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열한 번째 만남은 최인성건축사사무소의 최인성 소장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11>
최인성 최인성건축사사무소 소장
최인성 소장이 말하는 건축 : 여미지식물원
아름답다고 말할 때, 어느 정도의 객관화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아름답다’에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아름다움도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건축물도 그럴까? 물론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차이를 드러낸다. 그건 사람마다 건축물을 받아들이고, 건축물을 읽는 언어가 달라서다.
영국의 미술평론가이면서 교수였던 존 러스킨(1819~1900)은 <베네치아의 돌>에서 세 가지의 건축 미덕을 모든 건물에 요구했다. 기능이 좋아야 하고, 설명이 잘 되어야 하고, 보기에 좋을 것 등이다. 기능은 효율을 말하며, 보기에 좋다는 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뜻이다. 기능과 보기에 좋은 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는데, 러스킨이 강조한 ‘설명’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객관화하기에 매우 어렵다. 러스킨이 말한 설명은 건축물을 바라본 상대자의 느낌에서 나와야 한다. 건축물을 본 순간, 건축물과 대화를 하는 경지에 다다라야 러스킨이 말한 설명은 가능해진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럴 때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 준다면, 우리는 건축물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거대한 실내 정원인 여미지식물원은 ‘설명’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건 건축물이 아니라, 잘 꾸며진 정원의 열대·아열대 식물이 먼저여서다. 이들 식물이 관람자들의 눈에 먼저 꽂힌다. 먼 거리에서 여미지식물원의 높이 솟은 전망대를 건축적 시선으로 바라본 이들이 아니라면, 건축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식물에 대한 관심을 잔뜩 담아서 식물원 내부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여미지식물원은 조경가 고바야시 하루토(小林治人)의 작품이다. 조경가여서인지 정원에 눈길을 쏟게 하는 기술을 지녔다. 그렇다고 건축물이 특징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거대한 온실이 가능해진 건 기술적 요인에 근거한다. 바로 유리와 철이다. 이들 재료는 거대한 공간을 만드는 필수 재료로서 기능을 한다. 고바야시는 ‘지역문화의 핵’이 되는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를 해왔다. 그게 기술적인 재료와 맞아떨어지면서 여미지식물원이 중문이라는 장소에 얹혔다.
여미지식물원은 유리와 철이라는 재료만 있으면 될 텐데, 거기에 콘크리트를 첨가했다. 중앙 코어에 해당하는, 전망대로 이어지는 공간은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여기서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곧장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춘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가려고 줄을 선다. 그러지 않고 계단으로 오르면 여미지식물원의 제 모습을 볼 행운이 주어진다.
차가운 노출콘크리트의 질감은 철과 유리라는 재료와 대비된다. 1980년대 이같은 노출콘크리트를 뽑아낸 시공자들이 누구일지, 정말 궁금해진다. 최근 들어 노출콘크리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미지식물원에서 마주하는 그것만큼 노출콘크리트를 잘 뽑아낸 건축물을 마주한 일이 있던가? 여미지식물원에 대한 ‘건축적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여미지식물원은 우산을 활짝 편 형상인데, 빛을 받아들인 내부 공간을 봐도 좋겠으나, 중앙 코어 부분을 오르면서 감상해야 여미지식물원이라는 건축물을 제대로 읽게 되고, 건축으로 대화도 하게 된다. 반드시 계단으로 올라야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식물에서 느낀 즐거움이 아닌, 건축이 말하는 경탄이 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최인성 소장과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최인성 소장은 경북 상주 출신이지만 경상도 특유의 발음은 찾을 수 없다. ‘상주’라는 지역이 그렇고, 많은 곳을 이동하면 살아온 삶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서울에도 잠깐 살기도 하다가 주로 충남 천안을 근거지로 삼았다. 제주에 정착한 건 2019년이다. 그것도 서귀포다.
- 여기는 좀 습하지 않나요?
이쪽에 사무실은 둔 건 3년 반 됐어요. 조금 습하긴 하죠. 사실은 제가 비를 되게 좋아해요. 여기에 있어 보니 안개가 낄 때는 한 달 정도도 끼는 것 같아요. 영국을 가보지는 못했으나, 여기는 제주에서도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달라요. 처음 여기 왔을 때 40일 가량 비가 왔어요. 매일매일 행복하고 너무 좋았어요. 제주에 사시는 분들은 습도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누릴 줄 알면 좋겠어요. 극복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죠. 에어컨도 있을 테도, 보일러도 있고…. 나이가 들다 보면 불편한 데가 생기듯이 안고 가는 거죠. 여기는 전망도 좋죠. 저 창문을 열면 가파도까지 보이거든요. 서귀포여서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 최인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시는데.
