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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신들의 이야기
대정읍 신들의 이야기
  • 장로아 청소년기자
  • 승인 2024.09.09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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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보성초등학교 6학년 장로아

# 대정의 토속신앙 신당

제주에는 신을 모시는 곳인 신당이라는 중요한 장소가 있습니다. 제주 전역에 수많은 신당이 있습니다. 대정읍 안에도 가파도, 마라도를 포함해서 총 34개의 당이 있었다고 해요.

제주 민속학자들은 제주에는 350여 개의 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신당은 본향당이라는 곳이에요. 본향당은 마을 형성 초기에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마을을 세운 신으로 받들게 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제주 신당의 원조는 송당 본향당이라고 해요. 송당 본향신인 금백주의 아들 18명과 딸 28명이 각 지역으로 흩어져서 또 다른 본향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는 날씨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일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불어서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들도 너무 많았다네요. 변화가 많은 기후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죽기도 했답니다.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사고가 나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제주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안전한 생활을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신당은 그렇게 생활과 다양한 부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남자신보다는 여신을 더 귀하게 모셔요. 제주 신의 80%가 여신이라고 합니다. 제주 여성사를 연구하는 김순이 시인의 말씀에 따르면 신당은 제주 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들에게 ‘영혼의 주민센터’였다고 합니다.

“제주 여인들은 자기 생활의 모든 것을 사는 지역의 본향당에 와서 신고한답니다.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고가 났다, 돈을 벌었다…, 이런 모든 것을 신고하고 고해바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 중)

제주의 여신은 ‘할망’이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는 손주의 모든 응석과 소원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다 들어주는 분이기 때문에 엄마보다 가깝고 편하면서도 포근합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손주 편입니다. 힘든 제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이렇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할망은 힘이 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할망신들은 제주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큰 ‘내 편’이었습니다.

제주의 신당.
제주의 신당.

그래서인지 대정읍에도 ‘할망당’이라고 부르는 신당들이 많았습니다. 신당은 대체로 산, 숲, 냇물, 언덕, 평지의 나무나 돌이 있는 곳에 고루 있었어요. 신당 중에는 정해진 날에만 출입이 가능하고 아무 때나 방문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대정 고을의 가장 대표적인 신당은 안성리에 있는 ‘동문밧산짓당’이 있습니다. 이 신당에는 팽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문밧산짓당은 ‘일뤠중저’라는 여신을 모신 당으로 옛날 새로 부임하는 현감과 이임하는 현감들도 말에서 내린 뒤 이 신에게 절을 해야 할 정도로 힘이 아주 센 당이었대요. ‘일뤠’는 제주어로 칠일이라는 뜻이어서 ‘일뤠’가 붙은 신당은 매달 7자가 붙은 날이 ‘제일’입니다. 신당에서 신을 만날 수 있는 날을 ‘제일’이라고 하는데, 일뤠중저를 만나는 제일은 매달 7일, 17일, 27일입니다.

제주 신당의 신들에게는 내력을 말해주는 ‘본풀이’가 있어요.

* 산짓당 본풀이

산짓당은 삼문안에 염색할망 부군할망 구술할망 옥할망 부군할망
상청할망도 부군할망 예변청할망도 부군할망 일천석, 삼천석 받아오시던 창할망 부군할망
올라사민 걱새할망 부군할망
노려사민 궁깃할망 부군할망
신숫할망 부군할망 육방하인 삼만관속
일기생, 일관노에 주내, 고동, 나팔 받아 오시던 신전님 가는 연봉, 오는 연봉, 신전받아 오시던 신도 본향한집님

- 이남부 심방의 구송본 <남국의 무가>에서-

제가 사는 보성리에는 ‘서문밧 큿남밧 할망당’이 보성리 복지회관 근처에 있었습니다. 큿남밧 할망당은 ‘아기 할망당’이라고 해서 출산과 육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다른 신당들은 제일이 정해져 있지만 서문밧의 할망당은 다른 할망보다 마음이 더 넓고 정이 깊어서 아무 때나 찾아오는 손주 손녀들을 만나길 기뻐하시는 것 같아요.

