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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당시 재일동포들, 양민학살 추도회 열었다'
'4.3당시 재일동포들, 양민학살 추도회 열었다'
  • 김한철 시민기자
  • 승인 2006.01.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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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나오코, 일본에서 발행한 동포 신문 중심으로 밝혀

제주 4.3사건 당시 초토화작전으로 제주도민들이 학살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이 모여 마을별 추도회를 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제주4.3연구소가 24일 발간한 <4.3과 역사> 제5호에 실린 무라카미 나오코(츠다주쿠대 대학원 박사과정.국제관계 전공)씨의 '프란게 문고 내의 재일조선인 발행 신문에 나타난 제주4.3인식'이라는 논문에서 나왔다.

프란게문고(Dr. prange collection)는 연합군총사령부(GHQ)가 일본에서 검열제도를 실시한 1945년 9월부터 1949년 10월말에 이르는 수집된 방대한 간행물로,  잡지, 신문, 통신 등이 포함돼 있으며, 프란게 박사가 미국 메릴랜드대학에 보관한 자료들이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의 4.3에 대한 인식을 연구하고 있는 무라카미씨는 이 논문을 통해 1948년부터 1949년 10월께까지 재일동포들이 발행한 27개 신문에서 모두 400여건 이상의 4.3관련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따르면,  재일조선인이 발행한 신문이 처음으로 4.3사건을 보도한 것을 48년 4월 7일 '제주도에서 선거반대 대폭동 발생'이라는 제목(<조선정보>, <조선특신>)으로 보도된 것으로, 남한에서 최초로 보도된 4월 6일과 비교하면 거의 동시에 보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한에서 보도가 완전히 통제됐던 토벌대의 초토화작전 기간인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10월 말까지는 남한내에서 보도되지 않은 제주도 상황을 보도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보도의 특징에 대해 무라카미씨는 △제주도에서 펼쳐진 군경의 초토화전술로 인한 민간인 학살 피해상황 보도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에 선포한 계엄령 하에 전개됐던 이러한 작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보도 △제주도 인민의 무장항쟁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둔 보도로 요약했다.

특히 제주도에서 도민학살이 자행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주도 출신자들의 집단거주지역인 오사카 이쿠노에서 1949년 1월 3일 '재판(在阪) 제주도 대정면 친목회'가 주최한 '인민학살반대추도회'를 시작으로, 화북, 조천, 북촌, 신촌, 함덕, 한림, 삼양 등 출신마을 단위로 추도회를 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1949년 2월 1일에는 '재판 구좌면 친목회'가 오사카 이마자토에서 추도회를 열었고, 도쿄 아라카와에서도 같은해 5월 29일에 애월면 고내리 청년단 주최로 제1초등학교에서 30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추도회가 열렸다.

이밖에 1949년 4월 25일에는 재일제주읍 이호리 출신자들이 오사카 이쿠노에서 이호리 친목회 결성대회를 열고, 폐허가 된 고향 재건사업에 힘을 모으기로 결의한 사실도 밝혀졌다.

무라카미는 "일본에서의 4.3관련 기사는 외신이 대부분으로, 남한발 외신과 평양발 방송 및 통신을 이용한 것은 당시 남한 내부의 4.3보도와는 다른 재일조선인 발행신문의 특징"이라며 "외신이 대부분이고, 2차적인 자료라고 하지만 게재한 기사내용과 제목을 통해 각 신문의 4.3에 대한 인식과 경향, 평가 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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