제주에 와 보니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사사무소를 많이 봤어요. 육지에선 약간 철학이 담긴 타이틀이 많았는데, 제주에 처음 왔을 때 다닌 곳도 이름을 건 사무소였어요.
사무소 이름을 지을 때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히브리어에 ‘토브’라는 게 있어요. 너무 보기 좋은 상태를 말할 때 쓰는데, 그런 건축을 하고 싶더라고요. 문제는 ‘토브’는 외래어여서 어렵기도 하고요.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인 경우는 이름을 걸잖아요. 건축에도 경영 마인드와 철학은 다양한데 이름에 걸맞게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이름을 내걸면 사무소 이름을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또한 이름을 걸고 하니, 다시 고삐를 조이고 나사도 조이곤 해요. 저는 다시 직업을 고르라고 해도 건축사를 꼽겠어요. 매력이 너무 크거든요.
- 특히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건축은 미적인 면이 있고, 공학적 기술 등을 통해 공간으로도 나옵니다. 용도별로 기능에 충실한 것도 좋은 건축일 테지만, 어떻게 해서 설계를 했는지 깨달아가는 게 매력적이죠. 건축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많은 시간이 걸려서 말할 만큼 가치가 있어요. 좋은 건물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건물이 있죠. 그런 건물들은 건축가의 어떤 준비 자세와 자질, 안목이 들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설계 단계에서 건축주가 건축사의 설계 의도를 이해해서 실행되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죠. 전자인 경우는 건축주가 모든 걸 이해하니까 그 공간에 대한 만족감이 아무래도 있겠죠. 그러지 않은 경우는 기능에만 충실한 건축물이 될 수도 있잖아요. 건축주들에게 그런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건축주를 한번 만날 때 거의 서너시간 미팅을 합니다. 건축 설계도 중요하겠으나 제가 하는 건축 설계를 건축주도 알게 접점을 늘리는 거거든요.(최인성 건축사는 ‘동상동몽’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그 다음에 가족 구성원을 비롯한 전반 상황을 인터뷰하듯이 자연스럽게 끌어냅니다. 그러면서 (좋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물어봐요.
- 공공건축가 활동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공공건축가 3기 활동을 하고 있고, 서귀포건축문화위원은 2023년부터 하고 있어요.
- 서귀포건축문화위원은 어떤 일을 하죠?
서귀포의 건축문화를 연구합니다. 기록화 사업 같은 거죠. 그러면서 만난 주택이 있는데 마감재도 잘 남아 있고, 공간 구성 등도 예전 건물이지만 너무 좋은 거예요. 인터뷰를 해 보니 건축주는 그런 걸 몰랐다는 거예요. 방 세 개와 건물 안에 화장실을 요구했는데, 그런 사항을 건축사가 잘 담았던 거죠.
- 그분은 설계한대로 그냥 산 셈이군요.
시대적 분위기 같아요. 주택은 손이 닿는 곳이 많아요. 고객 만족을 위해 스위치는 어디에 달지 등을 일일이 확인을 해보곤 하죠.
- 좋은 작품이라는 건 건축주가 그 공간에 들어가서 행복하다고 느껴야겠죠. 그게 구현하기 쉽지 않잖아요.
저도 그걸 추구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기에 건축주랑은 ‘동상동몽’이어야 하고요.
- 개인적으로 청소년건축학교를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공간을 인식하고, 이해하면 좋겠거든요.
예전 설계할 때 그런 경우들이 있어요. 자녀들이 먼저 알아서 다락이 있어야 한다, 복층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견을 마구 내놓더군요.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녀들이 제안하는 것을 듣고 “맞아, 이렇게 해야 돼. 이렇게 해야 좋은 공간이야”라고 했더니, 나중에 건축주가 전화를 주셔서 “그럽시다”고 하더군요.
