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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현장
6월의 기억, 고교생들에 물었더니 “알 건 알아야죠”
[교육! 학교 현장] <36> 6월 기억 찾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애월고 학생들
데스크승인 2015.06.02  15:46:30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애월고 학생들이 2일 행사를 점검하고 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少女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땅에 피어 살고 싶 었 었 나 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중 일부>

 

6월이다. 모윤숙의 시에서처럼 수많은 이들이 주검이 되고, 어떤 이는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 벌써 기나긴 세월이다. 그러고 보니 70년이 됐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이들은 전쟁 당시 주검으로 되돌아왔고, 이젠 살아 있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다.

기억은 멀어진다. 어찌 보면 인간은 기억을 먹고 살고, 기억을 잊고 한다. 그러나 6월이 되면 기억을 나누기보다는 기억을 잊는 이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기만 하다. 현충일, 한국전쟁 등 기억할 일은 있으나 기억을 해주는 이는 없다.

특히 학생들에겐 한국전쟁은 교과서에만 보이는 글자일 뿐이다. 그러나 애월고 학생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애월고(교장 김순관) 학생자치회는 매달 일을 벌인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고 있다. 애월고 학생들이 6월에 내놓은 건 70년전의 기억이었다.

   
애월읍 충혼묘지에 분향하는 애월고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

2일 애월고 학생들은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자리를 만들었다. 애월읍 수산봉에 있는 충혼묘지. 평상시 한적한 이곳에 애월고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얼굴을 비쳤다. 충혼묘지 참배는 대부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번 일을 기획한 애월고 학생회 장희영 총무부장(3학년)은 6월이 호국보훈의 달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추모행사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6월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라도 뜻깊은 일을 벌여보자고 한 거예요. 여기에 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애월읍 충혼묘지는 애월고 역사보다 앞서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만들어졌으니, 애월고보다는 3년 역사가 빠르다. 여기엔 모두 157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그동안 인근에 있는 학교이면서도 아무도 묻혀 있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않아왔다.

1학년인 김현지 학생도 처음이긴 마찬가지다. ‘두드림 프로젝트’에 참가중인 김현지 학생은 전쟁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슬프죠. 여기 와보니 더 가슴에 와닿아요. 아빠·엄마한테도 이런 곳에 한 번쯤 와보라고 해야겠어요.”

   
애월고 학생들이 매달 벌이는 활동에 깜짝 놀란다는 김미경 학부모회장.

최근엔 각 학교별로 학생회 활동이 활발하다. 교사들의 간섭이 아닌, 그들 나름의 생각을 펼쳐낸다. 애월고 학생들도 매월 아이디어를 짜내서 학교 행사의 틀을 만든다.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어떨까. 애월고 김미경 학부모회장은 깜짝깜짝 놀란단다.

“젊은 친구들이어서인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아요. 5월 스승의 날 때도 그랬어요. 매달 깜짝깜짝 놀라고 있죠. 솔직히 학생들은 6.25가 뭔지 모르잖아요. 그걸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6월을 계기로 호국보훈의 마음을 되새긴다니 뿌듯하네요. 앞으로 애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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