인데, 건축 설계와 감리 등과 관련해서 나리에서 전문가라는 자격증을 준 것이잖아요. 건축주가 원하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설계를 하고 안내를 해주는 일을 합니다. 개인주택인 경우 건축사 의견보다는 건축주 의견을 위주로 설계에 반영을 하곤 하죠. 공공건축은 설계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긴 하는데, 신진 건축사로서 아직까지는 공공건축물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 어떤 건축물을 설계해 보고 싶은가요.
오래 가는 건축물이 좋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해요. 건물은 사람들이 쓰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그래야 오래 갈 테죠. 불편한 건축물을 오래 놔둘 이유는 없잖아요. 오래 가는 공공 건축물을 설계해 보는 게 목표입니다.

- 오래 간다면 몇 년 정도?
백 년, 백 년 이상이면 좋겠죠.

- 요즘 건축은 20~30년이면 낡은 건축물로 취급하잖아요.
문제가 있죠. 소라의성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유지 보수적인 측면, 보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건물은 짓고 난 후에 어떻게 유지 관리를 할 것이냐, 이런 점을 고민해야죠. 설계를 했으니 끝이 아니라,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유지될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 사회적 인식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삼십 년이면 재건축 얘기가 나오니까요.
지속 가능한 건물이 되려면 시공사도 그렇고, 작업자의 인식 개선도 있어야죠.

- 혹시 존경하는 건축가는 있으신지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 그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시죠. 마침 가족 중에 재일동포가 있어요. 그래서 더 끌리기도 합니다. 재일동포는 차별을 받아온 분들이잖아요. 이타미 준은 자신의 이름인 유동룡을 버리지 않았고, 차별 속에서도 세계적 건축가가 됐다는 자체가 존경스러워요.

더욱이 이타미 준의 따님인 유이화 소장이 제주도에 ‘유동룡미술관’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이타미 준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관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 제주도는 자연 풍광이 좋기 때문에 경관을 해치지 않게 설계를 해야 되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좋을 것 같나요.
경관이 우수하기에 경관 축을 열어줄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상업적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길게 늘어뜨리면, 말 그대로 건물 밖엔 안 보이거든요. 그러려면 상생을 위한 협의가 있어야겠죠. 길게 설계한 건물을 분동하는 것도 방법인데, 건축주를 설득해야죠. 건축사들이 적극적으로 계획안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 건축주 설득은 쉽지 않잖아요.
쉽지 않지만 계획으로 보여줘야죠. 그게 건축사들이 할 역할이고요.

홍기준 건축사사무소 기준 대표. 미디어제주
홍기준 건축사사무소 기준 대표. ⓒ미디어제주

- 집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추억을 공유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그렇듯, 자기 집에 살면서 좋은 기억도 있을 테고, 나쁜 기억도 있겠죠. 세월이 지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옛날에 집에서 그거 했잖아”라고 말하잖아요.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이야깃거리가 되는 게 바로 집이라고 봅니다.

- 가장 써보고 싶은 건축 재료가 있으신지요.
착공 신고를 할 때 쓰레기 발생량을 줄인다는 서약서가 들어갑니다.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써보고 싶어요. 그런 재료는 있는데, 건축주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돌아가곤 하죠.

- 건축사들은 자신이 설계한 집에 사는 경우가 흔하지 않더군요.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서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당장 제 집을 설계해서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좀 더 견문을 넓히고, 더 많은 스펙을 쌓아서 세심하게 설계를 해야죠. 누가 보더라도 ‘아, 이 집은 일반인이 아닌 진짜 건축사가 지은 집이구나’ 그런 느낌을 받게 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아마도 그런 이유로 건축사들이 제 집을 설계하지 않고, 지어진 집에 들어가서 사는 분들이 많은가 봐요.

- 제주도를 이야기할 때 한라산을 말하곤 하는데, 그게 제주도의 랜드마크잖아요. 그런 것처럼 건축물도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겠죠.
건축물을 제주의 랜드마크로 하기보다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제주도가 보기 좋죠. 건물 하나가 너무 튀게 되면 시선이 그쪽으로 가게 되죠. 물론 보기에도 좋지는 않죠. 예전에 핑크색을 입은 아파트가 있었어요. 좋지 않은 사례였는데, 나중에는 색을 다시 칠했더라고요.

- 그런 걸 보면 건물도 사람 눈에 보기 좋아야 하는데, 어떤 건축물은 ‘저게 진짜 보기 좋은 건축물인가’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도 있어요.
건물 모양을 낸다고 이것저것 재료를 쓰고, 행태도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성향 차이이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좋은 건축물은 아니겠죠. 누가 보더라도 편안한 건물, 저는 단순한 형태의 그런 건물을 좋아합니다. 단순하면서도 기능이나 구조면에서 불편함이 없는 그런 건물이 좋은 건축물이라고 보거든요.

- 요즘 현상 설계 경쟁률이 만만치 않아요.
지난해 공영주차장 설계 건이 당선됐죠. 80곳이나 접수를 했어요. 담당 주무관이 역대 최다 접수라고 하더라고요. 큰일이다 싶었죠. 땅이 너무 협소해서 회차가 어려울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풀었을까, 1등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풀었을까, 정말 궁금하다고 여겼는데 친구랑 함께한 우리 안이 될 줄 몰랐거든요.

- 어쨌든 공공 건축물이군요.
신진 건축사들은 인맥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기에 도전을 하고 있어요. 어떤 프로젝트이건 한 가지 이상은 배워요. 아, 이걸 내가 놓쳤구나 한탄하기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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