- 건축을 하려면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는데 혹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그런 책을 읽고 건축의 방향을 알게 되었다든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을 좋아하거든요. 그들의 작품집을 본다거나, 그걸 보면서 어떻게 건축을 풀어냈는지 이해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그런 점이 많은 도움을 주죠. 직접 가볼 수도 있지만 못 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작품집 등을 통해 공간에 대한 공부를 하곤 해요. 소개하고 싶은 책은 건축 관련은 아니고, 자기개발서 <보이게 일하라>인데요,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건축주와의 관계, 집에서의 관계 등 모두 다 적용되는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일정을 공유해요. 사무실을 운영한지 4년 차인데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요. 그러기에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 제주에서 소개하고 싶은 건축물로 여미지식물원을 꼽으셨어요.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여미지는 제주 자연을 그대로 둔 공간이면서도 내부와 외부가 무척 좋아요. 국가적으로 중문이라는 곳에 콘셉트를 잡아서 정원을 조성한 것도 좋고, 동양에서 제일 큰 온실이기도 했죠. 1980년대 지어졌는데, 처음엔 여미지식물원을 잘 몰랐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후에 소유권이 서울시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부국개발 소유로 되어 있죠. 오래됐음에도 노출콘크리트 쓰임이 뛰어나고, 코어 쪽을 올려둔 점, 방사형으로 퍼진 점. 전망대에서 서귀포의 멋진 전망도 볼 수 있죠.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내부에 있는 이들이 자연과 연결돼 있어요. 시각적으로는 여미지식물원이라는 건축 공간은 제주의 건축을 느끼게 하고 있어요.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겁니다.
- 건축 재료는 어떤 걸 쓰면 좋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목구조가 좋을 것 같아요. 경량목구조는 해봤으나, 좀 더 진지한 목구조를 해 보고 싶죠. 목재는 습도도 조절해주고, 자연 재료이기에 환경 유해 물질도 없죠. 지붕은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걸 가리키며) 이게 슬레이트거든요. 천연 슬레이트죠. 지붕에도 바닥에도 써요. 저게 돌이거든요. 제주도는 돌이 많잖아요. 자연이든, 가공을 하든, 그런 재료로 마감을 하면 어떨까요. 자연스러운 질감이 나중엔 고급감이 되거든요.
- 자연 재료를 쓰는 사람들은 ‘세월의 더께’가 입히는 걸 받아들이는 사람알테죠?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죠. 이끼나 물때도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거든요. 너무 도시적으로 살고, 깔끔하다 보니 물때를 견디지 못하는 거예요. 건물은 자연의 자리에 앉는 것이고, 자연이랑 만나는 일이잖아요. 좋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건물을 대하는 게 싫어서 재료를 아예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긴 하죠.
- 현무암에 하얗게 피어난 게 있어요. 이끼가 죽어서 고착화된 것들이죠.
본 적 있어요. 그래서 곶자왈을 좋아해요. 곶자왈은 ‘제주스럽다’는 느낌이 들고, 돌도 서로 어우러져 있어요.
- 우리 마을에 보호수 하나가 있는데, 도로를 내면서 거기는 아주 높아졌어요. 생긴대로 도로를 냈더라면 보호수가 외롭지 않았을 텐데요.
도로 설계 기준을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설계 기준대로 하면서 절도를 해버린 거죠.
- 제주 자연에 건물을 얹게 되는데, 제주 자연에 대한 태도는 어때야 할까요.
제주의 능선이나, 자연적인 경사 흐름에 어울리게 해야죠.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특색을 가지는 게 제주의 건축이어야 하는데, 다들 나지막한데 어느 특정 건물만 솟아나면 좀 그렇겠죠. 토지는 원래 비정형으로 생겼잖아요. 자연에서 오는 선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곳에 자를 대고 그려내서 베어낸 듯한 그런 건축은 지양해야죠.
- 집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옷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파는 옷이 아닌, 맞춤식의 옷이죠. 정답도 없죠. 큰 공간을 원룸으로 쓰겠다면 그게 정답이고, 되팔 걸 생각하면 정형적 형태가 들어가잖아요. 큰 방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방은 잠만 자고 거실을 크게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니면 거실을 책방처럼 만들기도 하고….
- 건축사 역할도 한말씀 해주신다면.
기본 요구사항을 만족시켜줘야 하죠. 그러니까 법규에 맞춰서 인허가를 내주고 건축을 하는 게 가장 기본이죠. 거기에 더해서 좋은 공간을 설계해 주는 것이고요. 더 나간다면 공공건축도 생각을 하게 되죠. 건축가는 내게 맡겨진 프로젝트만 하는 게 아니라 결국에는 집과 건물, 거리와 구역, 더 확장해서 제주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되잖아요.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해요. 미래 세대의 교육도 고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