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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리고 제주 이야기
“왜인 배보다 튼튼하고 빠르니 그걸 참고하라”
[탐라순력도 다시보기] <13> 제주도 사람들의 배 건조술
데스크승인 2016.05.29  08:34:38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병담범주’에 실린 뱃놀이 모습.

인간은 이동을 한다. 신석기시대 이후 정착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농경’이 매개체였기에 한곳에 눌러앉는 생활을 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농경이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옮겨다니는 생활에서, 자연을 극복하고 자연을 이용하는 삶으로서 변화된 개념이다.

인간이 한곳에 눌러앉는 생활을 하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장소에 머물 수는 없다. 자연재해 때문에, 혹은 경제적인 생활의 변화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이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이동은 뭍으로의 이동도 있으나 커다란 강이나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강이나 바다를 이동하려면 배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배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동물의 가죽이나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의 출현은 기원전 8000년까지 소급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신석기유적인 함북 서포항 4기층에서 나온 고래뼈로 만든 노를 가장 이른 단계로 볼 수 있다.

특히 신석기시대는 지금의 한반도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제주도는 섬으로서 확연하게 육지와 구분이 된다. 때문에 제주도에 있는 이들이, 제주도에 오려는 이들은 이동수단으로 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제주도 사람들이 사용한 배는 어떤 것이었을까. 답을 한다면 ‘알 수 없다’이다. 그렇다고 ‘알 수 없다’고 내버릴 일은 아니다. 역사서라도 뒤져보자. <조선왕조실록>에 제주도 사람과 제주도 사람들이 쓰는 배에 대한 단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사천·고성·진주 지방에 제주의 ‘두독야지(豆禿也只)’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2, 3척의 배를 가지고 나타나다가 이제는 32척입니다. 그들은 강기슭에 의지해 집을 지었는데, 의복은 왜인과 같으나, 언어는 왜인 말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닙니다. 배는 왜인의 배보다 더욱 견실하고, 빠르기는 더 빠른데, 그들은 항상 고기를 낚고 미역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성종실록 83권, 성종 8년(1477) 8월 5일)

   
성종실록에 나타난 제주사람들의 배는 왜인보다 튼튼하고 빠르다고 돼 있다.

조선시대엔 ‘두모악(豆毛岳)’이라고 불린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두모악은 두무악(頭無岳·頭無惡)으로 쓰기도, 한자를 달리해 두모악(豆毛惡)으로도 썼다. 혹은 ‘성종실록’에서처럼 ‘두독야지’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

성종실록을 보면 제주인들이 뭍으로 나가 활동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은 땅 위에서 일어나는 농사가 아니라, 바다에서 하는 일이 주를 이뤘다. 집단적으로 무리를 이뤄 살았던 이들을 향해 붙였던 이름이 두모악이나 두독야지 등이었다.

이들은 왜 제주에서 살지 않고, 집단적으로 무리를 이뤄 뭍으로 나가려 했을까. 조선시대 당시 제주도는 고려시대와 달리 완전히 조선이라는 하나의 틀에 편입됐고, 따라서 조선의 중앙정부도 제주도 사람들에게 각종 부역을 지우려 했다. 부역이라는 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그런 부역에 힘겨워하며 뭍으로 나가곤 했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들고 싶다.

성종이 하루는 경연을 마쳤는데, 사간인 허황이 이것저것 문제점을 성종에게 건의한다. 그 건의 내용 가운데 힘들었던 제주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포작인(鮑作人)의 일은 지난 번 재상에게 명해 의논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본래 제주 사람들입니다. 제주는 토지가 척박하고 산업이 넉넉지 못해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에 도망을 와서 오로지 해물을 채취하는 것을 합니다. 그래서 해물을 팔아서 생활을 하는데 지금 만약 이들을 독촉해서 제주로 돌려보낸다면 저들은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위로를 해서 안심시켜 주십시오.”(성종실록 178권, 성종 16년(1485) 윤4월 11일)

이렇게 제주를 떠나서 집단적인 생활을 하던 두모악에겐 별도의 부역을 지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를 떠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골칫덩이기도 했다.

어쨌든 제주를 나온 이들이 움직일 때 사용하는 필수도구는 바로 배였다. 앞의 성종실록에 나온 기록 가운데 두독야지를 얘기하면서 제주사람들이 이용하던 배가 나온다. 그 배는 왜인들이 쓰던 것보다 튼튼하고, 빠르다고 돼 있다. 그래서였을까. 왜구의 출몰이 잦아지자 결국 제주도 사람들이 만든 배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왜선(倭船)이 도둑질할 때 바람이 순하면 돛을 달고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는데, 오로지 배가 가벼워 쓰기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포구에 두독야지에 의지해 가벼운 배를 만들어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성종실록 235권, 성종 20년(1489) 12월 10일)

제주도는 섬이었기에 제주사람들은 육지부와 달리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아니면 제주도 사람들이 만든 배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배와는 모양이나 기능이 달랐던 건 아닐까. 다음에 배 이야기를 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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