옆동네 구억리 728번지에는 ‘서코지 할망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마을 본향당으로 대정고을 ‘산지당’에서 가지 갈라온 ‘일뤠당’입니다. 신목으로 모시는 참가시나무가 있습니다. 이 마을 김옥선 님의 고증에 의하면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를 따라 ‘서코지 할망당’을 다녔다.”고 합니다. 할망당에 갈 때는 삼색 천, 명실, 소지, 홀수로 지전을 챙기고 감주나 소주도 가지고 다녔습니다. 아이들 종기 나지 말라고 콩과 팥도 챙겼다고 해요.

신당에 있는 신목.
신당에 있는 신목.

# 소지, 지드림, 치성물

할망당에 받치는 소지는 ‘하얀 한지’입니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종이를 소원을 빌 때 가슴에 대고 자신의 소원을 빈대요. 그러면 그 소원이 소지에 찍혀 할망신이 다 읽어 본다고 합니다. 원래는 글을 모르는 여인들을 위해 생겨난 의식이었다고 해요. 소원을 새긴 백지라고 하니 그 하얀 종이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적혀 있을까 상상이 되는 듯합니다. 김옥선 할머니가 챙긴 명실은 명주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홀수로 챙겼다는 지전은 지폐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쌀알과 동전 한지에 싼 물건을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해녀와 어부들이 용왕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며 ‘요왕맞이’를 할 때 ‘지드림’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지’는 쌀알을 한지에 싼 다음 무명실로 돌돌 여민 것을 말해요. ‘지’를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모양이 온전한 쌀알만 모아서 동전과 함께 한지에 정성스럽게 싸야 해요.

구억리 마을의 김옥선 할머니가 ‘서코지 할망당’에 갈 때마다 정성스레 준비한 치성물에 할망신은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추사 김정희 선생과 일뤠당 본풀이, 음사 소탕

추사 김정희 선생이 대정현에 유배를 왔을 때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날씨 때문에 여러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추사 선생이 당한 병들은 ‘일뤠당 본풀이’에 설명된 질병인 안질, 눈아피, 송인, 세꼴리, 배아피에 해당한답니다. 유학을 공부한 추사 김정희 선생은 자신의 병을 위해 소지를 가슴에 챙겨서 치성을 드리러 신당에 갔을까요? 대정향교를 향해 걷기 전, 누군가를 치유해준다는 할망을 찾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숙종 28년이던 1702년 이형상 제주 목사가 ‘음사 소탕’을 목적으로 ‘당 오백 절 오백’을 철폐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형상 목사가 떠난 뒤 제주 사람들이 신당을 많이 복구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추사 선생이 제주에 유배 왔을 때는 대정 고을에 많은 신당이 다시 생겼겠어요. 풍토병에 많이 고통스러웠던 추사 김정희 선생도 할망신에게 자신의 병을 고쳐주고 제주살이 좀 적응시켜 달라고 신당을 방문하는 상상은 그럴듯하겠죠?

# 제주 무당, 심방

제주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불렀어요. 심방은 마을의 본향당을 포함한 여러 신당을 모시는 일도 맡았습니다. 심방은 신당도 모시지만 제사도 드리고 굿도 합니다.

그러나 심방이 진행하는 신당의 제와 당굿은 요즘 보기 힘듭니다. 18세기 이형상 목사의 음사소탕 이후에 다시 점차 복원되었던 신당문화가 1970년대 미신타파 운동으로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얼마 전 안성리 이장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속 유교식 포제는 제주 전통 당굿과는 매우 다른 형태입니다. 민간신앙의 당굿이 유교식 제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락리 마을 포제. 안성리 임찬수 이장님 제공.
영락리 마을 포제. 안성리 임찬수 이장님 제공.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제주 신당문화와 심방 문화는 세계적으로 위상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주칠머리당굿은 1980년에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비록 신당에서 진행하는 당굿이나 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심방이 집안 대소사를 위해 진행하는 굿이나 의식은 제주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친근한 문화입니다. 안성리 수월이 못 옆에 새집을 짓고 이사를 한 제 친구네도 심방을 모셔 다가 새집에서 잘 살게 해 달라고 성주풀이 굿을 했다고 합니다. 정성스럽게 음식도 준비하고 친척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새집으로 이사한 친구는 심방과 친척들에게 덕담을 많이 들었으니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습니다.

