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온 이들도 참가하며 관심 보여
“중·고교 학생들 진로탐색 기회가 됐으면”
건축가 이덕종 소장 지휘로 종이 건축 탐색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공간은 채우는 순간 달라진다. 그릇은 진흙을 이겨 만드는데, ‘빈 곳’에서 ‘쓰임’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자 <도덕경>에 “있음이 이롭다는 건 없음이 쓰임을 삼기 때문이다(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고 했음을 상기해보자. 비어있어야 뭔가를 채우게 된다. 특히 비어있는 건축공간을 만났을 때, 그 공간을 채우는 요소로 ‘가구’가 있다. 가구는 ‘작은 건축’으로도 불리는데, 가구로 빈 곳을 채울 때 비로소 건축공간은 있음이 된다.
빈 건축공간을 채우는 가구는 반드시 목재나, 철재여야 할까? 이런 의문도 든다. 그걸 다시 생각하게 만든 모임이 지난 29일 열렸다. 유동룡미술관이 마련한 ‘작은 건축, 종이 가구 워크숍’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날 워크숍은 지어지기만 하고, 활용되지 않아서 빈 상태로 존재하던 ‘저지문화지구 생활문화센터’를 처음으로 활용한 행사이기도 했다. 워크숍 행사 자체가 빈 건축공간을 채우는 활동이었고, 행사가 열린 공간도 빈 곳을 채웠다는 의미가 있다.
워크숍은 건축재료로서 종이를 말하고 있다. 종이가 건축재료가 된다? 상상불가 영역이지만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알리자, 참가 신청은 곧 마감됐다. 그만큼 건축과 가구에 대한 관심은 물론, 종이로 건축 행위를 한다는 행위의 신비로움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종이를 소재로 내 건 이유는 유동룡미술관이 현재 진행하는 전시와 맞닿아 있다. 유동룡미술관이 현재 진행하는 전시는 ‘손이 따뜻한 예술가들, 그 온기를 이어가다’로 건축가 이타미 준과 시게루 반이 해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시게루 반은 종이 건축으로도 유명하기에, 워크숍에서 가구를 통해 건축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워크숍은 제주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이덕종 아크공간연구소 소장이 지휘했다. 이덕종 소장은 지난 9월부터 위크숍을 이끌고 있다. 그는 ‘종이’라는 재료를 투입한 워크숍을 이렇게 말한다.
“가구는 건축공간과 연결이 됩니다.. 유럽은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가구를 선물한다고 해요. 첫 월급을 다 부어야 해요. 그에 비해 우리는 똑같은 가구만 팔곤 하죠. 종이로도 가구를 만들 수 있고, 나만의 가구를 만드는 경험이 됐으면 해요.”
이덕종 소장은 학생들과 건축 프로그램을 종종 해왔으나, 일반인과 건축 프로그램을 하는 건 처음이다. 그 역시 낯설지만,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워크숍은 여러 가능성을 던졌다. 건축 소재로 종이도 가능하다는 점, 가구를 몰랐던 이들에게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을 안겼다. 참가자들은 실제의 6분의 1 크기로 자신만의 가구 만들기에 열성을 들였다.
더욱이 ‘저지리’로 특정되는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긍정적이다. 제주에 상주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활동이 될 수 있고, 제주를 오가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로도 충분하다. 워크숍은 어른들이 대상이지만, 이날은 어린이도 참가했으니 폭은 넓다. 그것도 제주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김현갑씨는 딸 서율이를 데리고 제주를 여행 중에 ‘종이 가구 워크숍’을 만났다. 자신의 집을 가질 계획이라는 김씨 가족에게 워크숍은 매우 특별한 인연이다.
“딸이랑 여행 중이고요. 평소 집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고, 딸이랑도 집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요. 자기 방은 어떻게 했으면 좋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평소 집 짓는 놀이도 하거든요. 지난 겨울철엔 함께 모감주나무에 새모이집도 만들어 봤고요. 올해 초엔 제주시 함덕의 2층집에서 한달살이도 했는데, 딸애가 2층집에 매료됐어요. 유동룡미술관의 워크숍은 매력적이면서 이런 게 더 많으면 좋겠어요.”
집에 푹 빠져 있는 부녀는 집을 “좋은 것, 제일 편한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부녀의 제주 여행은 10일 일정이어서 유동룡미술관이 진행할 ‘어린이클래스’는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제주의 옛 일상을 끌어들여 작품을 만든 이도 있다. 이경아씨가 만든 ‘모두의 구덕’이다. 그는 어른으로 워크솝에 참가했으나, 학생들을 위한 이런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구는 만들어진 걸 사야된다고만 생각했죠. 상상하고 쓰고 싶었던 가구를 이렇게 구현해 보니 좋군요. 종이라는 물성이 오히려 부드러운 소재가 되겠다고 생각 들어요. 중·고등학생들이 진로탐색을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어요.”
위크숍은 많은 걸 던진다. ‘저지문화지구 생활문화센터’를 처음으로 움직이게 만든 프로그램. 종이라는 낯선 재료…. 아울러 예술을 눈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몸으로 부대끼며 익히는 체험이 얼마든지 저지리에서 가능함을 일깨운다. 참, 다음 워크숍은 12월 딱 한 차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