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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선거 거부는 통일정부 수립 위해 선택한 결과"
"5.10선거 거부는 통일정부 수립 위해 선택한 결과"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6.01.24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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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무장대 활동조명 최초 논문 수록 '4.3과 역사' 5호 발간

4.3사건 당시 항쟁 주도세력인 무장대의 활동을 조명한 최초의 연구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4.3연구소는 24일 '4.3과 역사' 제5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는 2005년 4월 열렸던 '4.3 평화인권포럼-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하여' 심포지엄의 발표문과 토론내용 및 3편의 4.3논문 등이 실려 있다.

오승국 사무처장은 "제5호는 4.3연구에 있어 본격적인 미시사 연구에 접근했다는데 의의를 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무라카미 나오코(일본 츠다히쿠대 대학원 박사과정)씨의 '프란게 문고 내의 재일조선인 발행신문에 나타난 제주4.3인식', 장윤식씨(제주4.3연구소 연구원)의 '제주4.3사건 초기 무장대의 조직과 활동', 고성만씨(제주4.3연구소 연구원)의 '제주4.3담론의 형성과 정치적 작용' 등 3편의 논문이 그것이다.

#4.3항쟁 주도세력 '무장대' 활동 조명한 최초 연구논문 '눈길'

특히 장 연구원의 논문은 4.3사건 당시 항쟁 주도세력인 문장대의 활동을 조명한 최초의 논문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논문은 1949년 6월7일 경찰특공대가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라는 문서의 사료적 가치를 분석하고 있다.

이 문서는 제주도경찰국에서 필사해 과장급 간부들에게 배포됐고, 필사본을 영인해 문모씨(당시 지서장)가 1995년 출간한 것이다.

장 연구원은 논문에서 "당시 무장대의 '반미투쟁' 구호는 상징적인 구호에 머물렀고, 오히려 무장대 지도부는 미군을 직접 선제공격해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득이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무장대의 활동일지를 분석한 결과 제주도에서 5.10선거가 거부된 것은 무장대의 위협이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이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선택한 결과였다고 보고 있다.

이와함께 초기 무장대와 국방경비대의 충돌이 없었던 것은 무장대 지도부의 전술과 경비대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가 충돌회피 전술을 펼치는데 일정정도 역할을 했다고 장 연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4.3 진압 후 역사 변천 속  '4.3담론' 사회학적 접근

고성만 연구원의 논문은 '4.3담론'에 주목해 4.3이 진압된 뒤 극우 반공체제가 지배적으로 위치하는 구조 속에서 민주화 이행시기를 거쳐 '화해와 상생'을 강조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4.3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이야기돼 왔는지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4.3과 역사'는 제주4.3연구소가 4.3의 학술적 접근을 위해 관련 학술회의와 발표논문 등을 중심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데 묶어 발간하고 있는 학술지로, 지난 2001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매해 펴내고 있다.

도서출판 각. 정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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