# 본풀이

제주에는 ‘본풀이’라는 특별한 문화가 있습니다.

‘본풀이’는 굿을 할 때 노래처럼 부르는 기도와 주문의 소리를 말합니다. 노래 가사에는 제주 신들의 내력이 담겨있습니다. ‘본풀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불리어 오는 제주도 토속 신앙 문화입니다. 본풀이는 제주도의 전통문화나 역사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평가가 됩니다.

여기 전래 동화같이 재미있는 본풀이가 있습니다.

옛날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었다. 집은 가난하였지만 아들은 일곱이나 두었다. 여산부인은 남편에게 쌀장사를 권했고 남선비는 부인 의 말을 듣고 배 한 척을 마련하여 쌀장사를 나갔다.

배는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는 매우 나쁜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살고 있었다.

귀일의 딸은 남선비를 유혹해 내기 장기를 해서 남선비의 배도 팔게 하고 쌀과 돈도 모조리 빼앗았다. 결국 남선비는 거지꼴이 되어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밥을 얻어 먹고 살게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남선비는 결국 장님이 되었다,

한편,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여산부인은 아들들이 만들어준 배를 타고 남선비를 찾아 오동나라에 갔다.

거지꼴로 움막에 사는 장님 남선비를 찾은 여산부인은 남편에게 쌀밥을 해먹이고는 본인이 여산부인인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둘은 눈물로 두 손을 부여잡았다. 귀일의 딸은 여산부인을 매우 반갑게 맞이하는 척하며 목욕을 가자며 꼬득이고는 여산부인을 목욕하던 연못 속에 밀어 죽게 하였다. 그리고 남선비에게 가서는 여산부인인 체하며 본인이 귀일의 딸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남선비는 그 말을 곧이듣고는 귀일의 딸과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부모님을 맞이한 아들들 중 막내아들만이 귀일의 딸이 자신의 친어머니인 여산부인이 아님을 알았다. 귀일의 딸은 일곱아들을 죽일 계략을 꾸몄다. 배가 아파 죽어가는 시늉을 하며 자신을 위해 점을 봐와달라고 한다. 남선비는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보았는데 사실 점쟁이는 귀일의 딸이었다. 귀일의 딸은 남선비 부인의 병이 낫기 위해서는 일곱 아들의 간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남선비는 여산부인으로 위장한 귀일의 딸을 살리기 위해 아들들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다. 이를 알아챈 막내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대신 형들의 간을 빼오겠다고 하고는 형들과 산으로 숨었다. 그날 막내아들의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나서는 형들의 간 대신 멧돼지의 간을 가져가라고 가르쳐 준다. 잠을 깨니 눈앞에 멧돼지와 새끼 여섯 마리가 있었다. 형제들은 멧돼지 새끼 여섯 마리의 간을 내어 계모에게 가져갔다. 계모는 간을 먹는 척하다가 간을 자리 밑으로 숨겼다. 문틈으로 엿보던 막내아들이 들어가 멧돼지의 간을 찾아내고 형들도 모두 귀일의 딸에게 달려들었다. 귀일의 딸은 도망가다 측간(화장실)에서 죽어 측도부인이 되었다. 남선비는 달아나다가 정낭(집의 출입구에 걸쳐 놓은 굵은 막대기)에 목이 걸려 죽어 정살지신이 되었다. 일곱형제는 서천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얻어다 물에 빠져 죽은 여산부인을 살려 조왕신으로 앉혔다. 그런 뒤 여섯형들은 각각 동방청대장군, 서방백대장군, 남방적대장군, 북방흑대장군, 중앙황대장군, 뒷문전이 되었다. 가장 영리한 막내는 일문전(앞쪽 문신)이 되었다.

위의 이야기는 ‘제주문전본풀이’입니다.

‘제주문전본풀이’를 통해 제주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주는 육지의 전통 가족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한국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로 아버지와 남성 중심의 부계 사회입니다. 할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에게 이어지고 아버지의 권위는 첫째아들에게 이어지는 것이 부계중심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제주 ‘문전본풀이’의 남선비는 아버지로서의 능력이 없습니다. 또 첫째아들보다는 막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이야기의 흐름도 아버지 남선비가 아닌 여산부인, 귀일의 딸이 주인공입니다. 결국에 남선비와 여산부인의 결말도 완전히 여산부인의 승리입니다. 남선비는 아들들에게 쫓겨 장님의 신세로 도망치다 정낭에 목이 걸려 죽고 정살지신이 되었지만, 여산부인은 아들들의 효심으로 물속에서 살아남아 따듯하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부엌의 신인 조왕신이 되었습니다. 가장 용감하고 가장 영리한 막내가 여섯형들을 뒤로하고 앞문의 신이 된 것도 첫째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주 가옥은 이렇게 여산부인과 남선비, 귀일의 딸, 일곱 아들 뿐 아니라 많은 신들이 가족의 안전한 생활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 조왕제

가정을 지켜주는 신들을 가신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본분을 다하라고 제사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여산부인에게 올리는 제사인 ‘조왕제’가 있습니다. 조왕제는 남선비가 담당하는 문전신을 위한 ‘문전제’와 같이 신년에 드립니다. 문전제를 할 때는 문전상을 대문 앞에 차려놓고 굿을 하는 심방이 ‘문전본풀이’를 부르고 이어서 부엌에 제물을 차리고 조왕신에게 축복을 바라는 기도를 합니다. 조왕제를 드리고 상에 올렸던 정화수 그릇을 들고 마당과 부엌 구석구석에 조금씩 뿌리는데 이것을 ‘부정갠다’ 고 부릅니다. 조왕제를 드린 음식은 식구들만 먹을 수 있고 다른 집에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해요. 이 음식들 중에는 메밀로 만든 것도 있을 것입니다.

# 메밀 그리고 빙떡

제주 토속음식 재료 중에는 메밀이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 때문에 강원도 봉평이 메밀로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은 제주도가 메밀이 가장 많이 나는 고장이랍니다. 메밀은 농경의 신 자청비의 이야기인 ‘세경본풀이’에도 등장합니다. 자청비는 천상에서 오곡의 씨앗을 가지고 와서 지상의 풍년을 담당하는 세경신이 됩니다. 그런데 천상에서 가져온 씨앗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다시 하늘에 올라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씨앗인 메밀을 가지고 왔다고 해요.

메밀로 만든 음식 중에는 빙떡이 있습니다. 빙떡은 특별한 맛은 없습니다. 소박하고 단백하다는 말이 딱 맞는 음식입니다. 메밀피는 싱겁고 속에 무채도 물컹해서 제 입맛에 맞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안성리 우체국 뒤에 사는 제 친구 김솔의 친할머니이신 김영순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빙떡은 특별합니다. 지난해 11월 추사문화예술제 때 비가 많이 왔습니다. 축제 구경 갔다가 만난 비 덕분에 온몸이 젖어 덜덜 떨었습니다. 김영순 할머니는 축제장에서 빙떡 만드는 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비를 쫄딱 맞은 우리에게 방금 만든 빙떡을 가득 주셨어요. 솔이네 할머니가 구워주신 빙떡으로 추운 몸에 온기를 채웠습니다.

춥고 배고플 때 따뜻한 솔이 할머니의 사랑을 경험하고 보니, 제주 사람들이 할망을 존경하고 신으로 모시는 신앙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할망이 지켜주고 보살펴 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까요.

빙떡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할망의 손주 사랑은 따뜻하고 특별합니다.

 

참고자료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제주편)> ,창비, 2012
진성기, <제주도 무가 본풀이사전>, 민속원, 2002
하순에, <제주도 신당 이야기>, 한그루, 2024
대정읍지편찬위원회, <대정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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